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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프란 Nov 08. 2021

2021년 7월 25일, 너희들을 만난 날

37주에 나는 생애 첫 수술을 했고, 쌍둥이 자매의 생일이 결정되었다

쌍둥이 임신의 만삭인 37주 0일 차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


단태아의 경우로 따지면 딱 40주 0일 차에 제왕절개를 하는 셈인데, 날짜가 정해져서 그런가 디데이를 세는 하루하루가 더디게 갔다. 정확히 32주 6일 차에 만삭 사진을 찍은 뒤로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몸무게는 이미 10킬로를 훌쩍 넘은 상태였고, 무거워진 배만큼이나 신체의 다른 기관들에도 세세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무거운 몸으로 무더운 여름을 나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잠들기 전에는 늘 몸에 열이 많이 났고 잠들기도 힘들었을뿐더러 땀이 너무 많이 나 베갯잇을 자주 갈아대기 일쑤였다.


다행히 출산 한 달 전에 한국에서 엄마와 시어머니가 오셔서 둥이들을 맞을 준비를 도와주셨다. 출산 전 한 달은 온전히 나와 아이들에만 신경 쓸 수 있었다. 더디게 가던 시간도 엄마가 나를 갖고 키우실 때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지나갔다. 예정일은 7월 25일 일요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주말엔 수술일을 잡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지만 주치의는 일요일로 내 시섹션 날짜를 정했다. 디데이 날짜가 다가오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가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을 기다리다 보니 곧 디데이가 한자리 수가 되었다.


수술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주치의 예약이 잡혔고 수술 날짜까지 이틀 간격으로 NST(태동검사)가 있었다. 아이들은 머리를 아래로 했다 한 명이 또 역아로 바뀌었다. 다행히 수술 전 마지막 검사에서는 둘 다 제자리로 돌아와 주었다. (제왕 절개라 역아였어도 큰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아이들의 위치가 매번 궁금하긴 했다.) 수술 전날 마지막으로 재본 몸무게는 딱 임신 전보다 16킬로가 찐 상태였다. 이미 아기들의 몸무게만 6킬로 가까이 된 상태였다.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병원에 가야 해서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알람을 5시 반으로 맞춰놓고 깼는데 6시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마 위급한 환자(산모)가 생겨 내 수술 일정이 미뤄지게 됐다는 통보였다. 오후 1시까지 다시 연락을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역시나 인생은 기다림이라고 뇌까렸다. 두 생명을 품고 258일을 기다렸는데 그 몇 시간이 정말 정말 길게 느껴졌다. 수술이 미뤄져서 일단 아침을 먹고 다시 잠을 청했다. 물론 잠이 올리 없었다. 오전 10시 즈음인가, 병원에 가라는 신호인가 살짝 이슬이 비쳤다. 그리고 몇 분 뒤 쌍둥이 임신 중에 한 번도 나지 않던 혈이 비치기 시작했다. 바로 가족들에게 알렸고 남편이 병원에 전화했더니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 7시에서 5시간이 지난 12시경 병원에 도착했다. 바로 딜리버리 병동으로 올라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내 무거운 배에 이것저것을 달아놓기 시작했다. 태동검사 때와는 달리 꽤 여러 검사를 하는가 보다 했다. 내 배는 정말 커질 대로 커진 상태였다. (쌍둥이 산모의 만삭일이었으니 당연했다.) 처음 1시간은 두려움 반 기대 반의 심정이었다. 처음 하는 수술이 두려웠고, 뱃속의 아이들을 만날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조차 힘들어짐을 느꼈다. 그 무거운 배를 돌려 옆으로도 누웠다 침대의 난간도 붙잡았다 시간이 가기만 기다렸다. 사실 언제 수술할지 모르는 상태로 기다리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렇게 세네시 간이 지났을까. 주기적으로 태동을 재는 간호사, 시섹션 전반에 대해 설명해 주는 간호사, 마취과 전문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다녀갔다. 장장 5시간의 기다림이었다.


12시에 병원에 도착한 후 저녁 5시가 다 되어서야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실은 과도할 정도로 밝고, 생각보다 넓었다. 대략 10명 안팎의 의사들이 있었다. 마치 미국 의학드라마 한시리즈의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척추마취를 할 자세를 잡게 되었다. 마취를 도와주는 간호사 선생님이 있었고, 옆에서 긴장한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설명을 해주는 의사도 있었다. 척추 마취가 완전히 됐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몸을 바늘 같은 것으로 찌르기도 했던거 같다. 점점 내 하반신은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척추 마취가 끝나자마자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왔다. 바짝 긴장했던 나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좀 마음이 놓였던 것도 같다.


마취가 완료되고도 배를 절개하는 감각은 느껴졌다. 수술 내내 내가 깨어 있다 보니  두려움도 컸었는데, 정말 분주하게 지나가 버린  같았다. 고위험 환자고, 미국에선 흔치 않은 쌍둥이 분만이었어서인가. 일요일임에도  많은 의사들로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멋쩍은 마음이었다.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란  같다.  배를 열자 바로  아이를 꺼내려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설이일까 소복이일까. 주치의가  명을 꺼내려하고 다른 몇몇 의사들이  아이를 미는  같았다. 아이가 나오는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또 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예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참을  없는 눈물이 흐르고  감정을 추스리기도 전에 다른 아이도 꺼내지려 하고 있었다. 금방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애응애 하는 정말 아기 울음소리였다. 2021 7 25 5 58, 5 59. 이렇게 1 간격으로 설이와 소복이가 태어났다.


내 생에 가장 짧았던 1시간이었다.


아기들의 응애응애 소리가 하염없이 들렸고, 내 배를 닫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 행위가 무섭고 걱정됐고 또 안도했다. 아이 둘이 빠져나가고 배가 쑥 꺼진 느낌이었다. 각각 2.76kg, 3.11kg로 태어난 아기들의 몸무게가 모니터로 보였다. 실감이 나지 않는 기분으로 울고 있는 아기들을 바라보았다. 건강하게 두 아이를 출산했다는 사실에 기쁨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수술실 의사들의 축하와 더불어 둘 다 건강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엄마라는 문턱에 다가간 기분이었다.


수술실에도  들어올  같던 남편이  아이의 탯줄을 의젓하게 자르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비로소   부모가 되었다는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작년 10  난임 병원 방문을 시작으로 올해 7  출산까지 9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식구가 되었다. 기쁨과 동시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제왕 절개 후 2박 3일 입원 중의 둥이들 (자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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