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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닝 Mar 29. 2024

32살에 내가 수학문제집을 집어든 이유?





 올해 나의 나이 만 32살.

간호사로 일한 지 만 8년이 다되어가는 이 시점에 내가 다시 개념원리 수학 문제집을 집어 들었다. 물론 이 나이에 수능공부를 다시 해서 의대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집어든 것은 아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생활하다 보니 일상이 따분해졌고 그래서 평소에 좋아하던 스도쿠 책을 펼쳐놓고 하루에 5판씩 풀어갔었는데 문득 빈칸에 중복되지 않게 숫자를 끼워 넣는 단순한 추리게임보다 더 머리를 쓰면서 창의적으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 보니 고등학교 수학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당시 나는 수학을 좋아했었다.

답은 하나일지 몰라도 하나의 문제를 풀어가는 풀이법은 다양하며 기발한 풀이법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풀이법을 좋아하는 데는 아무래도 당시 다니던 수학학원에서 들었던 칭찬 한마디가 생각난다. “와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해내다니.. 대단하다!”


 어느 한 수학문제를 직접 칠판에 나와서 풀어보라는 수학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민하는 흔적들을 칠판에 고스란히 적어가며 풀었는데, 답이 맞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수학선생님은 내가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기존의 정해진 풀이법과는 다르게 창의적으로 풀어가는 모습이 좋다며 칭찬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수학에 흥미를 가졌던 것 같다. 이날의 칭찬이 너무 인상 깊었는지 나는 아직도 공기, 학습실 안에 조명, 칠판의 색깔, 선생님이 서있던 모습까지 다 기억이 날 정도다.


 그렇게 수학에 흥미를 붙여가던 나는 노력해도 잘 안되었던 언어영역은 점수를 잘 못 받았었지만 수학만큼은 평소에 많이 틀려도 시험 때가 되면 전교 1등을 몇 번 할 정도로 점수를 잘 받아냈다. 당시 내가 수학점수가 항상 높게 나오는 것을 보고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 무슨 문제집을 푸는지 물어보는 친구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다되어가는 이 시점에 다시 수학문제집을 집어든 이유는,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할 때뿐만이 아니라 일상에 나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문제들과 고민들 앞에서 조금 더 다양한 문제 해결법을 생각하고 고민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다양한 책들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고 그동안 그렇게 해왔었지만,

뭔가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사람들의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조언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진 탓도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어디까지인지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시간에 쫓기면서 정해진 문제를 다 풀어내야 했던 고등학생때와는 달리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문제를 고민할 수 있으니 좋았고 비록 빙빙 돌아가며 문제의 답에 도착해도 그 풀이가 틀렸다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문제 풀이집에서 풀어놓은 방법과 나의 방법을 비교해 보면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원리로 풀어갔는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서 생각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아 좋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병원 이외에 다른 것에 몰입하니까 더 재밌었다. +_+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좀 들을 필요가 있는 거 같아. 물론 혼자서 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고 잘 해내니까 좋은데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나를 2년 동안 봐오신 우리 병동 파트장님께서 마지막으로 병동을 떠나기 전에 조언을 해달라는 나의 부탁에 해주신 말이었다. 그렇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얻는 것에 자연스러워졌지만 그래도 아직 나의 문제해결 방식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수학문제를 시간에 쫓기며 풀어댔던 나는 아무리 고민을 해도 문제가 풀어지지 않을 때 문제집 풀이를 보기보다 혼자 풀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끌고 갔었다. 성인이 되어 문제를 푸는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풀어보려고 해도 답이 안 보이고 문제가 막히면 책을 덮고 다른 시간에 다시 풀어보거나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풀이법을 전개하려고 해 봤다. 그렇게 하다 보면 답이 나오기도 했고, 나의 계산 실수들도 보이면서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집 풀이를 보면 문제에 대한 답을 빨리 찾아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의 생각의 끈이 딱 끊겨버린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나의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일부러 답지를 먼저 보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게 틀린 게 아니에요. 그저 다른 것일 뿐이죠. 누구는 어려움에 닥치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먼저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문제를 더 고민하고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거예요.”


 파트장님의 말을 듣고 은연중에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던 그날에 의기소침에진 나에게 상담선생님이 정곡을 찌르셨다. 문제를 푸는 방법이 다른 것일 뿐 어느 한쪽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 나도 모르게 다른 것을 한쪽을 옳고 다른 한쪽을 그른 거라고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괜스레 수학문제를 푸는 것 하나가 나의 마음까지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될 줄이야. 수학문제를 풀겠다고 한 것이 정말 최근 들어 잘한 일 중에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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