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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란 Sep 17. 2021

[안티 히어로] 엑스맨 되지 마!

아아... 그는 갔읍니다..


   그렇다. 나의 입장은 확고하다. 엑스맨 되지 마! <데드풀 2>를 보고 난 후 내가 겪은 심경 변화를 소개한다. 데드풀은 한 소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희생한다. 그러다 그는 시간을 되돌린 한 인물(케이블)로 인해 부활한다. 그리고 데드풀은 “가족이 최고야!” 라며 화면 밖으로 걸어나간다. 이런 엔딩에 나 역시 감동 한 사발을 들이켰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을 멍하니 보다 어딘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좀 전에 들이마신 감동 한 사발이 문제였다. 데드풀이 엑스맨이 됐다!! 죽어도 되기 싫어하던 영웅이 되었다! 이 글은 안티 히어로였던 데드풀을 추모하는 글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안티 히어로란 무엇인가? 안티 히어로는 영웅과 달리 정의감을 갖고 있지 않다. 대의명분을 들이미는 이들(히어로)을 싫어한다. 대신 복수 같은 개인적 동기로 인해 빌런을 무찔러 어쩌다 보니 영웅의 큰 범주 안에 들어가게 된 이들이다. 힘겹게 영웅으로 성장했더니만 그걸 싫어하다니, 쿨병 걸렸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독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한 가지 전제하고 들어가겠다. 이 글은 성장이나 희생 같은 중요한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스토리와 캐릭터 측면에서 안티 히어로가 가진 이점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제 추모를 시작하자.


 안티 히어로는 예측 불가의 존재다. 


그러나 할리 퀸의 진짜 매력은 자신이 서사의 중심이 아닐 때에도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불쑥 엉뚱한 농담을 던지고, 예기치 못한 순간 번뜩이는 광기를 보여주는 식이다.
마고 로비가 제임스 건 감독에게 할리 퀸 캐릭터를 ‘혼돈의 기폭제’라 생각한다고 말한 것처럼 할리 퀸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와 영화를 보다 즐겁고 장난스러운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곧 수많은 관객이 할리 퀸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정원 영화평론가-


 

온통 할리 퀸 사진으로 도배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할리 퀸에 대한 설명이지만, 나는 이 설명을 안티 히어로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데드풀의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통상적인 히어로 영화에서는 영웅의 진지함과 숭고한 면모를 기대할 만한 장면이 등장한다. 안티 히어로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연출될 때마다 그들은 전혀 다른 곳으로 튀어나간다. 끊임없이 지저분한 농담을 던지거나, 장난을 치고, 진지한 축에 속한 안티 히어로는 계획적으로 복수를 해 나가며 영웅의 숭고함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진지함을 연출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안티 히어로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들은 정의감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감이라는 틀에서 벗어났기에 그들은 무수한 가능성을 지닌다. 우선 스토리 측면에서 그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가 있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 퀸은 군부 세력에 잡혀간다. 할리 퀸을 아내로 맞이하려던 군부 세력 대통령에 의해서다. 거기서 대통령인 루나와 할리 퀸은 첫눈에 반하고, 격렬한 성관계를 가진다. 그럼 둘이서 사랑에 빠지는 건가? 싶다가 할리 퀸은 루나를 죽인다. 죽기 바로 직전 루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권력자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면, 나를 욕하는 사람은 모두 죽여버리겠어. 그게 아이든 여자든 말이야.” 이 말을 듣자 할리 퀸은 바로 총을 쏴 루나를 죽인다. 할리 퀸은 조커라는 아주 이상한 남자에게 데여봤기 때문에, 남자친구 될 사람에게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만 한다면 곧바로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할리 퀸은 영웅이다. 그러나 살인 동기는 다른 히어로가 가지고 있는 대의명분이 아니다. 또다시 이상한 남자에게 데이지 않겠다는 개인적 다짐이다. 게다가 루나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바로 죽여버린다는 선택 역시 히어로라면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히어로였다면 루나를 먼저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스토리 측면에서 안티 히어로가 가진 장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함께 결혼 이야기를 하던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별안간 총으로 쏠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단순히 할리 퀸이 미쳤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에겐 히어로가 가진 사고의 틀이 없다. 영웅처럼 생각하고 말하지 않는다. 안티 히어로는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히어로 영화의 공식을 무너뜨린다. 빌런을 무찌른다는 큰 줄기는 같지만, 안티 히어로는 색다르면서도 동시에 예상치 못한 포인트로 우리를 끌고 간다. 스토리를 이리 저리 예상치 못하게 튀게 하는 힘, 그게 안티 히어로가 가진 가능성이다.


