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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Aug 10. 2020

장마

7월에 시작된 장마는 8월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날씨 예보는 오락가락해서 일주일 내내 내린다던 비가 휴가지에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지만 곳곳에 비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언제 와락 쏟아질지 몰라서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늘 우산을 챙겨 나갔다.

비는 산발적으로 쏟아졌다. 말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지상 위 모든 것을 씻어버릴 듯이. 이만하면 됐다 싶은데도 천둥번개까지 몰고 와 요란히, 넘치게도 내려서 깊이 잠들지 못하는 밤도 더러 있었다.



넘실거리는 강물, 침수된 도로들, 부서진 집, 떠내려간, 떠내려간 사람들. 집 근처 도림천에도 물이 가득 찼다. 퇴근길, 물에 잠긴 도림천 위 다리를 건너는데 검고 탁한 물아래 농구코트와 가로등이 잠겨있었다. 며칠 전까지 사람들이 걷고, 뛰고, 놀던 길이 보이지 않는다니. 내 키 보다 한참 큰 나무가 물살에 가지를 내맡기고 흔들리는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얼른 자리를 떴다.



이번 여름은 열대야도 며칠 겪어보지 못하고 입추를 맞이했다.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일 법한데도 반갑거나 기쁘지 않으니 이게 다 여름이 여름답지 못했던 탓이다.

아직 장마도, 코로나도 끝나지 않아서 일까. 습하고 물기찬 기운이 몸속 곳곳에 들어찼다. 올해는 온통 빼앗긴 듯한 기분, 무언가 자꾸 잃는 기분이 든다. 젖은 솜처럼 몸과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있다.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비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기다려봐도 더 세차게 쏟아질 뿐이라 우산을 단단히 붙잡고 빗 속으로 뛰어들곤 한다. 흠뻑 젖어도 어쩔 수가 없다. 가야 하니까. 그런데 이제 가야 할 곳도 잃은 사람들은 어쩌나.

비는 멎어도 젖은 땅이 마르기까지는 한참이겠지 싶어서, 그럼 정말 어쩌나.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이 한순간 사라진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는데, 가진 적 조차 없었는데도 왜 자꾸 잃은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 ‘아, 인간은 너무나 약하고 무력한 존재구먼.’ 하고 생각이 닿는 순간. 혹시 그걸 알려주려고 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기, 이만하면 다 안 거 같습니다만 이제 그만 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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