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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이 Sep 11. 2023

그녀의 청첩장 01

이 글은 픽션입니다. 가볍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대학 후배 에게서 연락이 왔다. 청첩장이 나왔다고 했다. 그녀의 파란만장(?) 연애사를 구구절절 들어왔던 나는 늘 그녀의 미래의 남편이 궁금했었다. 드디어 궁금증이 풀리는 날이 오긴 오는구나 싶었다. 청첩장을 받기 전에도 그녀의 남친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신랑신부 식장에 입장하기 전까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들 하니까. 하물며 청첩장을 받기 전까지야.     


약속장소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던 ‘’와 ‘’이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는 나의 대학 동기이고 ‘’은 나의 대학 동아리 후배인데, 어찌저찌하여 희와 나까지 포함하여 사총사처럼 자주 어울려 다녔었다. 선은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수는 딱히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연애보다 일이 더 재밌다는 주의. 삶의 반경이 조금씩 달라져 자주 보지 못하던 우리는 희의 청첩장을 받기 위해 오랜만에 모였다. 서로의 찌질한 연애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청첩장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의미심장하게 반짝거렸다.     


희는 대학 입학 때부터 유명했었다. 예쁜 애로. 내가 대학 2년생이 되었을 때, 동기들 사이에서 배우 이영애를 닮은 신입생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 바로 희였다.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만난 희는 소문대로 예뻤다. 남자선배들이 쉴 새 없이 희에게 추파를 던졌으나 희는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저러다 집도 못 찾아가겠다 싶어 숙취해소제를 먹이고 후배 몇 명과 택시를 태워 집에 들여보냈는데, 그날 이후 희는 언니, 언니 하며 나를 따랐다. 그리고 그녀의 연애상담사 노릇을 자의 반 타의 반 하게 되었다.


   

(C)Unplash

   


그녀의 첫 번째 연애


희는 예상외로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설마 했는데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예쁜 외모와는 다르게 연애에 서툴렀다. 조금만 잘해줘도 허허실실 푼수 같은 데가 있어 절로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날 희가 언니만 알고 있으라면서 나의 입단속을 철저히 시키더니만 비밀 이야기를 풀어냈다. 희의 선배, 그러니까 나의 동기 녀석인 건과 사귀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뭐? 건이랑? 놀라는 나에게 희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그건 건이 친구 혁이가 희를 짝사랑하고 있어 사실대로 밝힐 수가 없으니 당분간만 비밀연애를 하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건이라면 동기들 사이에서 카사노바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1학년 때는 과동기 3명한테 동시에 문어발 다리를 걸치다 들킨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는 큰 이슈가 없어 정신을 차렸나 보다 싶었지만. 다른 과도 아니고 같은 과 여자 3명을 동시에 만나는 간 큰 녀석이라니, 왜 하필 건이람.

     

건이가 매력 있는 친구이기는 했다. 남자다운 외모에 리더십도 있어 동아리 회장도 하고 여자들에겐 섬세할 정도로 다정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희도 건의 그런 면에 홀딱 반한 것 같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희의 안색은 초췌해졌다. 사정을 들으니 가관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사람들을 챙기는 건이가 희와 둘만 있으면 아기가 된다나? 가령 버스를 타고 가다 자리가 생기면 건이 먼저 앉고 희에게 무릎 위에 앉으라는 식. 소보루빵의 소보루만 먹고 모카빵의 모카 껍데기만 떼어먹고는 안 먹는 식. 떡볶이에 들어간 계란 하나도 본인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만날수록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스무 살 스물한 살 귀여운 투닥거림 정도로 보이지만 당시엔 뭐 그런 배려 없는 남친이 다있냐며 희의 하소연을 열심히 들어줬던 기억이 난다. 매번 헤어진다면서 남자친구의 도시락을 싸느라 밤을 새우고, 건이 구하던 희귀 음반을 사주기 위해 용돈을 탈탈 털어 쓰던 희는 어느 날 울며불며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그와는 정말 다 끝났다고 했다. 이번엔 단순 투정이 아닌 것 같아 진정을 시키고 내막을 들어보니 건이 동아리실에서 여자선배와 바람피우는 현장을 직. 접.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야이 수박 씨 발라 먹어도 성에 안찰 족발 같은 놈아. 희를 다독이며 시원하게 욕을 해주었지만 성에 안 찼다. 그날 희는 포장마차에서 만취해 울고불고 분노하다 먹은 음식을 복기하는 등 주사 종합 세트를 보여주더니 결국 쓰러져 정신을 잃었고 그런 희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나는 곤죽이 되었다. 희는 필름이 끊겼었다며 자신의 만행을 모르는 척했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절대 희와 단둘이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 후 건의 여자친구는 여러 번 바뀌었고, 희는 건을 마주칠 때마다 죽을 것처럼 괴로워했다. 결국 수가 지인을 동원해 희에게 소개팅을 해주었고 희는 곧 두 번째 연애를 시작하더니 건 같은 남자는 씹던 껌마냥 마음속에서 뱉어버린 듯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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