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 집중하는 채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5~6년쯤 전부터 우리 집은 입양을 보낸 후에도 또 둘이 더 늘어 다섯 고양이와 인간 하나로 구성된 공동체가 되었다.
그중 변치 않는 한 가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채리가 반나절은 옷 장위 혹은 침대 커튼 뒤로 올라가 창틀에 숨어 꼼짝도 하지 않고 낮잠을 즐기는 게으른 고양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 녀석은 우리 집에서 가장 똑똑하고 성깔 있는 녀석이다. 현관문을 비롯한 모든 문을 열 줄 알고, 조폭 같은 외모에 유독 저에게 더 날을 세우는 첫째 해리에 대해서도 비위를 맞추거나 싸워야 할 때를 잘 알고 덤비는 녀석이기도 하다. 치고 빠질 때를 잘 아는 느낌이랄까?
지금 임시 보호 중인 형제 아기 고양이들에게는 왠지 관대해서-아마 경험적으로 언젠가는 이 녀석들도 자신의 영역인 이 집에서 보이지 않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나름의 참을성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기 고양이들의 폭발하는 에너지와 관심에 오히려 도망 다니기 바쁜 모습이지만 여태 우리 집을 거쳐 간 다른 녀석들은 모두 채리의 히스테리성 공격을 당했다. 날 선 추격전 끝에 상대를 코너에 몰아넣고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협박과 공격을 가장한 일방적인 폭력에 강약까지 조절하는 약삭빠른 녀석. 결국 당하는 고양이들을 하루빨리 내보낼 수밖에 없도록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끝까지 괴롭히는 깡패 같은 녀석이었는데.
날카롭고 무서운 채리의 공격적인 모습에 키우고 싶었던 아기 고양이까지도 결국 입양처를 수소문해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공격을 당하는 고양이도 걱정이지만 예민해진 상태로 편히 쉬지 못하는 채리의 건강에도 혹시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는 상황이었기에 다른 선택은 아예 없었다.(채리는 수면 중에도 하악질과 날카로운 소리를 지를 때가 잦았다.)
그런 녀석이 요즘은 온종일 창밖만 내다보며 지내는데 크기나 위치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는 거실에 큰 창이 있고, 베란다 창도 큰 데 오래된 집이라 문틀이 어긋나 있는지 녀석은 잠긴 문을 밀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수시로 드나들다가 작은 녀석들이 오면서 빼앗긴 듯 요즘은 옷장 위를 아지트 삼아 거의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가끔은 세면대 위로 올라간 다음 다시 점프로 제 키보다 낮고 좁은 화장실 창문에서 한껏 몸을 굽히고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며 내려오기를 거부할 때도 있다.
위험하고 힘들어 보여 간식으로 꼬여봐도 꿈쩍도 하지 않고 창밖에 시선을 둔 채 귀는 뾰족하게 세우고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음이 보이는데도 고집스럽게 외면하며 버티는 모습이었다. 마치 마트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면서도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최근엔 행복이를 챙기는데 열과 성을 다하며 조용히 지냈지만 사실은 호기심도 많고, 지나치게 활발한 것이 탈이었는데 언제부터, 무엇이 채리를 저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옷장 위에서도 시선은 창밖에 고정된 채 움직임이 거의 없는 뒷모습이 눈에 박힌다. 키가 작은 나는 의자를 가져와 눈을 맞추며 간식을 내밀며 내려오기를 유도해 보기도 했지만 겨우 마주한 눈빛이 공허하고 무심했다. 순간 이 집에서 벗어나 어미와 함께 지내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치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막내였던 기간이 짧았던 탓에 갑자기 너무 조용하고 의젓해진 모습에 집사가 적응이 덜 된 걸까?
채리는 언제부터 놀이보다 창밖 구경을 좋아하게 된 걸까? 정말 흥미로운 걸까? 드라마에 중독된 사람처럼 바깥 구경에 빠진 것뿐일까?
행복이를 어미처럼 돌봐주다 그 녀석의 덩치가 오히려 더 커지고 저한테까지 덤비기 시작하면서부터 회의감이라도 느꼈을까? 혹은 집을 거쳐 가는 낯선 고양이들이 점점 많아져서 스트레스가 심했던 걸까?
아마 길 위에서 계속 컸다면 행복이의 반항은 늦은 독립이라고 받아들여야 마땅한 자립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짧고 외로웠던 유년기가 상처로 남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인간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마침 셋째의 독립선언 같은 반항적인 모습이 자주 보이면서부터 채리가 창밖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한 시기가 겹친다. 설마 채리가 빈 둥지 증후군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창밖에 온 신경을 쏟는 모습이 오히려 외로워 보여 자꾸만 더 신경이 쓰인다.
고양이에게 창은 인간의 티브이 같은 것이라는데 정보와 볼거리를 가만히 앉아서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세상과의 연결고리쯤 된다는 뜻이겠지.
현관문을 열어 놓고도 정작 자신은 현관 안에서 나오지 않고 해리의 탈주를 지켜보는 채리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채리는 저 고요한 집요함으로 도대체 무엇에 집중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의 반도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똑똑하고 조용한 채리.
늘 신경 쓰지만 또 혼자 잘 지내는 듯 보이니 오히려 덜 챙기게 되는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다.
채리를 보면 <우는 놈 젖 한번 더 준다.>는 속담이 떠오를 때가 많다. 자식을 키워본 일이 없는 내가 속담을 떠올리며 이렇게 공감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마음이 꼭 행동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고양이다.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는 조상님들의 말씀에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늘 부족한 집사는 특히 채리에게 미안한 일 투성이다.
채리야, 우리가 서로 마음을 나눌수록 외로움이 행복함으로 채워질 날이 올 거라고 믿어. 비록 우리가 종은 다르지만 마음을 나누다 보면 빠른 시일 내에 단단한 식구가 되어 줄 수 있을 거야. 우리 함께 교감하자.
채리는 고양이용 티비라는 창 밖 구경하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