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구 소녀> 리뷰
천재 야구소녀로 불리던 주수인은 고등학교 야구부의 유일한 여성이다. 수인이 원하는 건 프로팀에 입단하여 야구를 하는 일이지만 체력은 함께 시작한 남자 선수들에 비해 점점 뒤처지고, 손에 피가 날 때까지 야구 연습에 매진하지만 프로의 강도와 속구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수인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건 야구뿐이고 중요한 건 야구를 할 수 있는가, 그뿐이다.
<야구소녀>는 일본 청춘 스포츠 만화와 같은 결의 장르 영화이다. 사실 스포츠 드라마의 클리셰를 많이 찾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야구소녀>에서 유일하게 클리셰를 비껴가는 차이가 있다면 프로타고니스트가 여성이고, 그가 들어가고자 하는 세계는 남성들만 진입이 허용되었던 곳이라는 것. 이 하나의 차이는 영화를 많은 부분에서 새롭게 보이게 하고 또 울컥이게 만든다. 당연히 기존의 세계는 갖은 룰로 진입을 막고, 그 이유를 단순히 성별로 볼 수는 없다. 남성 선수와 동일한 조건에서 더 뛰어난 실력을 내지 못하고, 그 말은 곧 승부가 전부인 스포츠 세계에서 ‘팔리지 않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야 너 내가 너 여자라서 반대하는 거 같아? 넌 그냥 실력이 부족한 거야”라고 그만둘 것을 권하는 (프로 입단에 실패한) 코치의 대사는 크게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지만 되려 “여자니까 안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클리셰를 벗어난다. 그리고 그 코치는 실력, 사실은 힘만 부족한 수인이 매일 밤에 던지는 야구볼 전부에 피가 묻어있는 걸 보고 생각을 바꾼다. 그에게는 정말 여자라서 안되는 게 아니라 실력이 문제였기 때문에. 달리 말해 실력이 해볼 만 하다면 지지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나 프로 입단 결국 실패했는데 나 같은 코치도 괜찮냐’고 묻는 코치에게 수인은 대답하는데 그때의 영어 자막이 ‘I’ll be a pro for you’로 나온다. 이때의 당신(you)는 눈앞에 있는 코치이지만 이 말을 듣고 울컥이고 짜릿할 ‘당신’은 정체성으로 인한 벽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된다. 제대로 된 야구 경기 한번 나오지 않는데도 이 이야기를 보면서 자주 울컥했고 짜릿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다음 여자 후배가 그녀를 롤 모델로 삼으며 노력하는 시작이 됐기 때문에. 잘 만든 만화를 보면 짜릿하잖아, 만화 같을 거라면 이런 감정은 줄 수 있어야지. 대체로 선한 사람들의 희망을 주는 이야기가 서사적으로 불완전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이미 수인이 처한 모든 상황은 지극히 현실이니까. 그리고 그 현실의 벽을 극복한 실존하는 여성 야구선수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시작이 되었다.
영화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시간을 채집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박제하여 만드는 장르다. 이 영화는 이주영이라는 배우에 기대고 있는 것을 넘어서 이주영을 위해서, 이주영이 존재한 덕분에 만들어졌다. 숏컷을 하고 보이시한 옷을 입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질문을 견디며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것이 왜 안되냐’는 또다른 질문을 던져 온 배우 이주영의 캐릭터가 아니라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다른 배우는 상상하기 힘들다. ‘하면 되잖아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기 싫다고요’ 이런 스포츠 드라마의 대사가 떠있지 않은 것도 남성 선수들이 사용하는 휴게실 대신, 화장실 한 칸을 잠가 자신만의 휴게실을 만들어 쓰며, 탓하지 않고 투덜대지 않고 무심하고 묵묵하게 필드를 뛰는 주수인의 존재가 배우 이주영과 같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주수인이 새벽의 운동장을 뛰고 있을 것 같아 심장이 뛴다. 무리 밖의 모든 야구소녀를 응원해. You will be a pro for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