브라보!


   니체라면 안티 히어로 영화가 끝나자마자 일어나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니체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드디어 나의 생각을 이해하는 영화가 나타났다!” MSG를 좀 치긴 했지만 어쨌든 그 이유를 알아보자. 이 글을 쓰기 전 나름의 (풋내기스러운) 연구를 해보았다. 표본은 현저히 적다. 그렇기에 일반화하기에는 상당한 위험이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연구 대상으로 삼은 영화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데드풀> 1과 2, <킹덤: 아신전>, <말레피센트> 1과 2, <크루엘라>이다. 연구 내용은 총 두 가지다. 이들 안티 히어로가 빌런을 무찌르게 된 동기와 스토리 구조다. 우선 그들의 동기를 말해보자. 크게 봤을 때 그들이 빌런을 무찌르게 된 이유는 사적 이익을 위해서다. 더 좁게 들어가자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제외한 나머지 영화는 모두 복수심이라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니체인 척해보겠다. 복수심, 즉 사적인 감정(미움)에 의하여 남을 파괴하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악으로 분류되어 왔다. 우리가 봐왔던 영웅들은 이렇게 사적인 동기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니체라면 안티 히어로를 조금 다르게 봤을 것이다. 니체의 저서 『도덕의 계보』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선악의 체계를 한 번 더 의심하게 만든다. 그는 ‘선’을 감정의 문제라고 말한다. 자신이 가진 현실적인 힘(경제력, 학문적 지위 등)을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선이라고 말했다. ‘힘을 향한 의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할 줄 아는 이가 강자이며 그것이 올바른 삶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선과 악의 체계, 예를 들면 용서와 선량 같은 가치를 선으로 규정하는 지금의 체계는 무엇인가? 니체는 약자(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없는 이)의 기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선악을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는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을 구분했다. 노예 도덕은 약자가 강자에게 가지는 원한 감정인 르상티망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 강자의 있음을 시기하며 강자를 ‘악’으로, 약자인 자신을 ‘선’으로 규정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약자가 자신에게 해를 가한 사람에게 복수할 힘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나온 말이다. 니체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선과 악을 한 번 더 의심하였다. 니체라면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복수를 성취하는 안티 히어로가 선을 추구하고 있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복수 그리고 개인적 이익을 위해 잔인한 폭력을 사용하는 안티 히어로의 모습을 악이라고 규정할지도 모른다. 안티 히어로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선인 행동을, 그리고 누군가의 눈에는 악으로 보이는 행동을 한다. 그들은 선악에 대한 또다른 가능성을 펼쳐 놓는다. 즉 우리가 캐릭터를 완전한 선 혹은 완전한 악으로 정의 내릴 수 없게 한다. 사실 이렇게 꽉 맞추어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 자체로도 안티 히어로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는 이제껏 완전한 선이나 완전한 악으로 틀 맞추어진 캐릭터를 수도 없이 봐왔고 그들의 서사를 충분히 봐왔다. ‘선’으로도 혹은 ‘악’으로도 튈 수 있는 캐릭터의 존재는 우리에게 의미가 크다. 우리가 경험하는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때문이다.



