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그토록, 어버이날

처음 만난 5월 8일 ㅣ 뜨거운 첫 출산의 기록

by 윤희오 hio





적어도 나에게 5월 8일은, 지독하게 뜨거운 날이었다.






계절은 무심히 흘렀지만, 낮과 밤의 온도 차는 늘 일정한 폭을 유지했다.


집안의 공기처럼 변함없는 사계절을 보낸 어느 날, 나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 두 개를 사 들고 돌아왔다.


결과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설렘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내 마음은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동서남북으로 휙휙 돌며 멈출 줄을 몰랐다.


두 줄.


어쩌면 내 몸에 자리를 잡은 작은 생명이, 갈팡질팡하던 나침반의 바늘을 비로소 한 곳으로 고정해 준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 이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세상의 속도에서 조금씩 비켜나 내 안의 작은 태동에만 온 신경을 쏟기로 했다.

일을 잠시 멈춘 그 시기, 밖으로 나가면 임산부인 나에게 아낌없는 배려를 건넸다.


사람들은 남자를 두고 '점잖고 사람 좋아 보인다.'라고 입을 모았다. 산책하다 마주친 이웃들은 아빠 인상이 너무 좋다며 내미는 인사를 웃음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나는 그 말들을 수집하듯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나쁜 일 하나 없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나의 의심을 잠재우는 것은 그의 다정한 눈 맞춤이 아니라 타인들이 보증해 주는 그의 ‘성실함’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지’라는 무던한 동의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출산 예정일을 고작 일주일 앞둔 날. 5월 8일이었다.


남자는 어김없이 카네이션 바구니를 챙겨 아침 일찍 파란 지붕의 집으로 향했다. 매년 그래왔듯, 결혼 후에도 바뀌지 않은 그의 단단한 궤도였다. 나는 만삭의 몸으로 친정집에 머물고 있었다.


오전 11시쯤, 무언가 뜨뜻한 물이 아래로 와락 쏟아졌다.



“엄마… 뭔가 흐르는 것 같아.”



놀란 엄마는 서둘러 병원에 전화를 했고, 양수가 터졌으니 지체 말고 오라는 날카로운 답을 들었다.

출산 가방이 서울 집에 있었다. 아빠는 만삭의 딸을 차에 태우고 다시 서울을 향해 도로를 내달렸다.



“산모님, 양수가 터지면 감염 위험이 커요.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간호사의 경고는 나를 공포로 밀어 넣었다. 나는 침대 위에 꼼짝없이 누워, 천장의 하얀 조명만을 응시하며 떨리는 손으로 배를 감싸 쥐었다.



동생은 조급한 마음에 남자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기계적인 신호음만이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진통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기계음과 낯선 천장 사이에서 나는 동생에게 묻고, 또 물었다.



“형부한테 연락했어?”

“응. 했어.”

“지금 어디쯤이래?”



동생은 다시 전화를 걸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동생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 채 돌아왔다.



“아직이래. 어머니 뵙고 바로 출발한대…”



그 말이 귓속에서 웅웅 거리며 오래도록 머물렀다.

생명이 터져 나오는 이 절박한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의 순서에서 밀려나 있었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짧은 숨을 몰아쉬었다.



“… 애 나오기 전엔 오겠지.”


마치 산소가 희박한 심해로 급격히 가라앉으며, 모든 소음이 먹먹한 수압에 먹혀버리는 순간처럼 몸과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말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뱉어낸 무력한 혼잣말이었다. 진통은 일정한 박자로 몸의 감각을 하나씩 지워가며 몰아쳤다.



“언니, 이제 분만실로 들어간대.”



동생이 내 손을 꼭 쥐었을 때, 병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땀에 젖어 살갗에 달라붙은 셔츠와 상기된 얼굴이었다. 서두른 흔적은 역력했다.


그는 침대 옆에 서서 머리맡에 걸린 하얀 차트의 수치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고는 곁에 선 간호사에게 진행 과정을 차분히 물었다. 궁금한 것을 다 캐묻고 나서야 간호사를 놔주었다.


“왔어. 들어가자.”



그 한 문장이 그날 남자가 나에게 건넨 전부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저 정해진 절차를 잘 이행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 사람의 진중함뿐이었다.

나는 뱃속의 아이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아빠 보려고 참았구나….’



7시간 반의 진통 끝에, 아기는 영화 속 장면에서 들렸던 울음소리와 꼭 같은 울음으로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그 사이 남자는 복도를 끊임없이 이리저리 오갔다.

그가 내비친 초조함은 진짜였다. 하지만 그 순간 초조함의 방향은 어딘가 나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회복실로 옮겨지자 친정 가족들이 내 손을 잡고 토닥여주었다. 그 사이에 서 있던 남자는 휴대폰을 든 채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문틈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새어 들었다.



“엄마. 아들 맞아요… 건강해요. 네… 네….”



평소보다 한 톤 높고 부풀어 오른 그 독특한 발음. 그는 한참 동안 카네이션을 받아 들었던 어머니의 환희를 채워주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이와 지친 아내가 있는 방 안보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수화기 저편에서 시간을 한참 동안 보냈다.


방금 끊어낸 아이의 탯줄보다, 남자와 어머니 사이에 수십 년간 단단하게 엉켜 있던 그 오래된 탯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수화기를 든 그의 어깨가 부모에게로 미세하게 기울어 있었다.


그곳의 목소리에 박자를 맞추며 그는 비로소 가장 긴 숨을 내뱉었다.

상장을 들고 부모 앞에 선 아이 같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움직인다는 감각이 서로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나는 품 안의 아이를 더 깊게 끌어안으며, 이제 막 시작된 나의 '보호'에 대해 생각했다.


글. 사진 ㅣ 윤희오 (hio)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완벽한 타인이었던 적이 있나요?

다음 화, [제8장 : 집의 주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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