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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Nov 24. 2019

오늘

난생처음 연예인 팬미팅에 다녀왔다. 위염으로 아파 죽겠다면서 팬미팅을 가다니. 고향에 다녀오는 일정과 겹쳐서 다음 날 회사 사람들에게 나눠 줄 찰보리빵도 달랑달랑 들고 갔다. 가는 중에 ‘내가 여길 왜 가고 있는 거지?’하는 현타도 있었으나 두 발이 먼저 걷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었다. 나조차도.

“얼굴에 분 바른 것들은 믿지 마!”

언젠가 한 드라마 PD의 강연을 갔을 때 들었던 말이다. 방송가에는 공공연하게 얼굴에 분 바른 것들과는 상종하지말라는 말이 있다며 그들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은 다르다고 했다. 연예인들이 도대체 어떻길래 싶었지만 곧바로 잊어버렸다. 예능 PD인 친구도 최근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와 작업을 하면서 치를 떨었고, 다시는 배우와 작업하지 않겠다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한 배우의 팬으로서 팬미팅을 다녀온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최악이던 때에 집에 앉아 그와 그의 작품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
패션회사에 다닐 적 시간이 날 때마다 마케팅실과 디자인실에 쌓여있던 잡지를 한 움큼 집어 읽어 댔었다. 온갖 연예인의 화보와 인터뷰를 빠짐없이 읽던 중에 눈에 띈 배우가 바로 이 배우다.
산책과 와인을 좋아하고 사색을 즐기며 외로움과 고독을 사랑한다던. 가장 좋아한다는 영화가 겹쳐서 눈여겨보았었다. 그 후 그가 나온 드라마를 보면서 그는 내 마음속 1순위 연예인이 되었다. 그는 1년 동안 두 작품을 연이어하고 신인상을 휩쓸었다. 상을 타고, 스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팬들은 흔히들 ‘내 배우 더 빛나게 해 줄 거야.’ 한다는데 나는 ‘쟤도 열심히 사니까,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했었다.

나는 이 배우의 한결같음이 좋다. 위태롭고 불안정한 자신의 상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는 그 강한 의지가 좋달까.
이미지에 갇히지 않은 수더분함과 진실성이 있다.
연기에 집중할수록 오히려 자신을 자꾸 잃어가는 느낌이라 고민이 많다는 그를 보면 딱 그 나이대, 내 주위 친구들 같다. 나는 그를 보며 다른 세계에 사는 듯 보이는 이들도 다르지 않음을 본다.
그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스스로를 몰아붙일수록 잃어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면서. 다른 최선의 방법을 모르기에 스스로 골방에 갇히는 그를 보면서 나를 본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줄 수 없다. 나도 모르면서 나아가고 있기에.
팬미팅 자리에는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천여 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보러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그를 통해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의 마지막 선곡(이라 쓰고 재롱이라 읽음)은 오왠의 오늘이었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어찌나 절절하게 부르던지 가사 하나가 날아와 콕 박혔다.

‘Take it easy~~’


한 팬이 배우에게 애썼다는 말을 전해서 그도 팬들에게 애썼다고 말했다. 나는 애쓴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나와 당신에게 좀 말해줘야겠다. 나와 다르지 않을 모두에게.

‘참으로 애썼소.’

내일도 힘내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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