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항상 즐거운 이유

힘의 차이 앞에서 노아의 도망은 전술이다.

by 이경화


노아와 누리는 평소에 아주 가까운 친형제 무드의 찐친이다.

비 내리는 눅눅한 정오. 축 쳐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식사를 챙기러 부엌으로 갔다.

빈 박스를 이용한 세탁 바구니 속 양말을 보며 호기심에 염탐 중인 두 찐친들.

귀여워서 눈팅만 하고 돌아서 내가 먹을 식사를 준비했다. 국을 끓이고 반찬을 챙기고 돌아서니 한참 전부터 들어갈까 말까를 두고 고민하던 노아는 상자 바깥에서 호박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집사와 상자를 번갈아 보며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었다. 순간 상황이 이해되는 나.

평소 노아는 넘치는 호기심으로 누나들에게 장난을 걸다가 쫓겨 다니거나 냥 펀치를 맞거나 심한 경우 공동 영역에서 쫓겨나 혼자 다른 방에서 자는 결말을 맞거나, 공을 좋아하는 고양이답게 공을 보면 신나서 달려가려다가도 다른 고양이를 마주하면 또 펀치를 맞을 것이 두려운 나머지 망설이다가 누리에게 가로채여 빼앗기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곤 한다. 오늘도 마찬가지 패턴이라 안 봐도 상황 파악이 되는 것이다.

천천히 나와 눈을 마주치다가 누리의 상자 속 모습 관찰을 번갈아 하는 노아를 보며 생각을 해 본다. 누구나 목표를 정하고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 그 때문에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준비를 마친다. 그러나 꿈을 좇는 모든 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한다. 이유도 변명도 각양각색이다. 당연히 그들의 상황이나 현실을 핑계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이 녀석들의 상황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도 비슷한 결과를 얻은 두 고양이들의 평소 행동을 유추해 보면 둘의 결정적 차이가 다른 결과를 낳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노아는 평소 넘치는 호기심과 그에 걸맞은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망설이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 따라서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대로 누리는 형보다 호기심은 덜하고 차분한 편이지만 복잡하게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둘의 관계에서 상대적인 차이다. 형의 호기심 대상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다 저돌적으로 덤벼들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조용한 무법자라고나 할까? 저돌적이지만 집중력은 상대적으로 짧은 노아는 스스로 놀아야 하는 창의성이 필요한 놀이에 쉽게 질려한다. 그래서 노아의 흥미에 함께 관심을 가지다가 먼저 행동으로 옮겨보는 거다. 둘은 대체로 사이가 좋다. 하지만 행동이 먼저인 고양이와 생각이 먼저인 두 고양이의 성향이 평소 고양이용 장난감이 아닌 물건을 가지고 노는 모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노아는 삶이 불행하거나 우울하지 않을까? 매번 먼저 호기심을 가지고 고민하는 동안 선수를 빼앗기는 반복되는 패턴에 기가 죽어 의기소침한 고양이가 되면 어떻게 하지?

은근히 고민하며 어떻게 중재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집사가 무색하게 노아는 늘 활기차다. 지치지도 않고 주변을 탐구하고 새로운 사냥감을 발굴하며 즐긴다.

평소 노아는 누나 고양이들에게 자주 하악질을 당하며 쫓기거나, 누리의 행동력에 순서가 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움츠러들거나 오래 기죽어 지내지 않는 단단한 심지를 가졌다.

지금처럼 빼앗긴 상자 옆에서 동생이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동안 누리가 놓친 나의 관심을 오롯이 받으며 그 시간을 즐긴다. 집사와 상자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다. 짧은 시간 동안 호기심을 해소하고, 탐험을 마친 누리가 나오는 순간 망설임 없이 뛰어들 노아. 그리고 고민하고 망설인 시간을 보상받고 남을 만큼 충분히 시간을 들여 탐험하고, 신나게 즐기다가 나올 것이다. 어쩌면 노아는 선수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놀이를 위한 안전성을 보장받고 싶어 망설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놀이시간을 보내는 안전성 검증 후 만족감을 배로 누리려고 일부러 시간을 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 집사의 상상이지만.

늘 자신이 먼저 관심을 가진 어떤 것이든 노아에게 새치기를 당하는 패턴이 계속되는데도 화내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는 노아. 가끔 서로 고집부리다 몸 개그까지 선보일 때도 있다. 요즘 집사는 둘의 그런 경쟁을 말리지 않고 그저 옆에서 즐긴다. 대부분의 경우 장난감에 대한 경쟁은 얼렁뚱땅 끝나버리고 서로에 대한 그루밍 경쟁으로 화면이 전환되며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장난감을 선택하기 위해 서랍을 뒤져 찾아낸 순간 동생에게 빼앗겨 허둥대는 노아.

