그들의 젠틀한 사회생활

해리와 채리의 관계를 지켜보며

by 이경화

언제나 느긋하게 사료를 즐기던 입 짧은 첫째 해리. 언제나 조용하던 해리가 채리의 사료를 블로킹하며 괴롭히는 모습이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다. 임시보호라고 생각했기에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았지만 좀처럼 적당한 입양자를 찾을 수 없었다. 1년여를 알아보다가 입양으로 마음을 돌렸을 즈음 내 곁자리를 두고 피를 볼 정도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둘은 이미 서로를 적으로 결론 지어버린 듯했다.

입양을 보내기엔 이미 늦은 두 암컷 코리안 숏 헤어 녀석들이다. 차마 다시 길이나 보호소로 보낼 수는 없어 둘 사이는 시간에 맡기고, 해리의 기 살리기는 그만두기로 했다. 외동묘로 키우려고 했지만 상황이 변한 이상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

외동에서 맏이가 된 해리의 성격은 날로 거칠어졌고, 채리 또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 시기 집안은 늘 전쟁터 같았다. 퇴근 후 돌아오면 온 집안에 두 녀석의 다툼으로 인한 털 뭉치가 사방을 날아다녔고, 낮은 으르렁 소리가 그치지 않는 것이 순화되지 않은 맹수들의 우리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해리에게 인간의 언어로 며칠을 설명하고 달래는 것으로 중재했다. 해리가 채리의 공격을 피해 자신만의 은신처나 내 품에서 잠드는 것으로 전쟁은 서서히 끝이 났다. 지금도 둘은 그다지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벌써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으니 서로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겠지만. 최근에는 잠깐씩 서로의 냄새를 맡기도 하고, 또 잠깐 동안 어울려 장난을 치는 모습도 보인다. 간혹 살짝 다툼이 있어도 그럭저럭 조용히 서로 타이밍 맞춰 물러나 선을 지킨다.

당연히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행동이 바뀐 것은 아닐 테지만 동물에게도 눈치가 있고, 기본적으로 목숨의 위협이 없는 환경이라면 각자의 영역이 지켜지는 선에서 평화적인 타협의 여지도 생겼으리라.

새로운 환경이나 직장을 옮기게 되면 적응에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서로를 낯설어하는 고양이들을 정말 친한 친구처럼 지내도록 해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첫 만남부터 어설펐던 집사의 실수와 성향부터 다른 둘은 현재 데면데면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인 관계로 지내고 있다.

은근히 견제하거나 성격이 맞지 않는 회사 동료와 함께하는 근무 시간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나처럼 낯가림이 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느리다면 더욱 그런 확률이 높아진다.

오해가 생기거나 억울한 상황도 시간에 맡긴다며 회피하다 나중에 후회한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심히 넘겨버렸던 불편감은 결국 터져버리고 만다.

아무리 논리를 내세우고, 인과를 설명해 봤자 결국은 감정적 앙금이 남아 서로 불편해지기도 한다.

쌓인 감정을 풀지 못한 채 함께해야 할 때의 괴로움은 일상에까지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해리와 채리의 관계는 서열과는 무관해 보인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서열상으로는 해리가 확실한 우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채리의 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해리의 부족한 사회성을 완화시키기엔 너무 늦은 것 같지만 이대로 심각해지지 않게 신경 쓸 밖에 뾰족한 방법은 찾지 못했다.

지켜보는 집사의 입장에선 두 고양이 모두 안타깝지만.

무조건 서열에 따라 강한 자가 권리와 힘을 행사하고, 약한 자는 따르고 맞추면서 사는 것이 고양이들의 사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지켜보니 인간의 사회생활 못지않게 고양이들의 사회생활도 유연하고 젠틀하다.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다면 더없이 이상적이지만 그런 일들은 누군가 상대방이 더 많이 참고 배려하는데서 나오는 결과일 뿐이다.

해리처럼 사회성 많이 떨어지는 나도 속상함을 누르고 흘려보내자라며 혼자 끙끙거리다 뒤늦게 대화를 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일방적인 상황에 익숙해진 상대는 갑작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 가끔은 자신도 주변인들도 모두 알고 있던 일까지 적반하장으로 우기는 경우도 있었고, 간혹 이해할 수 없다며 불쾌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그런 반응은 내가 만든 것이다.

뭐든 쌓이기 전에 당연함이 되어버리기 전에 굳이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결국 대화가 단절되는 수준으로 서로가 불편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처음부터 터놓고 다른 성향을 받아들이고, 적당히 티를 내면서 거리를 유지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의 노력이란 투자에 비해 원만한 관계라는 수익을 얻는데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동반한다.

사회생활 만렙인 고양이들에 비해 겨우 절반 수준에 닿을 듯 말 듯 동동거리는 인간 집사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내가 참 수고가 많았다. 잘 컸네"

"언제 적 얘기야? 지난 얘기는 자제해 주길 바라. "

채리 덕에 묘 춘기를 탈없이 넘기고 잘 자란 행복이

이전 05화엄마 역할 자처하는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