   안티 히어로는 히어로가 된다. 앞서 살펴본 가능성의 측면에서 이 결말은 안티 히어로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 된다. 내가 살펴본 안티 히어로의 영화를 하나씩 짚어보자. 데드풀은 히어로가 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약간 애매하지만 어찌되었든 히어로에 가까워진다. 크루엘라는 속편이 나올 예정인데, 왠지 그 결말이 예상된다.(디즈니가 <말레피센트 2>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역시 히어로) 아신만이 끝까지 안티 히어로로 남는다. 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안티 히어로는 끝까지 안티 히어로로서 남을 수 없는가? 데드풀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 데드풀은 끝까지 안티 히어로로 남을 수 없었는가? 물론 상업적인 이유를 빼놓을 수 없다. 캐릭터가 흥한다면, 내가 제작사라도 속편을 만들겠다. 돈이 되니까! 대신 캐릭터에 조금의 변주를 추가할 거다. 대중성을 더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 방법은 바로 ‘영웅 만들기’다. 영웅으로의 성장 스토리는 대다수 관객에게 통한다. 데드풀 1보다는 2가 더 큰 대중성을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히어로로 만들면 마블이 가진 유니버스에 통합하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캐릭터다. 우리는 반드시 히어로만을 남겨야 하는가? 나에겐 일반적인 영웅의 서사보다 안티 히어로가 히어로로 변화하는 스토리가 더 아쉽다. 데드풀에게 말하고 싶다. “엑스맨 되지 마!”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빌런 같다.) 


   빌런을 자처하면서까지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아주 거칠게 말하는 첫번째 이유는 캐릭터의 존재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데드풀은 성장했다. 이제 그는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다. 아주 많이 본 동기이며 아주 많이 본 서사다. 그동안 거창한 대의명분은 많이 봐왔다. 데드풀까지 정의를 말하며 싸워야 하는 건 캐릭터에게 잔인한 일이다. 물론 데드풀이 캡틴 아메리카급의 진지함을 가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지구를 구하러 나서는 데드풀은 그것대로 매력이 없다. 우리가 데드풀에게 기대하는 건 그런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간 데드풀도 그리고 다른 안티 히어로도 ‘안티 히어로’라는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스토리 측면에서, 캐릭터 측면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안티 히어로에게 멋진 대의명분을 붙이는 순간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는 아주 좁아진다. 


   두 번째 이유는 안티 히어로만의 서사를 구축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껏 선보인 안티 히어로의 서사는 일회적이다. 안티 히어로의 서사는 ‘이 세상은 기만적이다’라는 큰 전제 아래서 전개된다. 안티 히어로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능력을 끌어올리거나 양껏 펼칠 수 있게 기회를 준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인물은 복수를 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된다. 과거나 현재의 특정 계기로 인해 주인공은 복수를 실행한다. 안티 히어로의 탄생과 또 개인적 동기로 인해 빌런을 물리친다는 안티 히어로의 정체성에 적합한 서사다. 하지만 이러한 서사는 일회적이다. 안티 히어로 캐릭터의 기원에만 한정되어 있다. 그 이후의 영화들은 안티 히어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 않는다. 그들은 히어로가 되거나 기원 이후의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안티 히어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그들에게 적합한 서사를 구축할 수는 없는가? 안티 히어로가 히어로로 변해가는 것이 싫어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맞다. 이대로 못 보낸다. 적어도 히어로들을 풍자하는 역할로 끝까지 남아있을 수 없는가? 개인적으로 데드풀 작가진을 붙잡고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 “데드풀 돌려내!!!!!!!!!!!” 사실 이 글은 데드풀 작가진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다. “데드풀 돌려내!!!!!!!!!!!!!”




   돌려내라고 절규하고 있지만 안티 히어로 데드풀이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는 이미 영웅의 세계에 눈을 떴다. (마블이 되돌려 놓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데드풀 영화가 더 나오기 전에 내가 일찌감치 추모를 하고 있다. 내가 능력이 됐다면 안티 히어로 서사를 새로 구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시피 그럴 능력이 없어 노트북 자판만 탕탕 두드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안티 히어로 영화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가 없어서 투덜거리는 것처럼 들릴 것 같다. 대신 이 글을 이렇게 바라봐 준다면 좋겠다. 안티 히어로가 가진 매력을 발굴하는 글, 그리고 데드풀을 이상한 방법으로 덕질하는 글. 









<참고 자료>


니체 : 신은 죽었다. part 1 [5분 뚝딱 철학]

https://www.youtube.com/watch?v=4bmQ0dztq7A


니체 "도덕의 계보", "도덕의 원천은 노예의 원한감정(르상티망)이다!" [정진우의 철학교실]

https://www.youtube.com/watch?v=3MD4fLxiYHA


할리 퀸 인용: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8408&utm_source=dable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 다크 히어로 설명: https://www.pixiv.net/artworks/85842966


강신주, 『강신주의 감정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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