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넷플릭스 음식 서바이벌 방송.
시즌 1를 매우 흥미롭게 봐서, 음식점도 몇 군데 찾아가기도 했다.
시즌 1에서 '저 음식 나도 먹어보고 싶다!', '저 사람 정말 멋있다' 정도 느꼈다면 시즌 2는 나에게 여러 고민과 질문을 던져 주었다.
1. 인내한 사람의 멋과 깊이
내가 10년 넘게 일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놓친 것들 또한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 불교철학이나 헤르만헤세 <싯다르타>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좀 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순간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머무는 기간이 급격히 짧아졌다. 순간의 감정과 상태에 더 집중해서, 그 당시에 바라거나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따분하거나 불편하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면 바로 떠났다.
그런데 흑백요리사 요리사들은 대부분 청소하는 말단부터 시작해서 모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주방 생활을 견딘 사람들이고, 현재도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사람들에게서 멋과 깊이가 느껴졌다. 동시에 '나는 저런 깊이는 갖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처럼 인고의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지만, 그 깊이가 멋있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2. 요리괴물과 트리플스타
내가 이중적이다고 느낀 순간.
시즌 1이 끝나고 트리플스타 셰프의 연애, 일상 태도가 부정적인 논란이 일면서 방송에서 종적을 감췄다. 당시 나는 "요리사가 음식만 잘하면 되지, 그런 건 안 중요하다고 생각해"라고 했다.
시즌 2에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고 표현이 센 요리 괴물 셰프가 나왔다. 트리플스타에 대한 내 입장으로 이 분을 보자면, '말이 세든 말든 요리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A셰프에게 "A셰프가 근무한 곳 사람들이 제가 더 요리 잘한다던데요"라는 말을 할 때 많이 아쉬웠다. 이 요리사의 자신감은 허세가 아니었다. 요리를 엄청 잘했다.
나는 트리플스타는 수용적이면서, 요리괴물에는 불편한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굴욕을 주는 언행의 차이인듯 하다.
(이분이 최근에 안성재셰프 유튜브에 참여한 방송, 넷플릭스 인터뷰한 영상을 봤다. 꽤 상호적이고 사람을 깍듯이 대하는 것 같다. 이런걸 보니 방송의 희생양같기도..)
3. 내가 마음이 쓰이는 요리사 - 프렌치파파, 윤주모, 4평외톨이, 무쇠팔
발달장애 아들을 위해 따뜻한 요리를 하고 싶다는 프렌치파파,
덜덜 떠는 손으로 정성스레 요리하는 윤주모,
작은 식당에서 혼자 모든 걸 감당하며 인내해온 4평 외톨이,
한쪽 팔 근육이 거의 잃어가는 상태임에도 매일 직접 면을 뽑는 무쇠팔.
난 이 사람들에게 마음이 갔다. 승패와 상관없이 흑백요리사2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다.
아무래도 역시 마음을 울리는 건 사람의 진심인 것 같다. 난 이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나는 F 인간입니다..)
4. 모두를 승자로 만든 우승자
(스포일까 봐 우승자로 말합니다)
우승자는 자신을 뽐내기보다,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요리하는 요리사 중 한 명이라고 했다.
여러 셰프들을 화면으로 비치면서 그 말이 들려오는데, 모두를 우승자로 만들어주었다.
겸손하다 못해 매우 멋있다. 심지어 마지막 말은 "도전하길 잘했다"였다.
도전을 멈칫하는 모든 사람을 향한 위로와 격려같이 느껴졌다.
5. 끝내며
아직도 이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가슴이 훈훈하다.
세상엔 멋있고 깊은 사람이 많다는 것,
빛나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는 것,
좋은 깨달음을 많이 느낀 방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