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어떤 부분에서도 그 자체로 완전하지 못하다. 세계는 모든 부분들의 결합이며 그러한 집합의 순환이다.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세계의 상호 의존성은 보다 명확해진다. 지금 나라는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우주의 역사 전체이며 그 모든 것이다. 공기, 물, 태양, 대지와 같은 자연적인 것들을 넘어 우리 몸의 모든 세포들과 에너지, 뼈대를 구성하는 모든 자원과 의도성이 없는 생명의 자연적 활동성. 이를 포함하여 그 모든 것들은 서로 의존하며 존재한다. 생명을 형성하는 그 어떤 것도 우선적이거나 자체적으로(혹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생명의 이러한 상호 의존적, 보존적 관계의 중요성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박탈한다는 데 있다. 일상적인 인간의 사유 논리를 포함한 인과성으로 추론되는 모든 형식의 토대는 원인에 의해서만 결과가 존재한다. 즉 원인이 결과를 결코 앞설 수 없는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상호 의존성은 결과를 통해 원인이 생겼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자연적인 것들이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됨과 동시에 결과가 되는 논리적 모순을 주장한다.-
그리고 세계가, 특히 자연적 존재, 생명으로서의 자연이 쉽게 해석되지 않고 언제나 우연적이며, 동시에 필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의 몸이 아픈 것은 우리가 넘어졌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통증에 대한 감각 작용과 인식이 우선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현재 아픔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픔에 대한 인식이 있기 때문에 아픈 것인가, 넘어짐이라는 사건이 있기 때문에 아픈 것인가. 이러한 문제가 무한소급의 문제1)로 고찰되듯 생명으로서 겪게 되는 삶의 모든 사건들은 우위를 따질 수 없으며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서로에 의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생명의 잉태는 인과의 형식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생명의 태어남은 그 자체 결과이며 그러한 결과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성장하며)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완성된 결과로부터 새로운 결과이자 원인인 잉태와 존재가 다시 발생한다. 즉 결과로부터 결과가 도출되는 모순이 발견된다.)
이러한 철학적 고찰에 따라 삶은 논리와 인과의 형식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인 사랑을 논리의 형식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사랑하는 대상과 나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삶의 일부이며 그렇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구분할 수 없다. 이는 인과와 논리의 형식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형식 너머에 삶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의 발생 원인이 만남이라면 그것은 그가 나에게 왔기 때문이며 동시에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치관의 대립이 있다면 서로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일 것이며 그 뒤에 그러한 신념이 생긴 그의 삶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역사는 자신의 신념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대립이라는 결과를 발생기키는 동시에 그것을 표출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원인이 된다.2) 즉 세계의 모든 사건과 발생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의존적이며 따라서 논리적으로 엄밀성을 주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세계 속에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 우리의 삶이 언제나 의존적이라는 것이 밝혀짐과 동시에 모든 것이 그 자체 원인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 이러한 정신과 행위와 사건들 조차 필연적이며 동시에 공(空)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즉 우리의 모든 행위가 그 자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그 자체 독자적으로는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공한 것이라고 본다.3)
그렇다면 사랑 역시 우연적 발생일뿐이며 결국 나의 주체적인 작용이 아니라면 사랑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주체적인 사랑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랑을 포함하여 개인적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관념이 공하다는 깨달음 뒤에는 자유가 있다. 내가 집착했던 사랑과 대상, 가치와 신념이 무너지며 인간은 자유로운 상태에 놓인다. 역설적으로 나를 구성한다고 여겼던, 삶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모든 것들이 우리를 그러한 상태에서만 존재하도록 강요한다. 따라서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사랑에 대한,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나의 욕망, 관념, 그리고 그러한 모든 조건적인 것들로부터 이루진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는 무너지며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올바른 바라봄은 새로운 원인이자 결과로써 자유롭고 아름다운 사랑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공허한 삶을 사는 것은 허무주의적 삶으로 해석되나 세계에 대한 이해, 공(空)적 깨달음은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이기심, 집착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주석-
1) 철학적 논의에서는 대체로 무한소급의 문제는 잘못된 논리적 형식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이를 피하기 위해 가장 근원적인 제1원리를 재정립하거나 문제 자체를 검토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2) 이러한 논의를 끝없이 연장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의 결과이자 원인이 되며 또 다른 원인과 결과의 원인이 되는 거대한 세계의 상호 의존적/보존적 관계를 증명할 수 있다. 한편 동양 철학, 특히 불교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사유하고 경험론적 고찰을 통해 주체적인 존재가 없음을 주장했으며, 서양 철학 역사에서는 지속적으로 인과의 필연성을 주장했으며, 나아가 초월적 존재를 증명하는 논의로 무한소급의 논리적 오류를 주장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