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그가 생각났을까.
올곧은 눈으로 담백하게 진심을 뱉던 사람.
별 볼 일 없는 나를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바라봐주던 사람.
술을 마시다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을이 되는 건, 봐주고 있는 거라고.
그와의 관계에서 나는 늘 우위에 있었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알겠다. 그도 나를 봐주고 있었다는 걸. 그는 을의 위치를 자처했다. 뭐가 부족하고 못나서가 아니라 더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대단한 사람처럼 봐주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진짜 그런 줄 알았다.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어린애였고, 그는 왜 겨우 그 정도였던 나를 봐주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그토록 순수한 마음은 다시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왜 일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