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참견이 불편한 이유
우리 회사에 때 아닌 ‘실내화 논쟁’이 일었다. 그 시작은 내가 다른 부서 어느 분에게 받은 ‘지도편달’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회사는 화장실이 사무 공간 바깥에 있다. 엘리베이터 앞 공간에 정수기와 파쇄기, 화장실, 창고 등이 있어서 특정 용무를 위해서는 사무실 문 밖을 나가야만 한다. 물론 12층짜리 건물 중 어느 한 층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곳도 실내이기는 하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루는 화장실을 가려고 막 사무실 문을 나서는 참이었다. 그분께서 내게 말했다.
“저기, 내가 미안한 말 한 마디만 해도 될까?” 썩 유쾌한 이야기가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실내화는 사무실에서만. 화장실 갈 때도 실내화 신는 거, 예의가 아니야.” 당황한 내가 머쓱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하자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했다. “내가 당신이니까 알려주는 거야.” 생색과 함께 그는 홀연히 가던 길을 갔다.
그의 지적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를 공격하거나 고압적으로 윽박지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조금 불편은 했다. ‘정말 그게 예의야? 나만 모르는 거야?’하는 물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날 나는 사내 먹이사슬의 가장 밑단, 초식동물끼리만 모인 티타임에서 그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그리고 잭팟! 다들 하나 둘 씩 그에게 받은 지적을 고백했다.
“누나, 저는 오늘 가디건이 손등을 덮어 단정치 못하다는 지적을 들었어요.” 그 아이의 소매가 얌전히 한 단 접혀 있었다. “나도. 회사에서 입어도 되는 옷과 안 되는 옷의 구분은 상의 기준 단추로 여미냐 아니냐라던데?” 남자 동료가 입은 니트에 눈길이 갔다. “난 화장 안 하고 왔다고 한 소리 들은 적 있어.” 민낯이 대부분인 나는 지레 뜨끔했다.
우리 회사는 보수적인 곳이긴 하지만 복장 규범이 엄격한 곳은 아니다. 첫 출근 전, 바로 위 막내 상사와 간단히 면담 비슷한 걸 했을 때 그는 내게 면접 때처럼 ‘칼정장’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단정하게만 입으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도 누군가는 폴라티를 입고 일하고, 청바지를 입은 이도 더러 있다. 아, 물론 정규직분들 중에서도. 그렇다고 가디건을 입은 인턴이나 니트를 입은 동료가 출근길에도 덜렁 그렇게만 입고 왔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무실에서 자켓 대신 걸칠 만한 옷이 필요했을 뿐이다.
한국사를 공부하며 생각하건데 이 나라에는 이미 무구한 참견의 역사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빅재미’로 꼽는 사건은 조선 현종 때의 예송 논쟁. 오늘 우리 회사에 ‘실내화 논쟁’이 있다면, 조선 현종 때에는 ‘상복 논쟁’이 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효종과 효종 비가 죽자 조선의 조정은 효종의 어머니 조대비가 상복을 얼마간 입어야 하는 지를 두고 두 파로 나뉜다. 1차 예송 때는 서인과 남인이 각각 1년과 3년이라 주장하며 싸웠고, 2차 예송 당시에는 남인과 서인이 다시 1년과 9개월을 두고 싸웠다. 물론 이 싸움의 실체가 겨우 옷을 얼마간 입느냐가 아닌, 치열한 권력 다툼에 있음을 역사를 공부한 이면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자꾸만 헛웃음이 나는 까닭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기껏 잡은 트집이 겨우 ‘상복’이라는 점, 심지어 그 상복을 입는 당사자는 그 싸움에 끼지도 못 했다는 점이다. 상복을 입는 이는 효종의 어머니 조대비인데 정작 조정의 신하들이 ‘박 터지게’ 싸우는 꼴이라니. 실로 엄청난 참견쟁이들이다.
그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로도 과부가 재가를 드네 마네, 남자 머리가 기네 마네, 스커트 길이는 또 짧네 마네, 참견은 계속되었다. 요즘에는 법도이니 예법 같은 말은 듣기 어려운 단어가 되었지만 그 대신 ‘예의’와 ‘관행’ 같은 말들로 위장하여 참견의 명맥을 잇는다. 일일이 다 말하기도 입 아프다.
그의 말이 불편했던 이유는 또 있다. 그의 화살이 향하는 방향이었다. 그는 상대가 자신보다 현저히 약자일 때만 활을 겨눴다. 내 뒷자리 팀장님께 종종 ‘놀러’ 오는 그는 아주 친근하게 이런 저런 잡담을 하고 간식도 얻어서 돌아간다. 여기서 아이러니. 그 팀장님은 실내화 슬리퍼에 아웃도어 자켓을 입고도 1층에서 12층을 종횡무진 누리시는 분이다. 그가 윗사람에게는 잘 한다던 퇴사한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에게 지적을 듣고 난 후, 화장실을 갈 때면 사람들의 발을 유심히 보게 된다. 우리 회사의 터줏대감부터 젊은 막내 직원들까지 다들 실내화, 잘만 신고 다닌다.
어찌 됐든 그분께 '말씀'을 들은 이후 화장실에 갈 때는 구두를 신는다. 물을 뜨러 갈 때도, 파쇄를 하러 갈 때도 책상 밑에서 실내화를 벗고 구두로 갈아 신는다. 그러다 보니, 실내화를 신고 있는 시간은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뿐이다. 덕분에 회사 내에서의 용모와 행실에 대해 조금은 더 유의를 하게 되었다. 회사 내에는 나를 평가할 수많은 윗분들이 계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장기적으로 득이면 득, 실은 아니라며 이해하려 애도 써본다. 밉보여서 좋을 것도 없으니까. 다만, 정수기 앞에서 컵에 물을 받던 그분의 소매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후리스 소매 끝이 그분의 손등 절반을 덮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