새로운 놀잇감을 발견하고도 망설이다 새치기를 당하기 일쑤지만 그런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고양이, 노아.

집사 무릎에 올라와 호가호위하며 근처에 있는 고양이의 꼬리를 잡아채려 하거나 의자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무릎을 빼앗으려고 틈을 보는 누나 고양이의 머리를 내리쳤다가 하악질과 주먹질로 반격을 당해 도망치는 어설픈 검은 고양이의 뒷모습에 멋스러움이라고는 없다. 추격하는 누나에게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재빨리 따돌리고 돌아와 다시 집사의 무릎을 사수하는 노아의 행동은 평소 단순하고 맹하다고 생각한 집사를 당황시킨다.

아무리 구박을 당해도 포기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공격해 오는 상대와 자신의 방식으로 맞선다.

노아를 보면서 삼십육계 줄행랑이 정말 훌륭한 전술일 수 있음을 공감하게 되었다.

힘의 차이에 기가 죽거나, 포기할 법도 하건만 매번 누나들에게 장난을 걸고 쫓겨 다니면서도 말간 얼굴에 그림자라고는 비치지 않는다.

새로운 놀이터, 신기한 놀거리를 찾아내며, 자신만의 탐험을 즐기는 호기심 보따리를 가지고 태어난 듯 오늘도 에너지가 넘치는 노아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처음엔 자신만의 놀이를 찾아 즐길 줄 알고, 덩치나 힘에 기죽지 않고 장난도 치고, 시비도 걸면서 어울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노아가 대견하고, 살려낼 수 있었기에 지금 뿌듯함을 느낀다는 단순한 기쁨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 새로운 호기심 충족을 위한 도전을 망설이지 않고, 돌발 상황도 느리지만 부드럽게 대응하는 전형적이지 않은, 고양이계 4차원 노아가 가진 자신감의 이유가 집사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면 좋겠다고.

노아는 젖먹이 때부터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떠나려고 하는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의 저혈당증이나 체온 조절 실패 시의 응급처치 방법들을 떠올리며 시도한 결과 운 좋게 다시 생생하게 살아내는 노아를 보며 감격스러웠다. 그런 경험이 다른 고양이들의 은근한 따돌림에도 크게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사랑받은 자식들이 해맑고, 상대적으로 좌절을 빠르게 극복하는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극복은 악으로, 깡으로 세상에 맞서 혼자 버티며 살아내는 사람의 극복과는 결이 다르다.

사랑받아 본 이가 사랑할 줄도 안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전철을 밟지는 않는다는 것도 안다. 결핍은 과장됨으로 포장되기도 하고, 모난 돌처럼 고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개중에는 누구보다 충만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이루어내는 예외적이고, 그래서 더 감동적인 사랑을 알고 실천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고양이들과 함께 하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새로 느끼고 나를 다잡고자 노력하게 된 반면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20년을 한 집에서 살며, 정말 거부감 외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볼 때마다 눈이 세모가 되는 감정이라면 어떤 관계여야 할까?

모친에게서 서리처럼 찬 바람을 맞고 컸던 내가 고양이들을 지키려 애쓰면서 느낀 감정적 피드백은 단순히 살려낸 사람과 살아낸 고양이의 생환 정도가 아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방법을 모르니 어쩔 수 없다며 상처받은 감정을 추스를 줄도 몰랐던 내가 아예 포기한 추상적인 감정을 끌어내 표현하게 한 계기가 고양이들이었다. 해리에 대한 미안함에서 시작된 "사랑한다"는 말이 죽어버린 감정을 깨웠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경험과 얕은 지식을 총동원해 살려낸 노아의 생명이 나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었다. 헤어진 가족들을 놓아주고 집사의 집으로 뛰어들어 버텨낸 누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신의 주는 시련이 담금질임을 믿게 되었다. 그로 인해 비로소 내 삶에 대한 감사함을 알게 된 그 과정들이 기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마음을 거칠게 달구는 쇠붙이는 완전히 사라지지 못했지만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잔해 하나하나에 데어가며 살아가지 않는다.

조만간 과거의 상처를 정리할 것을 확신하면서 조금씩 온전해지는 나를 만나니 점점 더 삶이 행복해지고 있다.

누나에게 쫓기다 숨어든 상자에서 나와 삼십육계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자축의 그루밍에 빠진 노아


이전 09화사색하는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