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허세를 벗고 나로 살아가기

삶은 결국 개인의 예술

by 이경화


학창 시절 내 머릿속에는 세상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예를 들면 1+1은 왜 2라고 결정되어 있는 거야? 물방울이 떨어지면 무수한 물방울이 생기기도 하고 아예 하나가 되어 뭉치기도 하지 않나? 라던지 모든 사람들에 잘해주는 사람보다 나에게만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것들이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하셨던 질문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업 중 뜬금없는 선생님의 질문을 아직도 기억한다. 양복을 빼입고 찾아온 사람, 캐주얼하게 입고 온 인상 좋고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 그리고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후줄근하게 입고 온 사람 중 너희들이 은행원이라면 어떤 사람에게 대출을 해 주겠냐는 질문이었다. 학습 내용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이유는 나와 학급 친구들의 완전히 다른 대답 때문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양복을 입고 찾아온 사람에게 대출을 해 주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는데 이유는 양복이라는 깔끔한 외모와 거기서 느껴지는 신뢰감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완전히 다른 의견이었다. 돈을 빌리는 것은 갚으려는 의지가 있고 신뢰가 가는 사람에게 빌려줘야 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외모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오히려 대충 입고 찾아온 사람에게 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연하게 갚을 생각을 하고 빌리러 오는 사람이라면 외모를 꾸미는데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외모를 잘 정돈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다 사기꾼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복잡한 생각이 없고 갚을 자신이 있기 때문에 후줄근하더라도 자신감 있게 은행까지 찾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특이하다. 특이한 애. 학창 시절 나를 정의하는 주변인들의 평가였다. 친구도 선배도 후배들까지 같은 단어를 사용했고, 선생님들은 나를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잘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나를 엉뚱한 짓을 잘하지만 사고를 만들지는 않는 학생, 혹은 지겹지 않게 잘 움직이고 잘 웃는 밉지 않은 학생쯤으로 평가하신 듯 나를 보며 피식 웃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그 피식거림의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저 왜 나를 보고 저렇게 재미있는 볼거리 보듯 하실까 궁금했으나 선생님들께 감히 물어보지는 못했다.

나의 어떤 점이, 도대체 어떤 모습에 그렇게들 짠 듯이 같은 단어를 떠올렸는지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하지만 다들 하나같이 당황한 듯 어물거릴 뿐, 명쾌한 설명을 해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럴 때면 조금의 언짢음을 담아 “이왕이면 ‘특일 하다’라고 해줘. 대체 불가능한 1인이란 뜻이지?” 하며 헛소리로 결론을 지어버리기도 했다.

스스로 정의하는 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덩어리다. 이 또한 특이한 점일지 모르겠다.

근자감 덩어리라는 자가 정의의 이유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그다지 즐겁거나 평범하지 않았던 성장 과정 탓이다. 보통 그 같은 상황을 겪으며 자란 사람이라면 타인과의 교류보다 무관심을 원하는 조용한 성향이 많을 거라 예상하지만, 반대로 완벽한 모습만을 드러내 타인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나르시시즘적인 성향의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타인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쓸모를 각인시켜야만 무리에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고 백조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두 가지 타입에 모두 속하는 동시에 두 가지 타입 모두에서 벗어나 있는 경계의 인간인 것처럼 느낀다.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거쳐보기도 했지만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늘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일희일비하며 감정을 참지 않고 모두 표현하며 살아보자고 결심하고 그렇게 해본 적도 있다. 후유증은 내가 조울증환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과 피곤함이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며 어울려 지내려고 했지만 결국은 모두 흉내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남은 인생을 위해 그냥 내가 편한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나는 별것 아닌 일에도 금방 달아올라 실수하고는 한없는 자기 비하와 좌절에 몸을 던졌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세상 어려움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자신감을 회복하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시간을 지나 심심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얻었다.


