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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pr 04. 2021

부쳐지지 않을 편지

선선에게

※ 글쓰기 클럽에서 '부쳐지지 않을 편지'를 주제로 동무에게 쓴 글입니다. 



    많이 늦은 편지를 적어 보냅니다. 애초에 ‘부쳐지지 않을 편지’인데 그보다 더 늦은 때도 있네요. 우리는 언제나 전하지 못한 말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지만 오늘은 지금도 저와 대화중인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해 보려고 합니다. 선아가 저의 생생한 대나무 숲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선선이 대나무 숲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 이유 중 하나는 이 편지는 사랑에 관해 하지 못한 말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번 소리 내어 읽은 제 이야기처럼 전 항상 남의 사랑에 목말라했는데, 그러면서 남의 사랑은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21살 때 현장 실습을 위해 근무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난 그 애는 작고 마르고 또 조용했습니다. 선선도 그런 시절을 겪었다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그런 곳은 인근에 사는 또래 아르바이트생들의 우정과 사랑의 장이고, 그 무리에 끼지 못하면 조금 외롭잖아요. 저도 그랬고 그 애도 그랬습니다. 저는 꽤 멀리서 와서 후다닥 퇴근해버리는 실습생이었고, 그 애는 원체 소극적이고 남 일에 무심했어요. 외로운 사람들끼리 끌리는 자석이 있는지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근무 시간이 아닐 땐 카톡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빠르게 알아갔어요. 과제 때문에 필요한 책이 중앙 도서관에 한 권도 없어서 쩔쩔맬 때에는 그 애 학교에 가서 빌리는 신세를 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하게 조기 퇴근한 날엔 동네에서 게임하고 있는 그 애를 불러내어 얼큰하게 취하도록 술도 마시면서 21살의 가을은 지나갔습니다.


    그 애가 처음 마음을 고백한 날은 7년 전이지만 아직도 선명합니다. 여느 날처럼 손님이 없다고 무정하게 조기 퇴근 시켜버리는 매니저 덕에 시간이 붕 떠서, 빌려 읽은 책을 돌려줄 겸 연락을 했는데 기다렸단 듯이 나온 그 애와 장미공원에서 만나 술집이 즐비한 거리로 넘어가 술을 마시고, 그래도 여자 (사람) 친구라고 버스 타는 걸 기다려주던 중 그 애는 담아두고 있던 말을 꺼냈습니다. 아주 그 애 다운 문장이어서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아니.. 나만 너 좋아하는 건가 해서.’ 전혀 몰랐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저는 그 마음을 모른척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 이상의 호감은 없는데, 이렇게 마음을 수면 위로 올리면 친구로 못 지내게 될까 봐요. 더군다나 봄이 오면 입대해야 하면서 고백해버리면 네 고민을 나에게 전가하는 것밖에 안되는데, 네가 생각하는 좋아하는 마음은 그런 거냐고 제법 밉게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말은 그 애를 위해 존재하는 건지, 그리고도 그 애는 위성처럼 제 옆에 머물렀습니다. 나를 좋아하고 아낌없이 표현하는 그 애와 알지만 사귀지 않고 친구로 지내는 나. 그 이상한 우정은 제가 아르바이트에서 갑자기 다른 남자와 사귀게 되면서 정리되는 듯했습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중요하지만 어쩌다 스케줄이 겹쳐서 그 애를 봐야 할 때엔 너무 미안했어요. 정말로요. 아니 사실, 미안한 마음인지 면이 서지 않았던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종착역이 될 수 있게 나도 더 바 전하고 나아질게.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의 마지막을 읽는 너는 또   여전히 예쁘겠지. 9월부터 얼마 안 됐지만 어찌 보면 또 길 수도 있는 기간 동안 참 고마웠어. 2년 후 이맘때에도 계속 고마워하며 널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2015. 01



    2015년이 되어 그 애는 군인이 되었고 6월인 제 생일에 자정이 되자마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군인이 그 시간에 페이스북을 어떻게 쓰는 건지.. 의아했지만 고맙다는 짧은 답장으로 갈음했어요. 같은 해 9월에 휴가를 나와서 오랜만에 마주 앉았지만 헤어진 아픔이 가라앉지 않은 저는 그 애에게 전 남자친구 흉을 보다가 술집에 고개를 박고 엉엉 울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 애가 나중에 전해준 ‘전해주지 못한 편지’ 가 될 뻔했던 편지 뭉치에서 다시 찾을 수 있었어요. 항상 편지는 잘 지내,로 끝이 나는데, 그날 편지는 한 단어가 더 붙어있었습니다. ‘잘 지내, 꼭.’


