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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Mar 04. 2024

잣 한 알의 기쁨과 슬픔

회사 안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하루는 너무 느리고, 한 달은 너무 빨랐다. 시간의 속도보다는 일의 진척도로 매일을 구분하던 사이, 두 번의 계절이 바뀌어있었다. 그만두지 않으면 이대로 번아웃이 올 것만 같았다. 계획에 없던 퇴사였다.

회사에 가지 않으니 또박또박 정직하게 흐르는 시간을 체감했다. 자도 자도 낮이었다. 병에 걸린 게 아닌지 걱정할 만큼 많이 잤다. 일주일 정도 매일같이 허리가 찌뿌둥하게 아플 만큼 자고 일어났더니 미약하게나마 몸에서 에너지가 솟았다.

경주에 내려가 우리 인자 씨가 해주는 밥을 아침, 저녁으로 양껏 먹었다. 몸을 쓰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아서 무작정 걷는 날이 많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답도 없는 질문들을 하다 보니 하루가 저물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낙관과 비관, 긍정과 부정, 다짐과 불안을 반복하다가 아무렴 어떻게든 살겠지로 마무리하곤 했다.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닌 초봄의 날씨,

인자 씨와 천마총을 걸었다.

보폭을 맞춰 천천히 걷던 인자 씨가 불쑥 잣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 천마총에서 잣 주워다가 죽 끓여 먹은 거 기억나나?"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인자 씨는 그 무렵 크게 아팠고, 1년 넘게 서울의 병원에 있다가 경주로 돌아왔다. 겨우 몸을 회복하고서 아침, 저녁으로 운동삼아 천마총을 걸었다. 그 무렵 그녀의 낙은 잣나무 밑에 떨어진 잣 줍기였다. 한 알, 두 알 떨어진 잣을 발견하고 줍는 게 어느 금은보화보다도 기쁘고, 좋았다고. 마냥 떨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잣나무를 흔들기도 한 집념의 여인이었다. (지금은 그러면 안 된다) 그렇게 모은 잣으로 만든 게 내가 먹은 잣죽이었다.

자나 깨나 잣 주울 생각만 하던 어느 날, 경주에 태풍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잠을 설친 그녀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다.


"이불 넣던 커다란 봉다리. 포대자루만 한 거를 두 개 딱 들고 엄마 혼자 천마총에 갔거든?

 갔더니 나무 밑에 잣이 한가득이라. 줍고, 또 줍고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데이.

 그거를 두 봉다리 채워가 질질 끌고 와서는 옥상에 말렸더니 마 다음 날부터 잣이 딱 보기가 싫은기라."


어쩐지 한 때 잣을 많이 먹었더랬다. 생으로도 먹고, 죽으로도 먹은 기억이 생생했다.

맛있다, 맛있다 한 덕에 많이 먹은 줄 알았더니 잣 줍기의 끝을 봐버린 바람에 많이 먹었던 거였다.


"근데 사는 것도 그렇다. 너무 모자란 것도 안 되지만 넘쳐도 안 좋은 거야. 약간 모자라다 싶을 때가 좋을 수도 있다. 살아보니까 그렇대."


한 알씩 줍던 그 기쁨,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금은보화처럼 기뻐하던 마음을 잃지 않으려면 너무 많이 가지려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균형, 언제나 균형이 중요하다. 몸과 마음, 일과 생활, 개인과 집단, 사랑과 우정, 꿈과 현실 같은 것 사이에도. 욕심을 내면 꼭 탈이 난다. 두 포댓자루로 잣에 질려버린 인자 씨처럼.


천년을 넘게 지켜온 무덤과 그 옆의 빼곡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잣 이야기로 깔깔 웃던 날.

그날 밤은 내 마음에 잣 한 알은 뭘까 고민하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 잣 한 알과 집념의 여인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오래전 나를 지나온 이야기. 꼬리 없는 질문의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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