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트에 갈 때마다 떠올리는 생각이 하나 있다. 정육 코너에 가면 으레 부위별로 나뉜 소 그림을 보기 마련이다. 그림을 볼 때마다 가끔 생각한다. 저게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람의 몸을 부위별로 나누어 그림을 그리고 맨 앞에 걸어 놓는 건 식인 거인들이 가는 동네 마트일 것이다.
“오늘은 어떤 부위 원하세요?”
“팔이랑 다리 합쳐서 3kg 주세요 ^^”
사람의 몸을 자르다니! 하지만 나만 이런 상상을 하는 건 아니다. 여기 나오는 샤이니의 뮤직 비디오는 그 상상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오늘 등장하는 괴물 영화에서도 그 상상력은 재현된다. 아주 공포스럽게.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는 건 기괴한 입과 뻗어 나오는 촉수와 수없이 많은 이빨이다. 괴물이 가진 기괴한 부위들은 욕망 기관으로 치환해 불러도 될 만큼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 그리고 그 충실한 임무 수행 때문에 우리는 겁에 질린다. 괴물은 마치 욕망 기관에 지배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죠스는 끊임없이 거대한 입을 벌려대고, <에이리언> 속 외계 생명체는 알을 낳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입이 그 존재를 지배하는 것만 같고 거대한 촉수만이 살아있는 존재 같다. 말하자면 괴물은 그 기관으로부터 말미암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움직이고 숨 쉬고 먹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역시도 괴물의 욕망 기관에 지배된다.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건 괴물이 가진 입이었다. 지나치게 많이 돌출된 입, 그리고 그 입에서 뻗어 나오는 기다란 생식기와 알 낳기. 괴물의 전체적인 형태가 눈에 들어온 건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쯤이었다. 사실 에이리언 시리즈의 가장 첫 작품에서는 괴물이 가진 전체적인 형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괴물의 입과 밀폐된 공간에서의 공포가 우리를 겁에 질리게 만들 뿐이다. 영화감독은 괴물의 몸보다 괴물이 가진 입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괴물의 입에 집중하고 그 입을 두려워한다. 몸에서 외따로 떨어져 미쳐 날뛰는 듯한 괴물의 욕망 기관은 우리가 그 한 곳을 두려워하고 집중적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서 재밌는 건 우리 눈에는 욕망 기관이 혼자 날뛰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유일한 생명력을 지닌 건 괴물이 아닌 그 욕망 기관이다. 괴물의 몸 없이 그 입만 남아있어도 여전히 사람들을 잡아먹으러 돌아다닐 것 같다. 마치 괴물은 레고처럼 합쳐지고 해체되기를 반복하는 존재와 같다. 여기에 분해되고 해체되는 이미지는 또 있다. 괴물의 욕망 기관으로 인해 절단되는 사람의 신체다. 하나로 합쳐져 있던 것이 절단되고 분리되는 이미지는 괴물 영화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셈이다. 괴물의 입과 촉수는 먹잇감을 찢으러 날아다니고, 사람의 몸은 이리저리 해체되고 절단된다. 이 글의 시작은 신체 절단 이미지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몸을 자르는 이 흉측한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재현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이유를 찾으려 인터넷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헤겔의 글을 발견했다.
인간은 이런 밤, 즉 모든 것을 단순한 상태로 포함하고 있는 이 텅 빈 무이다.
무수히 많은 표상들, 이미지들이 풍부하게 있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곧장 인간에게 속해 있지 않다 – 혹은 현전해 있지 않다. 이런 밤, 여기 실존하는 자연의 내부 – 순수 자기 – 는 환영적 표상들 속에서 주변이 온통 밤이며, 그때 이쪽에선 피 흘리는 머리가, 저쪽에선 또 다른 하얀 환영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는 또 그렇게 사라진다.
무시무시해지는 한밤이 깊어가도록, 인간의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밤을 목격한다.”
