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다른, 친절

뜨거운 성취 ㅣ 차가운 친절

by 윤희오 hio



“치익, 치익.”


무전기 너머로 날카로운 기계음과 다급한 목소리들이 오갔다.


“도로 통제 팀, 차량 통제 시작해 주세요. 안전하게. 30초 후에 시작합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스탠바이 완료. 3분 간 통제 됩니다.”


넓게 뻗은 아스팔트 위, 매끈하게 빠진 검은색 캐딜락 CTS가 석양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 뒤로 수십 명의 스태프가 각자의 포지션에서 숨을 죽인 채 내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베이스캠프 텐트 안에서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현장의 공기를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나는 무전기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마른침을 삼켰다.



“자, 해 떨어지기 전 마지막 컷입니다. 전체 스탠바이. … 액션!”


내 외침과 함께 정지해 있던 현장이 일순간 폭발하듯 움직였다. 카메라가 돌고, 배우의 감정이 터져 나오고, 스태프들의 거친 숨소리가 뒤섞였다. 이것이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가장 확실한 공기였다.


독립 PD로서 내 이름을 건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이 순간, 나는 이 현장의 숲을 거칠게 달렸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마주하는 이 치열한 현장의 매캐한 흙먼지조차 나에게는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훗날 영화를 만들겠다는 바람을 '브랜딩 필름'이라는 명목 아래 꾹꾹 눌러 담은 이 시간들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이 모든 야성은 거대한 수족관 속에 갇혀버렸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느껴지는 집의 공기는 까만 밤에도 무거운 회색 먹구름이 바닥까지 내려앉아 있었고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중력 같았다. 늦은 귀가가 잦아졌지만 남편은 묻지 않았다. 그는 정해진 루틴을 사수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등을 기댄 채 미동하지 않았다.


“왔어.”


오늘 현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마지막 컷이 얼마나 완벽했는지에 대한 물음표는 존재하지 않았다. 낯선 일에 대한 질문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닌 관심을 두지 않는 상태였다.


TV 불빛에 비친 남자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더 흘렀고 론칭을 위해 관계자 시사를 열던 날, 나는 뜨거운 열기 속에 서 있었다. 치열한 시간의 끝에 갖는 희열이 온몸으로 반응했다.


“PD님, 남편분도 오시죠?”


스태프의 들뜬 물음에 나는 활짝 웃으며 끄덕였다. 남편은 행사 중간 무렵 도착했고 그 뜨거운 열기 사이에서 온화했지만 온기가 없는 표정으로 멀찍이 서 있었다.


“좀 봤어? 어땠어?”


다가가 슬쩍 물었다.


“… 모르겠어. 나는 이런 건 잘 몰라서.”


그는 마치 타인의 행사에 온 조문객처럼 건조하게 뱉고는 외투를 챙겼다.


“거의 끝난 거 아냐?”

점잖게 틀리지 않는 말을 했지만 더 숨이 막혀왔다. 동료들과 여운을 나누는 시간은 그에게 불필요한 소음일 뿐이었다. 수십 명과 호흡하며 일궈낸 나의 성장은 그의 궤도에서 어떤 변수도 되지 못했다.



오래전 이국의 카페에서 느꼈던 그 서늘한 기시감이 다시 나를 덮쳤다. 눈부신 풍경조차 단숨에 기능적인 공간으로 전락시키던 그 말라 있는 음절들이, 이제는 생활의 소음이 되어 나의 가장 뜨거운 성취를 여지없이 식히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거실은 완벽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부탁했던 수면등조차 꺼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의식적으로 남자가 누워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누운 그의 어깨가 견고한 철문처럼 보였다.


“얘기 좀 해.”


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가 바쁘게 구르는 것이 보였다. 자는 척하며 다음 말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그 미세한 움직임이 오히려 나를 자극했다.


“축하한다, 고생했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워? 당신 일만 힘들고 제대로 된 일이야? 내 일은 일도 아니냐고!”


남자는 마른세수를 하며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비난을 받아냈다. 반응 없는 침묵이 나의 목소리를 더욱 날카롭게 끌어올릴 때쯤, 그가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나한테 좀 친절하면 안 돼?”


그의 목소리는 낮게 떨리고 있었다. 그 한마디가 허공을 가르고 내 귀에 닿는 순간, 나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


‘친절.’


그 단어는 내가 했던 모든 논리와 서운함을 단번에 무력화시켰다.


남편의 눈에 비친 나는 그저 자신의 평온한 궤도를 휘저어놓은 불친절한 가해자일 뿐이었다. 내가 갈구한 것은 뜨거운 동행이었으나, 그는 내가 내뱉는 ‘소리의 질감’ 에만 상처를 받고 있었다.


어떤 날보다 뜨거웠던 나의 일상이 그의 ‘친절’이라는 방어막 앞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나는 어둠 속에서 장례식장에서 우는 사람처럼. 소리를 삼키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글. 사진 ㅣ 윤희오 (hio)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친절 vs 사람 냄새나는 투박한 소통

다음 화, [제7장 : 호흡의 방향]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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