청년 시절의 나는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하고 싶어지는 일이 생기면 다른 이들이 숙고하여 계획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모든 단계를 건너뛴 채 일단 저질러 버렸다. 놀라는 지인들에게 “일단 해 보지 뭐.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 무슨 일이든 장담은 금물, 아님?”이라며 웃곤 했다. 사고 후 간신히 독립한 고시원에서 지낼 때 내가 떠올렸던 것은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속담이었다. 무사안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진심이었다. 내가 좌우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힌 후 안달복달 나를 들볶던, 가만히 흘러가는 대로 두던 결과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내 인생에서 나만의 경험으로 내린 결론일 뿐이다. 그저 권하고 싶은 것은 사람마다 상황은 모두 다르겠지만 지금이 아무리 괴롭게 느껴지더라도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100m 달리기 후 금은동 메달을 얻고 끝내는 경기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나와 일심동체가 되어 만들어 가는 개개인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삶은 살아냄, 그 자체로 각자의 영광이자, 아름다운 작품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내 지난 시간 또한 대부분의 인생들처럼 동전의 양면, 양초의 명암처럼 마음이 극과 극을 달릴 때도 있었다. 대화 중에도 어딘가 묘하게 공감의 포인트가 빗나가는 나에게 좌절을 느끼기도 했다. 산속 깊은 곳에서 자연인으로 살 자신은 없는데 이런 내가 인간 세상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끝내 정신병은 아니라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을 직접 찾아간 상담에서 듣고 한숨 돌린 적도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과 공감하며 살 수는 없고, 내 생각과 다르다고 잘못되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다른 사람들 또한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것 아니겠냐고 방향을 달리해서 바라보니 과연 그렇겠다 싶어 더 이상 나의 다름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게 되었다. 지금 나는 심적으로 좀 더 좌충우돌하며 사는 것 같다고 느끼지만 그 와중에 마음은 대체로 평온하다.

실패의 경험을 간직하지 않고, 호기심에 주저 없이 뛰어들고 보는 모습에 주변인들은 독특하다 했고, 스스로는 근자감(근본 없는 자신감)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같은 뜻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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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사람과 주위의 환경,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늘 모든 것을 유심히 살피고, 생각하기를 즐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특이함으로 통하는지, 왜 그것이 불편했음에도 계속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나의 성장 과정은 방임이었고, 가족들에게 나의 쓸모는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이었다.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어린 나에게는 아직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무일푼, 무계획인 채 타국으로의 유학을 그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었다. 집에서의 무거운 침묵 대신 학교에서는 장난꾸러기처럼 주위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며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가볍게 지내려 했다. 아무것도 고민하고 싶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기대는 전혀 갖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일진의 독후감 대필 요구에는 단호하게 “네 숙제는 네가 직접 해야 의미가 있지.”라며 진지하게 거절했으니 엉뚱한데 용기 있는 아이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어떻게든 학교가 늦게 마치기를 바라고, 친구와 함께 최대한 오랜 시간을 보낸 이유가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고 말하지 못했다. 평범함의 가면을 쓰기로 결심한 나의 마음을 아무도 눈치챈 사람이 없었기에 아이러니한 나의 태도를 ‘특이함’이라는 제외 카테고리로 묶어버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든 엉뚱함과 즉흥적이고 과감한 행동은 나만의 생존 신호였다. 그 시절 나의 마음속 열망은 단순했다.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나가고 싶다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서.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동화 같은 소원이었다. 그리고 지금 ‘고의로 죄를 짓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 편하게 살자.’는 좌우명 아래 나는 내 감정을 억누르지도, 과하게 분출시키지도 않으며 잔잔하게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평하기도 한다. 나는 늘 예민한 감각을 다듬으려 애쓰며 지내는데도. 여러 이유로 지금 나는 사람들과 섞이고 싶어 하는 동시에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그렇게 여전히 경계선에 선 채 현재를 건너뛰고 행복한 미래가 빨리 오기를 바라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 가장 좋은 점이라면 더 이상 가면 아래 나를 숨기지 않게 된 것을 꼽을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는 방치한 채 타인을 웃기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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