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1)-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해할 마음이 없었던 걸까
3년여의 타향살이 후 반겨주는 이도 그리운 사람도 없는 귀향이었다.
세상 누구도 나의 거취를 아는 이는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미리 얻어 둔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는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이대로 지내다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아무도 나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래서였을까 서로 무관심해도 혈연으로 묶인 누군가에게 나의 소재를 알리고 싶어졌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가진 연락처라고는 큰 오빠의 가게 번호뿐이었다.
망설여졌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공중전화를 찾아 연락했더니 전화를 받은 올케는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알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 있었어? 돌아가시기 전부터 아가씨를 한참 찾았는데...”라며 속상해했다.
모친의 죽음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새삼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저 내 감정과는 별개로 인연도 목숨도 참 허무하다고 느끼는 무덤덤함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내 원망이며 맘고생은 죽음 앞에 아무 의미도 없는 무력감으로 남았다.
모든 생명은 영원할 수 없다.
고향에 돌아와 첫 소식으로 모친의 죽음을 들은 후부터 그저 조용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마음만 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혼자만의 행복이나 슬픔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예전에 진심을 털어놓고 마주 앉아 있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우리의 관계도 달라질 여지가 있었을까?
그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모친의 죽음이 내게도 슬픔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까?
모친은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고, 그 시절에 여학교를 다녔던 자존심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천사같이 착하고, 계산이 없는 보기 드문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어른이었다.
엄마에게 잘하라는 그들의 의례적인 말은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연기로라도 대답하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다.
조용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들은 늘 조용하지 않았고, 행복감은 귀하기만 했다. 그 누구도 나에 대한 냉대와 방임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모친의 죽음은 나의 의문과 혼란에 대한 답을 얻을 길을 영원히 앗아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생각이 변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녀도 사람이었기에 그랬겠지.’ 이해할 정도는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배를 타며 해외로만 돌아다니다 일 년에 세 번이면 자주 온다고 할 만큼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부친.
집안일에는 무심하고 무뚝뚝한 반면, 한 번 화를 내면 상을 뒤집어엎는 과격한 남편이었다.
모친은 인생의 고달픔을 털어 낼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다.
마음을 나눌만한 친구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책임과 의무감에 짓눌리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을 놓쳐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있는 집에서 곱게 자란 막내딸로, 사랑만 받고 자랐던 사람이 부모의 의지와 상황에 떠밀려 맘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하고, 줄곧 낯선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야 했으니 힘들었을 것이다.
그 미움과 한을 쌓아둔 채 줄곧 참고 또 참다가 더는 참을 수가 없어진 것일 수
도 있겠지.
가끔 나와 둘이 있게 되면 모친은 웃는 듯 마는 듯 애매한 표정으로 뜬금없이
내게 상처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너는 생긴 것부터 네 아비랑 꼭 닮았다”라든가, “열 재주 가진 놈은 굶어 죽는
다 했다” 대회에서 수상을 해도 축하는커녕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거나, “밥을 반대쪽부터 먹는 건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는데 옛날에는 도둑놈들이 그렇게 먹었다.”라며 나의 습관을 꼬집으며 비꼬기를 즐겼다.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없이 평온하게 입꼬리를 올린 채 빙그레 웃던 그 얼굴.
그녀는 그런 식으로 딸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내 마음에 엄마의 자리를 없애 버렸다.
평소 말없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던 딸의 성격이 미워하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참을 수 없었을까?
은근한 이간질로 부친과 자식들을 편 가르고, 둘만 있을 때면 곧잘 막말을 일삼던 모친이었지만, 그녀의 죽음 앞에서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 나도 참 모진 인간이다.
부모를 잃은 장성한 형제들은 모래알처럼 몇몇을 제외하고는 서로 연락하지 않고 산다. 세상 모든 가족 중 구성원들끼리 100% 마음이 맞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생사에 조차 무심한 것이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
아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여유 없이 살던 습관 탓에 이제는 이해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나 보다.
숙면 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