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에 실패한 고양이는 그루밍을 한다.

오지랖과 뒤통수의 뫼비우스의 띠

by 이경화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 결심한 것은 하나였다.

내 주위 누군가가 힘들어한다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는 것.

타인을 돕는 마음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마음만 앞서 행동하는 것은 그저 현실 파악이 덜 된 오지랖일 뿐이다.

혼자가 싫고 무서워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한 오지랖은 부담이 되고, 결국 관계는 변질되어 버린다.

막무가내로 도와주겠다며 “내가 이만큼 도와줄게, 나 이렇게 도움 되는 사람이야.”하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들이대던 나의 오지랖은 결국 미성숙한 어른의 어리광임을 몰랐다.

당연히 부담스러움에 혹은 거북함을 느꼈을 그들은 말없이 떠났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나를 친구가 아닌 호구로 삼은 이들만 남아 이것저것 평가질을 하고, 도움이 부족하다며 무례하게 변해갔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도 못했던 나는 그들의 무례함에 배신감을 느끼며 혼자 몸부림치다 ‘왜 매번 이렇게 되어버릴까?’ 하며 좌절을 반복했다.

감정을 다루는데 미성숙한 상태로 분별없이 모든 것이 내 탓이라며 열등감과 자기비판에 빠져 살던 날들이 지속되었다.

나의 문제점을 인지하기 시작한 계기는 정말 믿었던 지인의 배신이었다.

그녀는 내가 가족처럼 믿었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느끼며 의지하던 동생이었다.

당장 하루를 살기에도 너무 힘들다며 울던 동생에게 신원 확인만으로 가능한 소액 대출을 받아 주고도 더 도와줄 여력이 없는 것을 미안해하며 눈치를 보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전화 통화도 문자도 확인하지 않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그 시기 나는 2번째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거동조차 불편하던 때였다.

결국 펑펑 울면서 신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비웃어대다가 화를 내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상황을 수습할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내가 한 일은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있다고 억지로 용기를 끌어내 대출을 갚기 위한 방법을 찾아 각종 은행과 기관들을 찾아 사정하고, 담당자에게 빌다가 억지를 쓰기도 하다가 겨우겨우 수습할 방법을 찾아 해결책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을 차리고 아픈 몸이라도 나를 책임질 사람은 오직 나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능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사정을 해결해 주려는 오지랖이 얼마나 어리석고 스스로에게도 무책임한 일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저 진심으로 서로 믿고, 아껴줄 수 있는 가족처럼 가까운 친구를 갖고 싶었던 것이 욕심이었나 생각하며 좌절했다. 그 시절 나는 아직 몰랐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혹은 어울리고 싶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내가 우선 누군가에게 어울리고 싶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사실 나는 우선 나 자신이 독립적인 어른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늘 환경을 탓하고, 신을 원망하고, 나를 의심하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왜 늘 이렇게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릴까? 왜 내 진심을 몰라줄까? 내가 잘못된 인간이 아닐까? 매번 뭔가 하려고만 하면 이렇게 다치는데. 다시 일을 하며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회복된다고 해도 예전처럼 건강해질 수 없을 텐데 살아봤자 뭘 할 수 있을까? 죽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까? 하늘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는데 이런 상황들을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10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몇 차례 겪으면서 기사회생한 경험들은 결과적으로 나를 더 강하고 냉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병원을 이웃집처럼 들락거리는 동안 가족이라는 이들에게 2차로 얻은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상흔이 남아있음을 일깨웠다.

거의 10여 년을 혼자서 재활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내게

'카르마'라는 주제는 내 지난날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할 답이 되어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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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레오 형제_부릅뜬 눈으로 간식 투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