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성찰 - 사랑
존재는 모든 각각의 존재를 타자로 바라보며 그렇게 존재하는 동시에 타자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구별한다. 즉 모든 존재는 그 자체 존재로 타자로서 작용하며, 따라서 각각의 존재에게 존재론적 의의가 된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타자를 통해서만 그 의의가 밝혀짐과 동시에 그 자체가 타자의 의의가 되는 관계로서의 존재다.
이러한 존재론적 철학 논의는 오랜 기간 연구되어 왔으며 이에 따라 더욱 다채로운 이론들이 탄생해 왔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이러한 각각의 개별 존재를 파악하고자 함과 동시에 그와 모순되는 개념인 관계를 발견하게 되는 변증법적 이행을 서술했으며, 이러한 존재 자체를 모든 존재자들의 가능 근거이자 제일 원인으로 바라보며 곧바로 신학의 차원까지 존재의 의의를 끌어올린 아퀴나스, 현대에 존재론에 대한 방대한 철학서를 저술한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등 존재론은 철학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적 논의를 사랑의 관계와 결부하여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당연한 성찰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랑 자체가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되며 이러한 관계는 각각의 존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밝힘으로 증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관계의 차원에서 존재론적 의의, 즉 타자를 통해 존재하며 자기 존재가 타자가 되어 타자에 대해 존재하는 이러한 형태의 존재는 그 자체 자기 존재의 의의를 형성함으로써 존재자로서의 무한한 긍정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관계의 측면에서 인간은 오직 자신에 대해서만 타자의 관계를 바라본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즉 자신에 대한 존재는 절대자로서의 타자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으로서의 타자다. 그러한 관계들 자체는 철학자의 눈을 통해 바라볼 때, 다시 말하면 모든 관계들의 총체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지만 각각의 개인의 역사, 개인의 인식으로 볼 때 그 관계는 오직 자기 긍정으로서의 타자 긍정일 뿐이다. 즉 자기 존재를 통해서만 타자를 바라보는 인식의 한계가 극명히 놓여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타자와의 관계를 볼 때 모든 관계는 그 자신이 형성한 세계로서의 관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증명되는 것은 존재자의 인식 속 타자는 결코 타자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오직 그의 세계에 존속되는 타자로서의 타자, 관계로서의 타자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로부터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는 재정립된다. 존재자는 대상과 관계 맺음 자체로 존재한다. 사랑은 결합이 아닌 관계다. 각각의 세계에서 자기 존재를 가능케 하고 긍정하게 하는 타자와의 관계는 그를 통해 자신을 바라본다.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 그러한 관계 속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그것을 자기 존재 자체로 재정립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한한 역사를 통해 자기 존재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형성해 나간다. 즉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더욱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해명하는 데 앞장선다. 따라서 사랑은 타자를 넘어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언제나 자기 자신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대상을 위한, 대상 자체로서의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 자신을 위한 관계였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존재론적 고찰에 따르면 인간은 대상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군가를 그 대상 자체로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필연적 과정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계 맺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가치를 완전히 정립한 뒤에야 우리는 대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뒤에도 존재는 대상을 다르게 바라볼 뿐 대상 자체를 파악하지는 못한다. 단지 대상과 자신의 관계를 여러 방면에서 검토하고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관계 맺음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고찰의 성과는 분명하다. 인간은 이러한 성찰을 통해 언제나 대상의 새로운 성질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론적 성찰의 필요성은 우리가 이것을 인식하고 극복하여 더 깊고 넓은 통찰과 인식의 관점에서 사랑을 다시 바라본다는 데에 있다. 대상을 대상 자체로 파악할 수 없다는 존재론적 탐구의 결론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라는 인식의 오만함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모순적인 해명이다. 우리는 일차원적 인식 속 사랑하는 대상을 사랑하겠다는 선언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러한 언어와 관념의 정립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의 오만함으로부터 우리는 먼저 자신이 갈망하던, 욕망하던, 사랑한다고 믿었던 대상에게 사과를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타자 자체가 아닌 관계 맺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인식의 오만함 속에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자신에게 있음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찰을 시도한 뒤에 타자와의 관계와 관계 맺음으로써 존재하는 자기 존재에 대한 확립의 고민, 그리고 그러한 것을 가능하도록 하는 대상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사유를 통해 사랑이라는 관념을 새롭게 정초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