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시작 즈음에 만난 천사
다시 장마가 한창이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해리와 채리 외에 모두 장마가 시작하는 6월 중순경에 만나서 함께 살게 된 시기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전에는 계절에 대한 특별한 인상이 없었다가 행복이를 입양하게 되면서 장마철이 시작될 때쯤이면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 들개가 되어 떠도는 개들까지도 신경 쓰이곤 한다.
특히 진흙 범벅이 되어 떠돌던 행복이와의 만남이 떠올라 평소보다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원룸식 빌라에 살던 시기 옆 건물과 이어지는 겨우 팔뚝 두세 개 정도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틈새가 있었다. 그 건물 1층과 내가 살던 빌라의 경계를 짓기 위한 1층의 절반 정도가 시멘트로 조금 높게 지어져 두 건물의 공간을 구분 짓던 담벼락 조성물은 길 고양이들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쉼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길은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와 나뭇잎, 그리고 떠돌다 내려앉아 켜켜이 쌓인 먼지와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날려 온 천 등 가볍고, 얇은 옷가지들이 뒤엉켜 지저분하고, 길 위의 작은 생명들에게는 위험한 병원균들이 포진한 곳이었다. 평소에는 아무 관심도 갖지 않았던 그 작은 통로를 신경 쓰게 된 것은 저녁 출근 전부터 삐약거리는 힘없는 목소리가 출근을 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서는 두어 시간 동안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두 마리 고양이의 집사가 되어 있던 나는 고양이가 고양이를 불러온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저 더 이상 여력이 없다는 현실을 되뇌며, 둘 외엔 아예 신경을 끄자고 다짐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오로지 앞만 보고 걸으며 외면했다.
근무 중에는 위급한 환자를 집중적으로 케어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기에 출근 때 들었던 가냘픈 울음소리를 잊었다.
하지만 집 골목으로 접어들어 출입문과 가까워질수록 어리던 고양이의 목소리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밤새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지금은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어미를 찾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겠지 생각하며 출입문을 통과해 집으로 가는 걸음을 더 재촉해 옆 건물과 공유하고 있는 그 틈새를 재빠르게 지나쳐버렸다.
해리와 채리의 사료를 챙기고, 물을 갈아주면서도, 화장실을 비우고 난 뒤에도 데면데면한 두 녀석들을 친해지게 해 보겠다며 한참을 놀아주며 바깥의 아기 고양이를 잊을 수 있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출근길에 들었던 그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시하려 애쓰며 사냥 놀이의 마무리로 두 고양이들에게 츄르 간식을 먹인 후 나를 위한 식사를 차려 밥을 먹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편치 않은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바로 이사를 위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큰 짐은 포장 이사를 맡길 예정이었기에 작은 짐들만 분류하는 것으로 복잡해진 머리를 비우며 티브이를 틀었다. 인기리에 방송되던 예능이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번쩍거리는 말풍선과 웃음을 터뜨리는 개그맨들의 몸짓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온 세상이 무음처리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다 창 밖을 보니 가느다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내린 비였을까?
울고 있는 고양이는 저 비를 그대로 맞아가며 헤매고 있구나. 우선은 그냥 어디라도 들어가서 비부터 피할 것이지.' 독립하기에는 아직 어린 목소리에 자꾸만 신경이 쏠리는 것을 차단하려 짐 싸기에 집중했지만 수건들은 계속 딴생각을 하는 주인의 헛손질에 정리는커녕 정리함에 넣는 족족 모양을 잃고 풀어져 버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고는 있냐? 집중해라.' 스스로를 타박하며 고개를 들고 다시 방을 둘러본 순간 작은 캣타워 꼭대기에서는 해리가, 바닥에서는 채리가 여유롭게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아, 얘들은 그래도 비는 맞지 않고 살잖아? 내가 아무렴 사료값도 못 벌까?'
'정신 차려라. 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를 속으로 반복하며 현실성을 선택하려 애쓰고 있음을 인지한 순간 오히려 답이 나왔다. '언제부터 앞날을 걱정하고 계획하면서 살았다고 그러냐. 새삼스럽다.
산 입에 거미줄 안 친다고 했다.'는 옛말을 핑계 삼아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문고리를 돌린다.
나가기 직전, 쫑긋 선 귀와 살짝 커진 두 쌍의 눈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둘에게 말했다.
"엄마 나갔다 올게. 저 밖에 울고 있는 고양이가 어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데려올 수 있으면 해리는 오늘부터 동생이 하나 더 생길 것이고, 채리도 친구나 동생이 생길 수도 있다. 뭐 진짜 길을 잃어서 혼자 있다가 내한테 잡힌다면 말이지만. 일단 집에서 기다려. 싸우지 말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설마 길 고양이가 내 손에 잡힐 일이 있을까? 만약에 잡힌다면 그냥 인연이다 생각하고 같이 살지 뭐.' 늘 그렇듯 뒤는 생각지도 않는 무모함이 나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보슬비는 약하지만 줄기차게 내렸다.
그 좁은 틈, 고양이들의 통로가 되어주던 길은 청소를 하기도 애매한 것이 만약 치우려 마음먹었다 해도 우선 사람의 운신이 불가능한 좁은 폭이 가로막았다. 거기에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곳이라 새삼 치우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이상할 만큼 예전부터 버려진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무언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 웅크린 어떤 것이 내 발소리에 움찔하며 다가오는 모습이 그림자로 먼저 보였다.
