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작은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일부터 시작하자.
내 안의 작은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일,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불편한지 알아차리는일.
그것이 잘 안 되어서 내 마음도,
남의 마음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남에게 사랑받는 모습으로 있으려 했구나.
- 22.03.24 일기 -
이전에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고 우리 반에도 증상을 호소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어서 그 친구들은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가곤 했다. 사실 인플루엔자는 독감과 증상이 거의 유사하여 육안으로 보기에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본 후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인플루엔자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수업 중에 어지럽고 열감이 느껴져서 보건실에 가서 열을 재보니 38도가 넘었고 인플루엔자를 의심하여 조퇴를 하고 집으로 곧장 달려왔다. 집으로 오니 엄마가 열을 재고 해열제를 먹였다. 그리곤 침대에 눕혀 쉴 수 있도록 자리를 펴주셨다.
그렇게 해열제를 먹고도 2시간이 넘도록 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의식이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자 나는 엄마를 불렀고 엄마는 해열제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알고 있던 민간요법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열이 나면 더 몸을 뜨겁게 하여 땀을 흘리게 하면 열이 내려갔었던 기억을 더듬어 38을 넘어 39도가 된 나에게 그 방법을 적용시켰던 것이다. 너무 뜨거워서 답답하다며 여러 번 말했지만 엄마는 뜨거운 몸에 이불을 하나 더 덮고 전기장판까지 틀었다. 이미 열로 뜨거웠던 내 몸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방법이 맞다며 엄마를 제발 한 번만 믿어보라며 나를 설득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내 의식은 혼미하다 못해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갔었고 헛소리까지 해대기 시작했다. 그때의 열은 42도를 찍고 있었다. 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뒤늦게 느낀 엄마는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나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응급실에서는 42도가 된 나의 열을 식히기 위해 해열제 투여는 물론 온몸을 물과 알코올로 닦여서 열을 발산시키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그제야 엄마는 자신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과 나를 더 위험하게 만들 뻔했다는 것을 알고 병원에 늦게 온 것을 후회했었다.
엄마가 안아주는 시점이 잘못되면,
즉 자신이 원할 때 안아주지 않거나 계속 안아주길 원하는 데 내려지면 특히 저항한다.
그들은 탐색을 거부하면서, 만약 엄마가 그들을 안아주지 않고 그들과 놀려고 한다면 화를 낸다.
그리고 동시에 달래지는 데 오래 걸리며,
분리로 인해 고활성화된 애착행동의 누적된 좌절감 때문에
안아줄 때조차 분노의 저항과 매달리는 것이 뒤섞여 나타날 수 있다.
- Jon G. Allen, 애착 외상의 발달과 치료
아기는 자신이 어딘가에 불편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는 있지만 이것이 정확히 배가 고파서 불편한 건지, 기저귀에 본 대소변 때문에 불편한 건지, 추워서 또는 더워서 불편한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주 양육자가 그 불편감을 해결해 주면 그제서야 자신이 배가 고파서 불편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우유를 자신의 입에 물려줌으로써 불편감이 해결된 경험을 바탕으로 아기는 다른 것에 불편감을 느낄 때와 배고파서 느낄 때를 구분하며 주 양육자에게 우유를 달라고 하는 자신만의 신호를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엄마가 그 당시 열이 나던 나를 위험하게 할 뻔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분명히 엄마의 방법이 더 힘들다고 답답하다고 말했는데 내 말을 듣지 않고 엄마의 방법대로 밀고 나갔던 사실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과 평소 엄마와 나와 의견충돌이 있었을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보여준 모습을 대입해 봤을 때, 내가 말 못 할 아기였을 때는 어땠을지 상상이 가기 시작했고 이내 내 마음은 더욱 아파오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다고 했을 텐데 이를 제때 알아차리지 않는 엄마, 슬픈 감정이 드는데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외면하는 엄마, 내 배를 덮고 있는 이불이 무거워서 울고 있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엄마. 상상만 해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례를 통해 나는 내가 왜 내 감정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안개처럼 흐려지기만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자신의 신호에 따라
거의 반응하지 않는 신생아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력을 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이 깊이 결여되어 있다.
