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집 ㅣ 온기의 터전
사람들은 내 이름 석 자를 지우고 그 자리에 ‘준이 엄마’라는 명찰을 달아주었다. 그 호칭은 나를 무엇이든 견뎌내는 강철 같은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아이가 준 마법이었다.
준이가 세 살이 되던 해, 나는 ‘방 세 개’라는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 꿈을 매일 조금씩 부풀렸다.
부동산 실장님이 내미는 달콤한 믹스커피의 온기에 기대어 타인의 사생활을 들락거렸다. 텅 빈 거실의 모서리를 보며 상상으로 가구를 배치해 보고, 해 드는 창가에 아이의 웃음을 미리 심어두는 일. 그것은 내게 ‘미래를 위한 로케이션 헌팅’이었다.하지만 그 상상을 집으로 가져와 남편 앞에 펼쳐놓는 순간, 모든 빛깔은 차가운 숫자로 탈색되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대출 이자는 어떻게 감당할 건데?”
그의 질문은 늘 정답이었고, 그래서 늘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말의 순서가 아쉬웠다. 집의 온기나 아이의 자라날 자리를 묻기 전, 그는 항상 ‘숫자’라는 가림막 뒤에 서 있었다. 그는 집을 함께 일궈갈 터전이 아니라, 최종 승인권을 행사해야 할 ‘결정권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을 해 내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천하무적 준이 엄마였기에, 기어이 다시 지도를 펼쳤다.
남편은 급매물 소식에 그제야 함께 집을 보러 어렵게 시간을 내어줬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창밖의 햇살과 아이의 동선을 상상할 때, 그는 집의 결함을 찾아내려는 검사관처럼 움직였다.
수압을 확인하고 벽을 두드리는 그의 집요한 손길은 세금과 대출 한도라는 현실의 벽을 견고하게 쌓아 올리고 있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차분한, 완벽한 가장의 표본이었다. 이때에도 우선순위에 있던 말은 냉정한 평가와 기준이었다.
“… 그중 괜찮은데…”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사람 같았지만 결정을 해야 하는 몫이 남겨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처럼 짧은 승인을 했고 우리는 방 세 개짜리 집으로 이사했다.
내가 수백 개의 선택지를 지워가며 추려낸 정답지 위에, 마지막 도장을 찍은 것은 결국 그였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부모님이 서울 집을 찾았다. 시어머니는 아들 명의로 된 새집을 남편보다 더 꼼꼼하게 훑었다. 시아버지는 아들과 마주 앉아 시세와 이율이라는 그들만의 언어로 열띤 대화를 나누었다.
그 치밀한 숫자들 속에 내가 흘린 땀과 준이를 업고 부동산 계단을 오르내리던 시간은 기록되지 않았다.
“잘했다. 애비가 참 애썼어.”
아들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해묵은 생채기를 건드렸지만, 나는 묵묵히 과일을 깎았다. 이어 어머니는 옹이 진 두 손을 모아 허공에 둥근 원을 그려 보였다.
“이제 요런 거 하나만 더 있으면 부러울 게 없겠네.”
아들 손주 하나를 더 바란다는, 그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바람이 나의 숨을 눌렀다. 이 집의 실질적인 주인은 여전히 그들의 아들이었고, 나는 그 질서를 완성하기 위해 배치된 것 같았다.
소외감이 피부를 스쳤으나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중력처럼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 순간, 작은 우주 하나가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머니의 확신에 찬 손짓이 향한 곳이, 실은 이미 채워진 나의 자궁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나조차 모르고 있었다.
불 꺼진 거실, 견고해진 공간 안에서 나는 어둠을 응시했다. 그는 잘못한 게 없었다. 성실하게 돈을 벌고, 부모님을 안심시킨 완벽한 가장이었다.
다만 우리에게 ‘함께 설레며 결정했다’는 감각은 거세된 채, 숫자의 결과물인 ‘집’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남편에게 말을 내뱉는 수고를 멈추기 시작했다. ‘우리 집’이라는 단어는 입안에서 길을 잃고 맴돌다 흩어졌다. 이 견고한 정적을 일상의 배경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차갑지 않지만 서늘하고 자연스러운 온기를 기다리지만 애써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공간 속에 자체 열을 만들어 내느라 에너지가 바닥이 나고 있었다.
글ㅣ 윤희오 (hio)
지금 당신이 머무는 그곳은 편안한가요?
다음 화, [제9장 : 지탱해 준 시간]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