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지기 해리부터 4년 지기 누리까지
13년. 세월이 빠르다 하지만 크게 체감한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늘 사람들의 입버릇 혹은 습관 같은 말로 받아들였을 뿐이었는데.
며칠 전 고양이들의 정확한 나이와 건강 체크를 위해 검진 수첩을 뒤저본 날이었다.
11년 동안 해리와의 시간이 그나마 큰 사고 질변 없이 함께 해 온 날들이었기에 안도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수첩에 기록된 생년월일을 확인한 순간 머리가 띵 울리는 기분이었다. 자그마치 2년의 시간이 소거된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당연히 다른 고양이들의 나이에 대해서도 평균 2년을 어리다고 믿고 있었다.
늘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체구가 큰 데 비해 집사의 어설픈 훈육으로 동생들에게 맏이로서의 권위보다 늘 한 발짝 떨어져 지내는 해리는 그런 관찰자 시점을 유지함으로써 든든함을 위장하는 녀석이다. 사실은 집사를 너무 믿고 따르다 경쟁자들에게 예민한 태도로 대했다가 집사에게 찍힌 이후 기가 죽어 버린 가엾고 애처로운 녀석이다.
문을 열고 낯설고 어린 고양이들을 쥐 잡듯 잡다가 몇 번 걸린 후로는 자신감을 잃었는지 자신의 자리를 서랍장 속이나 옷장 위로 정한 듯 늘 집안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채리. 그런 모습이 너무 마음에 걸려 과할 정도의 칭찬과 관심을 퍼부었더니 최근엔 집 안 어디서나 명랑하고 당당한 태도로 지내는 똑똑한 녀석.
언니들에게 덤비지 못하던 작은 덩치의 어린 행복이는 오랫동안 막내 포지션이었다. 그래서인지 관심을 받고 싶어 애를 썼지만 무심한 집사는 그 애타는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다. 겨우 밥을 먹을 때만 예쁘다는 칭찬을 오롯이 받을 수 있었던 행복이는 잘못된 애정관을 갖게 되었나 보다. 예쁘다고 쓰다듬을 받을 때면 꼭 아플 정도로 물어대는 것으로 애정을 되돌렸다. 그리고 밥을 먹어야만 오롯이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집사를 볼 때마다 밥을 먹다가 지금은 비만 고양이가 되어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로 집사의 걱정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집사의 마음속에서 외모로 가장 예쁜 고양이가 자신임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모든 행동이나 눕거나 앉아있을 때의 교태로움 혹은 귀여움 그 자체인 것이 타고난 모델처럼 자태라는 말을 사용하게 만드는 녀석인데 정작 행복이는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노아는 눈을 떼기도 전에 구조되어 여태까지 집에서 살아온 고양이이다. 길에서의 삶이란 기껏 일주일 정도였지만 그 갓난 시절 길에서의 고생은 아마도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단지 기억이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집 안에서만 자라왔기에 고생의 종류는 다른 녀석들과는 애초에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아는 심심함을 참지 않는다.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아무것도 없는데도 혼자 즐겁게 뛰어다니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털고을 찾아 드리블하며 으르렁대며 모두를 경계하며 으스댈 때도 있다. 무엇보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구박을 받고 도망치다가 집사를 발견하면 냉큼 집사 껌딱지가 되어 다가오는 누나 고양이들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센 척을 하며 집사의 애정을 확신하는 듯 조금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구조되어 함께 한다고 해도 눈치를 보는 다른 고양이들과는 확실히 조금은 결이 다른 녀석이다.
누리는 어떤 성격이라고 이해하면 좋을까?
함께 한 시간을 확인했을 때 가장 놀란 것이 누리의 나이였다.
벌써 4년이라는 누리의 삶의 시간들은 정말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우리 집 고양이들이 자랄수록 조용한 성격이 되었다는 것과 너무 집사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안쓰러움, 그리고 자신감 부족이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 녀석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집 고양이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집사였던 걸까?
그들에게 윽박지르거나 훈육이라는 이유로 때리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뭔가 많이 부족하고 잘못된 집사였던 것 같아 마음이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