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엄마가 웃어야 애들이 잘 큰다.

밥은 잘 먹었어? ㅣ 반짝임을 잃어버린 눈빛

by 윤희오 hio


나를 지탱한 것은 남편의 일관성이 아니라 아이들의 불규칙한 호흡이었다.

갓난아이의 무구한 웃음에 주파수를 맞추는 동안 나는 비로소 숨을 쉬었다.


준이에 이어 민이가 태어나고,

집 안의 적막한 공기를 아이들의 온기로 채워 넣는 일은 내 생애 가장 길고 치열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하지만 그 온기를 지키는 일은 몸에 먼저 흔적을 남겼다.


밤마다 너덜너덜해진 손목에

보호대를 채워야 겨우 잠들 수 있었고,

어깨는 돌덩이처럼 굳어갔다.


몸이 부서지는 것보다 무거운 것은 자책이었다.

아이가 예민하게 울 때마다, 임신 중 스스로를 괴롭히던 내 우울한 시간이 아이에게 대물림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독처럼 피어올랐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거실이라는

수족관 속에 갇혀 있던 어느 날,

나는 집 근처 한의원을 찾았다.

맥을 짚던 의사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고개를 들었다.

“애기 엄마 몸이 통장이라면… 지금 잔고가 딱 10원 남았다고 보면 돼요.”


멍하니 쳐다보는 나에게 의사가 보약 대신 뜬금없는 처방을 내렸다.


“노래방 가서 좋아하는 노래 실컷 부르세요. 지금은 그게 보약보다 나아요.”


그 순간, 왜인지 모를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오랜만에 ‘누구 엄마’가 아닌 내 이름의 ‘지수’라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를 만난 기분이었다.


가슴 안쪽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던 얼음이 눈물로 흘러내렸다.


사회적 명함도, 학연의 꼬리표도 생략된 채

오직 삶의 고단함으로 맺어진 생애 첫 친구.

그 무렵 놀이터 벤치에서 지현을 만났다.


밤 11시, 아이들을 재우고 지현과 사우나 찜질방에

나란히 누워 김이 올라오는 천장을 바라보던 밤들.

한마디 말도 없이 서로의 거친 호흡만 고르던 그 침묵은, 남편과 함께하는 거실의 정적보다 훨씬 따뜻했다.


남편은 여전히 나에게 말을 먼저 걸지 않았다. 아니 간섭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뢰라기보다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쪽에 가까웠지만 그 시절의 내게는 숨 돌릴 틈을 허락하는 유일한 배려이자 안락함이라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인사법은 늘 하나로 고정되었다.


“밥 잘 먹었어?”


그 질문은 안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했는가 확인하는 체크리스트처럼 들렸다.

나는 “나도 좀 쉬고 싶어”, “오늘 정말 버거웠어” 같은 말들을 지워나가는 법을 익혔다.


그렇게 나는 말을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지워버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준이와 민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10층 할머니는 늘 봐온 아이들이 반가운 듯

눈으로 다정하게 아는 척을 하며 환히 웃어 보였다.

그러다 이내, 내 얼굴에서 시선을 멈췄다.


“엄마가 많이 웃어야 애들도 잘 큰다.”


칭찬 같은 그 말이 가슴 어딘가를 뜨겁게 할퀴고 지나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엘리베이터 거울을 훑었다.


거울 속에는 웃음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오래전에 반짝임을 잃어버린 눈빛을 한 얼굴이었다.


나는 지금 진짜 웃고 있는 걸까.

아니면 웃는 표정을 '쓰려고' 애쓰는 걸까.


아주 얇은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 흔들리다 사라졌지만, 그 잔상은 길게 남았다.


그 할머니의 말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내 안의 무언가를 미세하게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글.사진ㅣ 윤희오 (hio)




오늘 거울 속 당신의 얼굴은 웃고 있나요?

다음 화, [제10장 : 좋아 보여요]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