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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Dec 29. 2018

깃털만큼 가벼운, 타인의 관심

관심의 무게

면접 일정이 잡혔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입사 원서를 내고 필기시험을 치르고 논술 답안지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아니었는데, 막상 면접에 오라는 연락을 받으니 내심 기대가 되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본부의 자회사. 규모도 작고, 직원들의 복지도 물론 본부보다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일자리가 나에겐 너무 간절해서,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해서 그곳에 지원했다.  면접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물음표 살인마와 발가벗은 ‘나’     


“그 면접 가지 마라.”

부장님의 말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에이, 부장님. 저도 먹고는 살아야죠.

 아님, 부장님께서 우리 회사 책상 하나 마련해 주시겠어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너스레를 떨었다. 순간을 모면하나 싶었다. 하지만 부장님은 집요했고, 본격적인 면담이 이어졌다. 한 시간 후면 면접인데, 마음이 초조했다.   

   

부장님은 내 ‘스펙’이 그 회사에 아깝다고 했다. 그 회사가 ‘비전’이 없다고도 했다. 명문대 경영학과씩이나 나온 녀석이 대기업도 아니고, 공기업도 아니고, 공공기관도 아닌, 우리 자회사에 오겠다는 사실이 이해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는 뭘 했니? 고시 공부했습니다. 몇 년? 삼 년이요. 왜 그만뒀니? 공부가 지겨워서요. 공부가 지겹다니, 공부가 제일 쉬운 거란다. 그럼 7급도 했겠네? 안 했습니다. 왜? 공무원이 제 적성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럼 고시 공부는 왜 했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앞에 나는 발가벗겨졌다. ‘고시를 그만둔 이유는 자꾸만 떨어져서이고, 대기업에는 가지 않은 게 아니라 못 간 겁니다.’ 차마 그렇게 답할 수는 없었다. 그 숨 막히는 질문 놀이는 ‘아, 요새 취업이 그렇게나 어려운가'하는 부장님의 혼잣말로 끝이 났다.     



회식,

알고 싶지 않은 일을 알게 되는 자리

알리고 싶지 않은 일도 ‘까발려지는’ 자리     


애초에 면접 사실을 회사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도 없이 다녀올 수는 없어서, 가장 가까운 상사에게만 알리고 조용히 행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겨우 그것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회식 자리가 문제였다. 알고 싶지도, 알리고 싶지도 않은 온갖 이야기가 어지럽게 쏟아지는 자리. 술을 거절하는 나에게 사람들이 이유를 물었고, 나는 몸이 좋지 않아서라거나 내일 일이 있어서 정도의 말끝 흐린 대답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얘 내일 면접 본대. 우리 자회사.”     


내가 믿었던 ‘가까운’ 상사였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기도 한 그였기에 나는 자기소개서와 면접 팁 같은 정보를 종종 그에게 물었다.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칭하며 각자의 영역을 강조하던 그였기에 내가 하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구태여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내 믿음을 가볍게 깨트린 그의 말이 나는 무척 야속했다. 그에게서 면접 소식을 들은 팀장님은 옆 자리 다른 팀장에게 이를 전했다. 우리 팀 팀장님과 옆 팀 팀장님이 나눈 내 면접 소식은 그 옆의 부장님에게도 닿았다. 순식간에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상사가 내 면접 소식을 알게 되었고, 술에 취한 우리 팀장님은 회식이 파하는 순간까지도 내 이름을 외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파이팅!!! 근데, 가지 마. 아, 일단 붙기는 붙어야지.

 일단 합격은 하고, 가지는 말자. 부장도 가지 말래. 그치, 부장님?”      



깃털만큼 가벼운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는 부장님과 나를 서로 마주 앉게 했다. 처음에는 고맙게 생각하려 애를 썼다. 타인의 선의는 나 또한 선의로 받는 편이 좋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적어도 내가 ‘아깝다’는 평가를 받는 거니까. 내가 이 회사에서 제법 잘해 냈다는 뜻이겠지, 꿈보다 나은 해몽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작아졌다. 꼬치꼬치 나의 20대를 캐묻는 추궁에, 가고 싶은 회사와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집요한 질문에, 가고 싶은 곳 없고 하고 싶은 일을 모르고 이룬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20대의 ‘나’는 먼지만큼 작아진다.


질문을 한다. 이들에게 나의 취업이 정말 중요한 관심사인지. 물론 아니다. 정말 나를 걱정하고 위한다면 구태여 묻지 않고, 값싼 위로를 삼가고, 내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겠지. 나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의 관심은 깃털만큼 가볍다. 이들에게 나의 취업은 심심풀이 땅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평소에는 도통 손이 가질 않지만 호프집 공짜 안주로 나오면 그렇게 고소할 수 없는 땅콩. 내가 이들의 깃털만 한 관심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까닭은 이들이 심심풀이로 소비하는 바로 그 ‘땅콩’이 나에게는 온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 땅콩을 손 안에서,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릴 때마다, 나의 순간이 흔들리고, 하루가 무너지고, 눈물 젖은 밤들이 늘어만 간다. 나를 흔들지 마세요, 나를 작아지게 하지 마세요, 제발 그 관심 좀 거둬 주세요. 차마 내뱉지 못해, 마른침과 함께 삼켜낸 말들이 앙금이 되어 내 안에 쌓인다.   



내게 필요한 ‘진짜’ 관심     


결과적으로는 나는 최종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 뱃속이 찌르르, 따갑다. 허나 슬퍼할 여유도 없다. 잠시 멍하게 있다 훌훌 털었다. 만근 월차를 탈탈 털어 새해 첫날까지 5일의 휴가를 얻었지만, 마음 편히 보내긴 그른 것 같다. 가방을 싼다. 무거운 노트북과 메모지, 필기구 몇 자루와 립밤을 챙긴다. 내가 아직 대학생이었다면 고민 없이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을 텐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학교를 두고도 근처 카페로 간다.      


연락을 받은 연인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는 그 회사가 인재 보는 안목이 없다며 분개하지 않았고, 더 좋은 회사에 가면 된다는 값싼 위로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등을 한 번 토닥이고는 카운터로 가 음료를 주문했다. 자기 몫의 한 잔과 내 몫의 한 잔. 그가 건넨 뜨거운 커피 위에서 얼음 한 알이 스르르 녹는다. 가벼운 말 한마디가 내게 깊은 생채기를 낼까 끝끝내 말을 삼가고, 뜨거운 음료에 혀가 델까 봐 얼음 한 조각을 챙겨주는 것. 진짜 관심, 진짜 배려, 진짜 위로.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 한 모금 삼키고는 그에게 물었다.      


“두드리고 두드리면, 결국 열릴까?”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잠시 나를 바라본다. 이내 그의 눈가가 활처럼 휜다.

“그럼.”

단 두 글자, 그 한 마디가 든든해서 나는 또 시작할 힘을 얻는다. 내게 필요한 내 사람의 ‘진짜’ 관심. 그의 관심은 그 속에 담긴 애정의 무게만큼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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