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 Dec 23. 2018

'대체 가능한 존재'의 슬픔

어느 비정규직의 일기

자꾸만 허기가 지는 하루였다. 퇴근길, 편의점에 들렀다. 손 닿는 데로 인스턴트 음식들을 잔뜩 주워 담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외출복을 정리할 새도 없이 급한 손길로 끼니를 때웠다. 싸구려 편의점 음식과 폭식 후의 불편한 포만감으로는 채워질 리 없는 마음의 허기를 느꼈다. 하지만 마음을 채울 별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 무작정 몸의 허기부터 채웠다. 혀끝에 느껴지는 자극적인 맛, 그 즉각적인 쾌락. 나를 위한 가장 쉽고, 값싼 위로. 더부룩한 속을 삼키며 무거운 몸을 침대 위에 눕힌다. 눈 뜨면 또 금세 아침이겠지. 잠을 청할 새 없이 잠에 든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난을 온몸으로 느끼며 겨우 계약직 일자리 하나를 구했다. 정확히는 용역 도급 계약직.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인사 과목을 공부할 때만 해도 졸업 후 내가 ‘용역 도급 계약의 계약 상대자’가 될 것으로는 생각지 못 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표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사내 취업 규칙의 적용을 받는 ‘정규직 근로자’의 모습이었다. 일은 하지만 직원은 아닌, 그 애매한 지점에 내가 놓일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소득세 3.3%를 제하면 그만인, 단출한 급여명세서


용역도급계약을 맺으면 근로하더라도 4대 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계약상으로 회사에 재직 중인 근로자가 아니라 소정의 용역 도급 업무를 수행하는 프리랜서 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유롭고 근사한 프리랜서인 것도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또 정해진 시간에 퇴근한다. 급여는 계약 기간 동안 총 세 번 지급된다. 선금, 중도금, 그리고 계약 종료 시점에 잔금. 소득세 3.3%만 떼면 그만인, 단출한 급여 명세서. 그 한 장만이 내가 회사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의 전부다. 건강보험이니 산재보험이니 하는 사회적 안전망도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처지가 조금은 나은 편이다. 회사에는 최저 시급을 일당으로 받고 일용직 도급 계약을 체결한 수많은 인턴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보다 약간의 보수를 더 받았고, 약간의 자율도 허락되었다. 대부분 인턴들은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근하여 당일 교육의 개강을 준비했고, 퇴근 때는 딱 그만큼 늦게 퇴근하며 종강을 도왔다. 인턴들에게 9시는 출근 시각을 30분 이상 넘긴, '지각 시간'이다. 인턴이 인턴에게로 3개월 혹은 6개월에 한 번씩 인수인계를 하고 떠난다.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인턴에게서 인턴에게로 전수되어온 업무이기에 정규직 직원들은 이제 그 방법이 가물가물하다. 인턴이 월차라도 내는 날이면 그거 어떻게 했더랬지, 기억을 더듬는 정규직의 모습을 본다,

 
 “우리가 동시에 다 무단결근이라도 하면 여기 업무 마비될걸.”


종종 비정규직이 모인 자리에서 복수를 다짐한다. 결코 행동에 옮기지 못할 복수를 계획한다. 노동청에 신고하자는 이가 있고, 신고 같은 건 피곤하다며 무단결근을 하자는 이도 있다. 그 마저도 용기가 없는 이는 무단결근도 무섭다며 몰래몰래 태업하자고 한다. 악질이라도 된 듯 사뭇 단호하고 비열한 표정으로. 정작 당장에라도 상사의 메시지 한 통이면 후다닥, 사무실로 뛰어갈 거면서. 같은 대화를 이틀이 멀다 하고 반복한다. 복수에 관한 이 대화는 해도 해도 재밌고 늘 새롭게 짜릿하다.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만.



대체 가능한 존재


배경이 현실로 바뀌면 짜릿하기는커녕 무척 서럽다. 전 부서의 비정규직 인력이 동시에 무단결근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용기 있는 누군가 단체 행동을 주도한다 해도 하루가 불안한 이들은 쉽게 마음을 굳히기가 어렵다. 학점 인정으로 인턴을 하는 친구들은 한 학기가 통째로 메여 있어 동참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서글픈 일은 우리가 잠시 꿈틀, 한다 하더라도 회사가 우리의 대체재를 찾는 것이 무척이나 손쉬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턴 모집 공고를 올리고, 면접을 보고, 새로운 비정규직 인력을 들이는 일이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아 금세 끝날 것이다. 우리는 전 인턴 혹은 전 계약직이라 잠시 불리다 그렇게 잊힐 것이다.


지난주에만 우리 부서 인턴 넷이 떠났다. 이번 달에만 내가 아는 비정규직 12명이 9층 사무실을 떠났다. 가까이 지내지 않던 다른 부서 비정규직 인력까지 포함하면 한 달 새 얼추 20명쯤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스스로를 '생계형 인턴'이라 칭하던 B가 눈에 밟힌다. 운이 좋으면 2월까지 계약이 연장될지도 모른다며 안도하던 B였다. 연장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상사의 말에 B의 얼굴에는 설명할 수 없는 서운함과 막막함이 번졌다. 누구도 악의를 가진 이 없을지라도 '대체 가능한 존재'의 현실은 B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자꾸만 생채기를 남긴다.


일찍이 정규직으로 취업한 친구를 떠올리면 괜스레 마음 한 편이 쿵, 내려앉는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서의 불안함과 소속감을 느낄 곳 없는 '홀로'의 헛헛함이 나를 삼킨다. 나는 졸업 후의 공백기를 지우려고, 정규직 입사 지원서의 경력 한 줄 더 채우려고 이곳에 들어왔다. 그 마저도 이전의 경험들을 탈탈 털어 경쟁한 덕에 가능했다. 지금도 나와 똑 닮은 이들이 나와 똑같은 이유로 각자의 어느 곳을 찾아 헤매고 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슬프다. '대체 가능한 존재'의 슬픔, 그 무거운 감정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날들이 종종 나를 찾아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때 아닌 실내화 논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