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한 걸음

해리와 함께한 치유의 시간

by 이경화

해리를 처음 만난 건 고양이 카페였다.

옥상 철문 너머에 버려졌던, 생후 6개월쯤 된 암컷 고양이.
암갈색 고등어 태비, 몸보다 큰 꼬리를 가진 아이였다.

나는 그 고양이를 입양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얻은 숙소에서, 해리와 함께 옥상에 올랐다.
별 뜻은 없었다.
잠만 자는 녀석이 걱정됐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옥상에 올라간 날, 해리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은 떨렸고, 수염은 축 늘어져 있었다.
졸도 직전의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은 마주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해리가 내 다리 뒤에 숨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옥상으로 데려갔다.

처음 며칠은 숨죽인 채 30분이 지나도 꼼짝하지 않고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려가게 해 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다. 어쩌면 아무 생각도 못 하는 패닉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해리는 내 작은 움직임에도 바람에 나뭇잎이 날리기만 해도 깜짝 놀라며 더욱 몸을 움츠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이제는 땅바닥에 붙어만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여전히 나의 다리에 붙어 스스로는 더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나는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고 있었다. 30문, 40분, 1시간. 조금씩이나마 옥상을 영역으로 삼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이 작은 고양이에게 세상에 특별히 두려워할 것은 없다고 느끼도록 해주고 싶었다.

2주, 3주가 지나도록 큰 변화는 생기지 않는 것 같았다.

‘계속하는 게 괴롭힘이 아닐까?’
고민하던 어느 날, 해리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작고 어려운 한 걸음. 근 4주 만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더는 떨리지 않는 몸짓 속에서 생존에 대한 의지가 느껴졌다.

해리는 매일 조금씩 더 멀리,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걸었다.
바람에도, 비에도 흥미를 느끼는 듯, 궂은 날씨에도 머뭇거림 없이 옥상에 올랐다.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기심을 보일 뿐,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두어 달 후 해리는 완벽한 산책 고양이가 되었다.
내가 집에 있으면 현관 앞에서 울었다.
그 야옹 소리는 문을 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계단을 빠르게 올라 옥상을 순찰했다.

해리의 눈동자에는 햇살이 가득했다.
버림받고 주눅 들었던 그림자는 더 이상 없었다.
해리는 자신감으로 걷고,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며 당당하게 울었다.
그 모습은 마치, 실패와 역경을 딛고 자신의 나라를 되찾은 장군 같았다.

나는 해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해리야, 잘했어. 씩씩하게 참고 힘내줘서 고마워.”

그 순간, 나는 문득 생각했다.
해리는 아직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아기 고양이다.

그런데 나는, 중년을 앞둔 성인이면서도
아직도 옛 상처에 분개하고, 좌절하고 있었다.

어릴 적 나는 늘 혼자였다.
다쳐도 치료받지 못했고, 비를 맞아도 우산을 챙겨주는 가족은 없었다.
방학이면 창밖에서 친구들이 노는 소리에 상처를 쳐다보며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기대하며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곤 했다.

집에서, 혈연들로 인해 입은 상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들 중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해외에 있을 때도, 3년 동안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
의식불명에서 깨어났을 때 들은 첫마디는
“이 기회에 죽지.”라는 저주였다.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신을 독하거나 나약한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고 믿었다.

그저 나를 괴롭히는 기억을 떠올리며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지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해리를 칭찬하다 문득 생각했다.
이 어리고 작은 고양이는 어떻게 이토록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나는 보호자라고 자처하는 인간임에도 내 감정을 아직도 조절하지 못하고 있는데.

해리는 나보다 훨씬 어린 여린 생명체임에도 두려움을 밀어내고 세상을 향해 다시 다가가고 있었다.

어쩌면 옛일을 잊지는 못해도 조금은 떨어뜨려 놓고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사고를 전환하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연습 하다 보면 예전의 내 모습, 비틀림 없이 세상을 바라보던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변화의 의지가 싹트기 시작했다.

어쩌면 신이 감정에 휘둘려 세상에서 퇴보하던 나를 위해 이 고양이와의 인연을 이끌어준 것은 아닐까?

해리와의 만남은 내가 버림받은 고양이를 구한 것이 아니다.
고립을 택한 인간과 혼자가 된 아기 고양이가 서로를 구한 것이다.

해리와의 10년은 내 감정을 깊이 사색하고, 분석하기를 시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더 이상 나는 옛 상처에 울부짖지 않는다.

버림받은 아기 고양이는 과거의 기억에 갇혀 살던 나에게 치유의 문을 열어주었다.

해리와 함께한 시간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 회복의 여정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작은 고양이 해리에게 고마움을 담아

오늘은 해리가 좋아하는 간식 캔이라도 하나 더 챙겨줘야겠다.

노아를어미로 착각한 듯 계속 젖을 찾아 품을 파고들던 누리의 집 고양이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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