- Ainsworth, Blehar, Waters & Wall, 1978 -
“오늘 기분은 어때요?”
상담 초기에 자주 듣던 질문이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 질문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대답은 항상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나 “정확히 말하기가 어려워요.”였다. 늘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안개처럼 뿌옇기만 했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도 계속 안개만 짙어져 갈 뿐 내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알아차리기 어렵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주 양육자와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항상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하면 30초 이상을 가본 적이 없었다. 아예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되지 않았으며 내가 엄마를 찾았을 때 항상 고개를 나에게서 피해서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서 “엄마 한 번만 안아줘”라고 하면 엄마는 “엄마 빨래 널어야 돼.” “가스레인지에 냄비 올려놨어.” 또는 "엄마 귀찮으니까, 네가 안아"라며 팔을 벌려주지도 않고 내가 벌려서 안겨야만 했다. 그런가 하면 엄마의 무릎에 누워있으면 엄마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항상 다른 곳을 향해있었다. 성인이 되어 이런 순간들을 떠올리면 이렇게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말 못 했을 어린 아기는, 유치원 다닐 시절의 는, 초중고 시절의 나는 어땠을까.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엄마를 보며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것부터 배우지 않았을까? 이런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잘 알아차리기는커녕, 감정조절을 잘하는 안정적인 아이로 자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계속해서 지적하는 가정환경 탓도 있을 거예요.”
앞선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고 그저 숨을 쉬기만 해도 지적을 받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그러다 보니 슬픔에 위로를, 기쁜 일에 즐거움을, 우울할 때 따뜻함을 받는 일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슬프거나 아프면 내가 뭔가 잘못된 것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아픈 말들을 나에게 하셨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말해도 다 부모님의 주장을 내세우기 바빴고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시지 않았다. 정말 마음 아픈 일이지만, 보고 싶었던 아빠를 향해 달려가다가 대문에 턱이 찢긴 아이를 향해 덜렁댄다며 혼을 낸 아빠에게서, 순수하게 아빠를 좋아해서 앞만 보고 뛰쳐나갔던 아이의 마음이 읽혔을 리가 없었다. 이런 원가족의 의식체계가 무의식 중에 나의 의식체계로 어느덧 자리 잡혔던 것이다.
“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안개처럼 흐려지기만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애쓰지 마세요. 그냥 안개처럼 흐려져있어도 괜찮아요. 그 모습 그대로 안아주고 기다려주세요.”
선생님은 애쓰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또 본능적으로 애쓰기 시작했다. 상담이 끝난 이후 나는 평소 생활하면서 나의 감정이 어떤지, 생각은 어땠는지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떠오르는 모든 감정과 생각을 재단하지 않고 그 끄나풀 한 조각만이라도 보이면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귀 기울여서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적을 수만 있다면 나의 일기장에 말이 되든 안되든 맞춤법에 틀려도 모두 옮겨 적으려고 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어색하기도 하고 감정이 어떤지 스스로에게 물으면 한 줄 정도로 끝날 정도로 대답이 짧았었다. 하지만 그 후로 며칠이 더 지나자, 내 안의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이리저리 감정들이 막막 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엘리베이터가 딱 타이밍에 맞게 빨리 올라와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어.’
‘오늘 아무 사고 없이 일을 마칠 수 있어서, 평범한 근무여서 너무 기분 좋았어.’
‘뜨거운 걸 먹었더니 입천장에 물집이 잡혔어. 너무 아파.’
‘퇴근하고 왔는데 집에 불이 다 꺼져 있는 걸 보니 더 외롭게 느껴지네.’
‘몸이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뭔가 모르게 화가 나.’
이렇게 마치 주체할 수 없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내 마음은 고요한 호수에서 시끌벅적한 놀이터가 되었고 이런 수많은 감정들을 동시에 느낄 때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내 마음을 몰랐던 것인가 깊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런 여러 가지 감정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말도 많고 많은 것을 느끼는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였다는 걸 알아가다 보니 이런 목소리들이 너무나도 반갑게 느껴졌고 더욱 나 자신이 사랑스러워졌다. 지금도 나는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말한다.
‘너의 모든 감정, 생각, 마음은 나에게 너무 중요하고 소중하단다. 그러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 말해줘.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