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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Jan 11. 2019

면접의 기억

부디 최소한의 예의라도

오랜만에 연을 만났다. 연이 내 글을 읽은 모양이었다.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던 이야기. 정작 글을 쓰는 내 마음은 무던했는데, 읽는 연의 마음은 달랐나 보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무척 쓰렸을 그 마음을 알아서, 여린 마음의 연은 눈물이 났다고 했다. 20살 때부터 내리 3년을 함께 살아 그런지 연은 나를 잘 안다. 특히나 서글프고 서러운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정말이지 괜찮았다고, 이 정도쯤은 이제 별것도 아니라고 나는 연을 안심시켰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굳은 마음을 갖게 된 것,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만의 면접 뒷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어 카페가 문을 닫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첫 번째 이야기: 남자가 좋아         


직장 상사들의 가십거리로 소비되며 나 자신이 먼지만큼 작게 느껴졌다던, 그러고서도 ‘또’ 떨어졌다던 그 면접. 사실 나는 그 면접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불합격을 예상했다. 면접관이 아주 노골적인 질문을 했다.

“사실 우리는 남자가 편하고 좋아요. 우리 회사는 외근과 출장이 많아서. 그 부분은 어떤가요?”

'편하고 좋다.' 순간 한 지원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1차 면접자 20명 중에서도, 최종 면접자 6명 중에서도 유일한 남자였던 한 지원자.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짐짓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잘해 낼 수 있다고, 남자보다 체력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정해진 모범답안을 앵무새처럼 읊었다.      


그날 면접장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동기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뭐, 성별은 당장 바꿀 수도 없는데 그걸 가지고 이러면 어쩌자는 거람.”

그가 볼멘소리를 했다. 그 말이 우스워 내가 되물었다.

“시간 좀 주면, 천천히 바꿀 수는 있고?”

그가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차라리 고마웠다. 괜한 희망을 품고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날, 면접장을 나와 소지품을 챙기며 관계자에게 물었다. 채용 인원이 몇 명이냐고. 한 명 내지는 두 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첫 출근일은 3일 후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면접장을 나선 지 두어 시간 만에 결과가 통보되었다. 예상한 결과였다.     



두 번째 이야기: 허름한 건물 속 그곳


“난 말이야, 지금은 퇴사한 전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울었어.”

연이 말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왜? 참을성 없이 이유를 재촉했다.

“회사가 있었던 건물이 엄청 허름했거든. 다 무너져 가는 건물에 간판도 없는 곳인 거야. 이제 와 이야기지만, 그땐 정말이지 내 처지가 이 정도인가 싶어 슬펐어.”

그 회사는 연이 입사한 지 채 3개월이 되지 않아 번듯한 신사옥으로 이전했고, 연은 1년쯤 그곳에서 일했다. 비록 보수는 적었지만, 그곳에서 연은 세상을 더 선하게 하는 큰일들을 해냈다. 면접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선하고 배려 깊은 연이 자신과 참 닮은 일을 한다고만 생각했다.


누군가는 회사 외관이 무슨 대수냐 하겠지만, 나는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안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다. 허름한 건물에 나 자신이 투영되어 스스로 초라하게만 느껴졌던 날. 내가 찾았던 그 회사도 연의 이전 직장처럼 선한 목적의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귀여울 만큼 작은 보수에도 사명감으로 일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건물 1층에는 국밥집이 있었다. 3대쯤은 거뜬히 대를 이어 왔을 법한, 허름한 외관의 국밥집이었다. 건물 계단에는 오래된 타일이 깔려 있었다. 요즘은 좀처럼 볼 수 없는 빛바랜 상아색의 타일이었다. 그 회사의 대표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왜 이런 곳까지 왔냐고 물었다. 보수가 많이 적을 거라고,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연이 이 대목에서 피식, 웃었다. 연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선한 의지로 1년이나 묵묵히 일한 연과는 달리 나는 그 회사에 끝내 가지 않았다. 그 회사 탓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자신이 없어서였다.      



세 번째 이야기: 자기소개 도돌이표


“아, 나는 그런 적이 있었어. 자기소개만 3번을 시켰던 면접.”

이건 내 이야기다. 지난해, 모 대기업 최종 면접엘 갔다. 최종 면접은 대개가 그렇듯 임원들이 면접관으로 와 있었다. 면접장 바깥에서 자신을 주임이라고 소개한 젊은 인사 담당자가 재차 당부를 했다. 가운데 자리가 사장님이시라고. 사장님 보시기에 최적의 구도이니 ‘절대!’ 정해진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말라고. 면접용 정장을 칼같이 맞춰 입은 여성 지원자 5명이 일렬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순서대로 자기소개해 보세요.”

“이번에는 역순으로, 다시.”

“아, 아직도 모르겠네. 다시 원래 순서대로 해 봐요.”  

당황스러울 만큼 단순한 질문 앞에, 나를 포함한 지원자의 마음이 요동쳤다.


“애초에 우린 버린 카드였나 봐요.”

면접장을 나오며 누군가 힘없이 말했다. 그런 것 같네요, 마음으로만 대꾸했다. 부정이라도 탈까 싶어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했다. 정말 조금도 궁금한 것이 없었을까. 까짓 질문 하나가 그렇게나 어려운가. 하다못해 취미라든가, 좌우명이라든가 그런 형식적인 성의조차 아까운 걸까. 부아가 치밀었다. 이렇게 무례한 곳은 나도 싫어. 오라고 절을 해도 절대 안 가! 어깃장을 놓았다. 물론 속으로만.     





최소한의 예의


가끔 삶은 삼류 드라마보다도 뻔하고 유치하다. 의도하지도 않았건만, 회사 건물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면접장의 청일점. 그였다.(면접을 본 그 회사는 지금 다니고 있는 본부의 자회사고,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다.)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이곳과 인연이 닿은 이, 그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여자 면접자 19명을 제치고 단 한 명의 남자 지원자가 최종 합격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건, 결코 아니다. 대학 동기의 말마따나 ‘당장 바꿀 수도 없는’ 성별을 트집 잡은 그 면접관의 태도를 지적하고 싶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재차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온갖 공격적이고 모멸적인 질문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던 한 여성 지원자. 면접이 끝난 뒤, 일순간에 낯빛을 바꾼 그는 면접장 문을 나서기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비록 오늘은 지원자로서 이곳에 왔지만,
이 문을 나서는 순간 저는 귀사의 고객입니다.
그걸 잊으신 것 같아서요.”


이 이야기가 실제인지 실제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최선을 다한 자가 날 마지막 일침이라 많은 이들이 통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침 댓바람부터 긴장한 마음으로 자리해 준 지원자들을 최소한 그런 식으로는 대하면 안 되지, 싶은 마음이랄까. 지원자들이 갖예의만큼은 바라지도 않는다. 부디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만이라도 보여 주시기를…. 뭐, 싫대도 어쩔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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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는 말.

‘남자가 더 좋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 정말 치졸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우린 대답할 기회를 줬고, 네 대답이 충분치 않았을 뿐’이라는 식의 책임 전가.

차라리 남자를 뽑겠다고 해, 남자를!


더하는 말 2.

떠오르는 면접의 기억, 다들 있으신가요?
댓글로 그 경험을 나눠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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