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기,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준 해리
사고 이후 내 삶은 허물어졌다.
마치 붕괴된 성벽처럼, 모양만 남은 채 덩그러니.
그러나 그 성벽마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나는 잔해 속에서 주저앉아 있었다.
어느 쪽으로도 디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내게는 기댈 곳이 없었다.
가족은 곁에 있었지만,
그들의 선택은 나를 더 깊은 고립으로 밀어 넣었다.
보상금은 빚으로, 오빠의 지갑 속으로 사라졌다.
내 손에 남은 것은 빈 통장과 막막한 앞날뿐이었다.
방 안에 홀로 앉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공기만이 유일한 동반자였다.
나는 판단할 힘도,
선택할 용기도 잃은 채
하루하루를 버텼다.
간신히 독립했지만,
보호 1종이라는 이름 아래의 삶은
온전한 자립이 될 수 없었다.
조급함은 나를 몰아세웠다.
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숙사 생활이 가능한 생산직을 찾았다.
하루라도 빨리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미 서른 중반. 빈손으로 혼자 남은 현실.
희망은 환상 속 이야기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과 함께 고향을 무작정 돌아다니던 길.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 카페.
창가에 앉아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들.
사람 곁에서 간식을 얻으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들.
그 자유로운 풍경 속에서 나는 벽에 붙은 입양 홍보 글을 발견했다.
사진 속 어린 고양이.
투 톤의 갈색 고등어 태비.
긴 꼬리를 가진 작은 생명.
며칠 동안 그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다시 찾은 카페에서 나는 해리를 만났다.
옥상에 유기된 채 발견된,
여섯 달 남짓의 어린 고양이.
낯선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머리를 비비던 그 순간.
나는 이미 해리에게 마음을 사로잡혀 있었다.
함께 돌아온 해리는
생명을 잇기 위한 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꿈속 세상에 빠진 듯 잠들었다.
작은 가슴이 오르내리는 고요한 숨결.
혹시 병들어 버려진 건 아닐까 불안했지만,
동시에 잃어버린 평온을 되찾은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양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해리를 편안하게 해 주고 싶었다.
좋아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마다
뿌듯함이 차올랐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여전히 고단했다.
해리와 함께 고향을 떠나 얻은
12시간 맞교대 생산직은 체력을 갉아먹었다.
잔병치레가 늘어갔다.
돈보다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특근을 피할 자유는 없었다.
공장의 기계음은 하루 종일 귀를 울렸고,
공기 속 화학 약품 냄새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지치게 했다.
결국 나는 생산직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해리와의 평온한 생활을 위해
처음으로 이직 전 기준을 세웠다.
급여가 적더라도 몸을 혹사시키지 않는 일
직업으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해리와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그 기준을 확신하게 했다.
해리를 돌보며 느낀 작은 성취와 위로.
그것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비추고 있었다.
해리와의 눈맞춤은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공장이 있던 도시에서 정착하고 싶었지만,
작은 도시의 일자리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했다.
해리와의 만남은 단순한 입양이 아니었다.
무너져 잔해만 남은 내 삶 속에 스며든 작은 등불.
그 빛은 나를 일으켜 주었다.
끊임없이 무너지던 몸과 마음을
보호자로서의 책임감으로 다잡았다.
해리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한 가장 큰 선물이었다.
삶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언제 어떤 일로 변화를 맞을지 알 수 없다.
인생은 갑작스러운 돌풍이
앞날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돌풍에 길을 잃었을 때 ,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는 것은
언제나 곁에 있는 누군가이다.
해리는 무너진 잔해 속에서
나를 건져 올린 작은 등불이었다.
다시 살아갈 힘이 되었다.
겪어 보았기에 나는 믿는다.
누구에게나 삶을 지지해 줄 ‘해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해리’는 고양이일 수도,
친구일 수도,
혹은 내면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삶에서 위기의 순간을 맞았을 때,
곁에 함께 하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다시 살아갈 버팀목이 된다.
나에게 해리는 어느새
그런 존재가 되어있었다.
이 글을 접한 누군가에게도 '해리'가
함께 하고 있을 것을 믿는다.
그리고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