'뭐지? 설마 사람과 어미도 구분 못할 정도인 거야? 아파서 버려진 거야 아니면 미아가 되어서 아픈 거야?'
고양이의 감기는 눈으로 온다는 말이 있다. 역시 가로등 아래서 잠깐 살핀 고양이의 눈은 이미 눈곱과 다른 무언가로 뒤덮여 한쪽만 겨우 실눈 정도만 뜨고 있었다.
이 어린 녀석의 상태는 감기가 이미 심각해 보였다. 패닉 상태에서 감기로 냄새까지 맡지 못하니 감각이 둔해져 사람의 움직임을 어미로 착각한 것 아닐까?
조금씩, 천천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최대한 유심히 살펴보았다.
순간 위협하는 뱀이 낸다는 쉬이익---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의 작은 고양이가 소리와 함께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패기는 좋았는데 지금 니는 너무 약해서 위협도 안 된다. 그냥 내하고 같이 가자. 정 싫어서 나가고 싶으면 그때는 내보내 줄게. 최소한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면 굶거나 비는 안 맞을 수 있을 거다."
'무슨 어린애 유괴하는 것 같네.' 속으로 잔뜩 경계하는 하찮은 녀석의 반항에 투덜거리긴 했지만 아직 반쯤만 겨우 보이는 눈으로 낯선 인간에게 맞서려는 아기 고양이가 마냥 애처로워 내버려 두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기 고양이는 잔뜩 등을 굽힌 채 하악거리며 물러나지 않았다. 빨리 들어가 닦아야 덜 고생할 걸 알기에 계속 더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만약에 내한테 잡히면 니는 오늘부터 내가 키운다. 우짤래?" 반쯤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반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도망가지는 않네?' 소리는 공격적이지만 움직임이 없는 녀석. 너무 무서워서 얼어버렸나?
예상과 다른 전개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 안아 올렸다.
불빛 아래에서 보니 전체적으로 하얀색 털인 아기 고양이의 몸 곳곳에 진흙과 풀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하루를 꼬박 헤매면서 흙바닥을 뒹굴었는지 비에 씻겨 내려간 곳과 아직 엉겨 붙어있는 흙이 섞여 얼룩덜룩해진 데 더해 눈까지 엉망이라 더 처량해 보인다. 순순히 잡혔으면서도 소심한 하악질을 멈추지 못하던 하얀 아기고양이.
녀석을 집으로 데려와 정리하지 못한 수건들을 되는대로 집어 몸을 문지르며 말려주었다. 어이없게도 집으로 들어선 순간까지 작게 반항하던 아기 고양이가 순식간에 조용해져서는 얌전히 닦아주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흰 아기고양이의 시선은 해리와 채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무서움보다 호기심이 먼저라는 건가?'
녀석의 호기심 덕분에 안전하게 닦아줄 수 있었다. 몸을 어느 정도 말린 후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고름과 눈곱으로 완전히 뒤덮인 상태였다. 다행히 오래된 눈곱은 아닌 것 같아 젖은 물티슈에 미온수를 적셔 짠 후 살살 문지르며 닦아주었다. 역시 오래지 않아 딱 붙어있던 눈도 뜰 수 있게 된 고양이는 젖 먹이라고 하기에는 크고, 독립을 하기에는 어린 듯 보였다.
전체적으로 눈처럼 흰 털을 가진 녀석의 등은 특이하게도 살짝 일그러진 날개 모양의 갈색 털이 나있었다.
'헐~ 정말 길 잃은 미아 고양이가 아니라 혹시 벌 받고 쫓겨난 아기 천사냐?" 다행히 다른 상처나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심각한 피부병은 보이지 않았기에 상자에 대형 타월을 깔아 작은 집을 만들어 쉴 수 있도록 넣어주었다.
두 개로 나뉜 타원형 사기 양념 그릇에 물에 불린 사료를 넣어주니 조금은 깨작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감기만 낫고, 별 이상 없으면 잘 살겠네.'
그래도 식탐을 보이니 한시름 놓였다. 신기하게도 우리 집 두 고양이도 처음에만 잠깐 하악질을 했을 뿐 해리는 캣타워 꼭대기에, 채리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앉아 어떻게든 아기 고양이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지 계속 문을 긁어대고 있었다. 아마 저 시기까지는 고양이들에게 스스로를 엄마라고 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복이에게 행복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는 이 하얀 털뭉치 녀석도 앞으로 우리와 함께 행복한 일들만 기억하고 겪으면서 살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독립하면서 갖게 된 인생 최고의 목표가 바로 행복한 인생을 누리며 사는 것이었으므로.
비록 지금은 오로지 경쟁 고양이들 사이에서 집사의 관심을 얻어내는 방법으로 식탐을 부린 결과 비만 고양이가 되어 날개의 이지러짐 또한 갈수록 심해지는 중이다. 원래의 날개 모양은 착각이었나 싶을 지경이지만.
외모가 어떻게 변하든 여전히 너는 사랑스러운 고양이라는 걸 잊지 말고, 늘 당당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오늘도 궁금하다.
행복아, 너는 지금 행복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