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2)-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해할 마음이 없었던 걸까
나는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늘 소외된 채 성장했다. 우리는 많은 점에서 사고방식이 달랐다.
모친은 무심했고, 해외를 떠돌던 부친은 다른 자식들과도 끝내 가까워지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방임과 무관심은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집 안은 늘 차갑고,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들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고, 작은 잘못에도 큰 꾸지람을 들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정작 그 꾸지람조차도 무관심 속에 묻히곤 했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스님을 찾아 천도재를 지내며 부모를 보내드리고자 했다. 그 선택은 형제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당장 그만두라며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결국 사람마다 생각과 행동은 같을 수 없고, 나에게는 나만의 방식으로 마음을 정리할 권리가 있었으니까. 천도재를 통해 나는 부모의 삶을 인정하고, 그들이 나를 존재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는 마음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부모에 대한 원망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옅어졌다. 따뜻하지 않았던 기억 속에서도, 그들이 나를 존재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삶은 반복되지 않기에, 과거를 붙잡기보다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나는 부모의 무심함을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한계와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나를 키워낸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형제들과의 관계는 다르다. 그들과의 대화는 늘 벽에 부딪혔고, 서로가 마음을 헤아리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부모에 대한 감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형제들에 대한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이해의 범주에서 멀어졌다. 그 틈은 나를 고립시키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조차 외부인처럼 살아가게 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혼자임을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그 고립감은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다시 불러내는 동시에 내 마음속에 자라지 못한 아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형제들과의 관계는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할 마음 자체가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싶었지만, 그들은 나를 그들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냈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허약한 울타리인지에 대해 느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얼마나 불가능한 것을 원했던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교통사고 이후 더욱 확실해졌다.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순간, 둘째 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 기회에 죽지.”라는 잔인한 폭언이었다. 그 말은 나를 향한 오래된 적대감의 발현처럼 느껴졌다. 큰 언니는 그저 상황을 덮으려 했고, 사과는 무성의했다. 그 순간 그들의 태도는 나에게 환상에서 깨어 나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우리'라는 울타리에 속한 적 없는 처음부터 제외된 존재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어린 시절 집 안에서 늘 마주했던 무심함과 냉혹함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했다. 상처 위에 새로운 상처가 새겨졌고, 서로 이해가 배제된 관계 속에서 용서라는 단어는 힘이 없었다. 나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의 무관심은 일관적이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태도는 내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이 사건은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가족이라는 이름에 기대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 안에서 나는 끝없이 상처받을 뿐임을 겨우 자각했으니까. 대신 나는 내 안의 상처를 직면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니 나는 그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끝없이 원망하며 살 생각은 없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지만, 그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방식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묶여 현재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유 있는 삶을 살고,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고 싶다.
나는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상처를 통해 나는 더 강해졌고, 더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삶은 이해받지 못한 순간들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상처와 원망을 넘어, 내면의 아이를 성숙하게 성장시키는데 집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기로 했다. 아직도 내면의 아이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지만 이제는 능숙한 달래기 스킬로 재빨리 잠재우는 능력자가 되었다. 언젠가 이 작은 상처투성이 아이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것이고,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인생 업적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인생을 위해 매일을 충실하게,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채우려 기꺼이 노력한다.
얌전한 규수인 척 포즈 잡고 있지만 사실은 까칠한 누님 행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