    또 해가 바뀌고 저는 정신없는 인턴생활을 하고 있었고 생일 자정에 어김없이 축하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때엔 그 마음이 꽤 반가웠고 고마웠어요. 말년 병장이라 세상에서 가장 시간이 많은 그 애는 속도 없이 휴가 때마다 저를 조각조각 보러 왔습니다. 한 번도 그 애를 위해 하루를 다 내어준 적이 없는데, 친구 만나고 집 가는 길에 데리러 온다거나, 복귀하는 길에 제가 일하는 회사로 와서 커피 한 잔과 노트를 찢어 쓴 쪽지를 주고 간다거나… 이렇게 얼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말을 꼭 덧붙였고 사흘에 한 번 정도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사흘에 두 번 거절을 했고요. 그 애가 9월 말에 복귀하는 길에 다음 달에 여행 가는 저를 무척 걱정했고, 네가 여행 다녀오면 내가 또 휴가를 나올 거니까 그때 건강하게 보자고, 거듭 당부했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오래 같이 지내면서 그 애가 기대하는 모습이 저는 못내 부담스러웠고 사소한 다툼이 5년 동안 서로의 안부도 묻지 않고 지내게 했으니까요.


이번엔 진짜 오랜만이네. 선임되면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정말 바빴어. (중략)나 도 6월에 휴가 나갈 것 같긴 한데 너 보는 건 너무 내 욕심 같기도 하고, 그래도   보면 좋긴 할 거야. 여기 운전병 중에 TV 나오는 여자친구   있는 애 있는데, 가끔 면회 오는데 네가 더 예쁜 것 같다. 연예인   해도 될 듯/ 2016.05



    길고 긴 얘기가 비로소 현재 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올 초에 문득 한 번도 챙겨주지 못한 생일이 생각나서 보낸 DM을 계기로 다시 드문 드문 대화를 하고,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 해서 밥도 한 번 먹고 술도 한 번 마셨어요. 그 사이에 시간도 너무 많이 지나고 각자 연애도 해서 이제는 우리가 정말 친구로 마주 앉았다고 생각했는데, 집 가는 길에 제가 다른 친구를 만나고 나면 들러서 잠깐 보고 가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만나서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가는 그 애를 보며 다시 우리의 2016년이 돌아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 애는 5년 전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그간 저에게 썼던 부쳐지지 않을 편지를 전해주었고 그걸 통해 그 애가 신교대부터 병장이 되도록 저에게 편지를 썼던 것, 그 오빠랑 사귀게 되었으니 이제 연락하지 말아달라 했을 때에도 습관처럼 제가 사는 동네에 같이 타던 버스를 타고 와서 혼자 카페에서 편지를 쓰고 갔던 것, 저에게 연락을 하려고 제 생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 그렇지만 저는 이 편지를 그 애에게 보내는 대신 선선에게 보냅니다. 숱하게 남자를 만나고 짝사랑 비슷한 것을 할 때마다 저는 그 애가 생각났어요. 나에게 가장 바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든 것을 간절하게 좋아해 줬던 사람. 살면서 그 애보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 애는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힘들 때 기대고 싶은 사람이었고, 제 사랑은 약아서 항상 그 애보다 나은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애가 그토록 좋아하는 제가 고작 이런 생각을 하는 가벼운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나 봐요. 7년 전 가을 버스 정류장에서 마음을 고백했던 그 애에게 했던 비겁하다는 말은 저에게 했어야 하나 봅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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