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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Jan 02. 2019

상처는 상처를 낳고

갑질의 사슬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죠?"


짜증 섞인 그의 물음에 C는 얼어붙었다. 나이 지긋한 중년의 교육생은 자기 딸 뻘, 아니 조금 더 보면 손녀 뻘도 거뜬히 될 것 같은 인턴사원 앞에 당당했다. 

"죄송합니다. 교육 접수는 8시 45분부터라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도와드리겠습니다."

화가 난 그 앞에서 C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잠깐의 기다림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잔뜩 뿔이 난 그에게 한낱 인턴이 할 수 있는 대처가 달리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그럼, 저는요? 저는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죠?’라는 항변이 울컥 올라왔지만, 마른침 한 번에 꿀꺽 삼킨다. 인턴이니까. 아직 배워야 할 일이 산더미니까. 이런 일을 겪어내는 법도 배워야 하니까. 자신을 위로하는 건 오직 자신밖에 없었다.


"여기 많이 컸어. 언제부터 이 회사가 이렇게 고자세였어?"

당장이라도 본부장실에 전화를 넣겠다는 그의 성화에 C는 눈시울이 따가워졌다. 울면 안 돼, 절대 울면 안 돼.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요즘 것들은 이래서 안 된다고, 특히 여자 애들은 저렇게 툭하면 울기나 한다고, 후에 돌아올 말들이 무서워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았다. 교육이 시작되기 직전, C는 자신의 사비로 비타민 음료를 구입해 그에게 건넸다. 상처를 받는 것도, 사과를 하는 것도 온전히 C의 몫이었다. 


약자를 향한 사소한 분노


"아니, 이게 그렇게나 화날 일이야?"

C에게서 사건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의 분노가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그 잠깐을 기다리는 일이 그토록 부당한가. 나의 반응에 C는 나지막이 내 말이, 하고 중얼거리고는 이내 씩씩하게 말했다.

"근데 나는 괜찮아.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아."

짐짓 괜찮은 척을 하는 C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화를 참지 못하는 이들이 참 많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이유로도 분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무겁다. 대기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환자가 의사를 폭행했다는 둥, 층간 소음을 이유로 이웃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는 둥 하루가 멀다 한 사건 사고를 접할 때,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혀를 찬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세상이라고. 그러는 동시에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야 만다. 때때로 우리 자신 또한 타인을 향해 '사소하게 분노한다'는 사실을. 더욱이 그 '사소한 분노'가 대게는 나보다 약한 이를 향한다는 사실을.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물리적 힘을 가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무심결에 내는 짜증이, 주의 없이 높인 언성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고 ‘공격’이 된다. 


20대의 나이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인 C와 같은 누군가는 그러한 ‘공격’의 타깃이 되기가 무척이나 쉽다. 나 역시 그러한 공격이자 폭력에 직면할 때면 어쩔 수 없는 억울함이 가슴에 맺힌다. 내 나이가 더 많았어도, 직급이 더 높았어도,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었어도 그이는 같은 방식으로 나를 대했을까. 동시에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나보다 약한 이 앞에 사소하게 분노할 때 나 또한 그이와 같은 모습을 하곤 한다는 사실이다. 상처가 상처를 낳는 '갑질의 사슬' 속에서 나 또한 결백할 수 없다.



부족한 나의 고백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을’인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갑’이었던 날. 내가 받은 상처 탓에 애꿎은 이에게 불친절했던 날. 하필 그날따라 고객사의 교육 담당자는 무례했고, 늘 함께 교육을 운영하던 상사는 자리를 비웠다. 그는 한눈에 힘없는 내 위치를 파악한 듯했다. 담당자가 부재한 때를 틈타 아주 약간의 편의를 더 요구해야겠다고 계산이 선 듯했다. 그는 계약 사항에 없던 다과 제공을 요구했고, 강의장 곳곳을 흠잡으며 무리한 변덕을 부렸다. 상사에게 사정을 알려 봤지만 그 또한 맞춰 주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지하 1층에서 지상 9층을 홀로 종횡무진하며 50인분의 생수를 나르고, 다과를 준비하고, 우리 부서에는 없는 블루투스 마이크와 스피커를 옆 부서에서 빌려다가 세팅했다.(강의장에는 유선 마이크와 무선 마이크, 스피커 설비가 이미 갖추어져 있었는데도.) 11월의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가쁜 숨을 돌릴 틈 없이 개강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추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된 이런저런 일들로 그날 나는 무척 지쳐있었다. 늦은 퇴근길, 저녁을 때울 참으로 버스 정류장 앞 늘 가던 가게에서 참치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일을 갓 시작한 듯 보이는 앳된 얼굴의 아르바이트생이 서툴게 주문을 받았다. 주문을 받는 솜씨만큼이나 샌드위치를 싸는 솜씨 또한 서툴렀던 그는 끝내 작은 실수 하나를 했다. 참치 샌드위치에 참치가 아닌 다진 돼지고기를 올린 것이다. 내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사장이 먼저 나서 아르바이트생을 크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손님도 말씀을 하셨어야죠.”

사장이 급기야 내게 말했다. 그 한 마디에 일순간 기분이 몹시 상했다. 한쪽 눈썹이 구겨지고 표정 관리가 안 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그냥은 지나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날카로운 문장을 뱉었다. 사장이 내 표정을 살폈다. 

“손님도 말씀을 하셨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여쭸습니다.”

나는 집요하게 되물었다. 사장은 멋쩍은 듯 웃으며 상황을 회피하고 아르바이트생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쯤에서 그만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한번 불이 붙은 짜증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결국 그날 나는 그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빛으로, 잔뜩 힘을 줘 구겨진 표정으로 가게를 떠났다.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내게 거듭 사과를 한 이는 죄 없는 아르바이트생뿐이었다.



뒤늦은 후회조금 더 친절할 것을.


그날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내 딴에는 무례한 사장의 말에 화가 났다지만, 정작 내 화가 도착한 곳은 아르바이트생의 여린 가슴이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힘든 법인데, 차가운 나의 태도에, 힘주어 노려보는 내 눈빛에, 갖은 면박을 주는 사장의 성화에, 상처 받았을 그 마음이 걱정된다. 그때 내가 ‘사과해야 할 사람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사장님’이라고 정확히 짚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까? 아니, 애초에 사장이 조금 무례했을지라도 처음이라 서툰가 보다고 아르바이트생을 향해 웃어줄 것을 그랬다. 별일도 아닌데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고 여유 있게 기다려 줄 것을 그랬다. 고객이 화를 낼 때 심장이 쪼그라드는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작은 일에 불붙어버린 나의 사소한 분노가 부끄럽다. 손님 잘못이 아니라고 양손을 내저으며 거듭 사과하던 아르바이트생의 모습 위로 연신 고개를 조아렸을 C의 모습이 겹친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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