『예나의 실재 철학』 중 ‘세계의 밤’
물론 내가 제대로 이 글을 독해할 수는 없었다. 대신 ‘세계의 밤’을 상세히 다룬 슬라보예 지젝의 저서 『까다로운 주체』를 참고하였다. 여기에서는 중요한 개념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상상력이다. 그것도 아주 폭력적이고 기괴한 상상력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상상력은 부정성의 에너지로 볼 수 있다. 이 에너지는 뭐든지 분해하려 한다. 뭐든지 절단하려 하고 해체시키려 한다. “'상상한다'는 것은 몸체 없는 부분 대상을, 모양 없는 색깔을, 몸체 없는 모양을 상상하는 것이다”(지젝) 이와 대립되는 것이 긍정성의 에너지다. 긍정성의 에너지는 뭐든지 하나로 합치려 하고 통합시켜 설명하려고 한다. 부정성과 긍정성의 에너지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서 긍정성의 에너지가 더 낫다는 말은 아니다. 둘의 우열을 가리는 건 무의미하다. 상반되는 두 에너지 중 어느 하나가 없으면 안 된다. 이 두 에너지가 모두 존재해야 비로소 진정한 현실이 존재할 수 있다. 매 순간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을 두고 건강하다고 할 수 없지만, 반대로 너무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성향도 건강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제대로 된 현실을 위해서는 두 에너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분해하려 하고 절단하려는 상상력은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다. 언어를 통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도 않고 어느 하나로 결정될 수 없는 상태로 남아있다. 헤겔은 이 상상력을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표면으로 끌어들였는데, 바로 ‘세계의 밤’을 통해서다. 피 흘리는 머리와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하얀 환영. 이는 종합된 대상을 해체하는 상상력을 잘 표현한다. 괴물 역시도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이 상상력을 표면으로 끌어들인다. 괴물은 우리 심연에 불확실하고 애매하게, 그리고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던 것을 명시적으로 보게 만든다. 우리는 기저에 있는 상상력을 체험한다. 우리는 해체를 체험하고자 하고 분열을 체험하고자 한다. 과도하게 부각되는 욕망 기관은 몸에서 따로 떨어져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리고 이 욕망 기관들은 사람들의 신체를 파괴하고 절단하면서 우리 기저에 존재하는 폭력적이고 기괴한 상상력들을 실현시킨다. 우리는 괴물 영화를 보며 명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그 상상력에다 이름을 부여하고 이미지로서 재현하며 그 심연을 체험한다.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심연을 체험하는 것이다.
무한도전에서 봤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아주 오래전 에피소드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정신 감정을 하는 에피소드였는데, 거기서 유재석 씨의 정신 감정을 하는 차례가 돌아왔다. 정신과 전문의는 별다르게 흠잡을 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사회생활을 잘하고 적응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보여질 모습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다 보니 뒤에서 음습한(실제 워딩이다)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내가 아직까지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건 그다음에 나온 노홍철 씨의 말이었다. 유재석 씨가 <쏘우> 같은 슬래셔 무비를 즐겨보면서 특히 좀비 영화를 그렇게 추천하더라는 것이다. (참고로 슬래셔 무비도 그리고 좀비 영화도 사람을 마구 자르는 영화이긴 하다.) 유재석 씨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다. 그 부정성의 에너지를 우리가 거부할 수 없고 우리는 그 에너지, 상상력을 체험하려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좀비 영화가 큰 인기를 끄는 현상을 보라. 우리는 그 어둡고 기괴한 심연들을 즐기는 중이다. 더욱 생생한 CG 기술로 괴물을 만나고 4DX로 놀이기구를 타듯 그 공포를 즐기며 IMAX로 팔과 다리가 날아다니는 걸 목격한다.
하지만 사람 몸이 잘려나가는 건 여전히 보기 어렵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괴수 및 슬래셔 장르의 존재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장르를 잘 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갑자기 재미없게 왜 이러냐고? 정말 보기 힘들어서 그렇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두운 심연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그 심연을 체험하는 것 역시도 좋지만 사람의 몸을 난도질하는 건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난도질 멈춰!) 나처럼 이 장르에 서먹서먹한 감정이 들었던 이에게는 조금이나마 그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그리고 이 장르를 잘 보는 이들에게는… 앞으로도 잘 보길 바란다.
<참고자료>
샤이니 <Married to the Music>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bcu7yZBeSKw&list=RDbcu7yZBeSKw&start_radio=1
무한도전 정신감정 에피소드:
https://www.youtube.com/watch?v=eUkGWXA_WJc&t=475s
슬라보예 지젝. (n.d.). 까다로운 주체 (pp. 19-115). n.p.: 도서출판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