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핸드폰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다가
핸드폰을 고를 때 선호하는 색깔이 있으신가요?
화이트 아니면 블랙? 아니면 그때 그때 마음이 끌리는 대로? 특정 모델 기종의 어떤 색깔이 예쁘게 나와서? 남들이 잘 쓰지 않는 흔치 않은 색 위주로?
뭐 여러 가지 이유와 취향이 있겠지만, 저는 뭐니 뭐니 해도 화이트가 좋습니다. 폴더폰에서부터 스마트폰까지 제 핸드폰 컬러의 역사는 모두 화이트였거든요. 왜 화이트냐시면 꼭 짚어 한 가지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굳이 굳이 손이 가는 마음을 들여다보자면 깨끗해서 좋은 것 같아요. 순백의 깨끗함이 좋고 더러워져도 더러워진 부분이 정직하게 잘 보여 다시 잘 정돈을 할 수가 있달까요.
하얀색을 보면 빈 도화지처럼 혹은 컴퓨터 문서 프로그램의 새 문서 창처럼 무엇이든 제가 원하는 대로 채워 넣을 수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반대로 그 광활한 선택의 자유가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요.
저의 첫 스마트폰도 여지없이 하얀색이었습니다. 그 영롱한 빛깔에 1초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모델은 삼성의 갤럭시 노트4. 스마트폰에 펜이 탑재되어 있어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 있게 보이던지요. 구매 후에는 막상 펜 사용은 잘 안 하게 되기는 했지만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장장 5년을 저와 함께한 스마트폰에 그 시절의 제가 충실히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먹었던 음식, 방문했던 장소, 만났던 사람들 등등. 핸드폰을 보물처럼 꼭 손에 쥐고 다녀야만 하는 이유가 그 안에 있었어요.
어제 오랜만에 예전 저의 핸드폰을 꺼내 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지난 시절이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그 시간과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이 우르르 몰려오기도 하고 좀 묘했습니다. 왜 어린 시절 앨범을 볼 때 느끼는 그런 감정 있잖아요. 필름카메라 사진을 인화해서 찍찍이가 붙은 면에 가로 세로줄을 맞춰가며 사진을 반듯이 붙이고 투명 필름이 울지 않도록 손으로 밀어가며 위에 덧붙이던 그 아날로그 앨범이요. 요즘은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많이 찍어서 예전 아날로그 앨범을 갖지 않은 세대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지 모르겠어요.
셀카를 보면서는 내가 이때만 해도 좀 더 젊고 봐줄만했네 싶기도 하고, 아 맞다 그때 이런 작업을 했었고, 이런 델 방문했었지 싶어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시절에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저를 아련하게 만들었습니다.
해맑게 웃는 모습으로만 남겨진 저의 시간 속에 머물러준 그 사람들이요. 아니면 제가 그 사람들의 시간 속에 잠시 머물렀던 것일까요. 옛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괜히 감성적이 돼서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처럼 이렇게 외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오겡끼 데스까
(잘 지내나요)
저는 상상 속에서 세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올라 소리칩니다. 안부인사가 멀리멀리 메아리가 되어 퍼지길 바라면서요. 저를 떠나갔거나 제가 견디지 못해 떠나온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당신에게 저는 좋은 사람이었을까요.
그러다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난생처음 혼자 갔던 제주도여행에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와 헤어진 후의 감정을 적어둔 메모였어요.
인간에서의 인은 한자의 사람인人을 쓰고, 사람인은 사람 두 명이 서로를 기대고 있는 모습을 상형화 한 것이라고 하잖아요. 당시 저는 여행지에서 처음 알게 된 그 친구가 진심으로 저에게 등을 내주었다는 감동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인간의 도리를 다 하는 사람이라고 적어두었나 봐요.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나는 어땠을까, 누군가에게 편히 기댈 등을 내어준 적이 있었을까요.
아마 별로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리석고 지나친 자의식으로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고, 준 것만큼 돌려받지 못할 때는 옹졸한 감정을 가질 때도 있었으니까. 나 자신 보다 상대의 부족함에만 집중했던 순간들.
이렇게나 부족했던 저의 곁에 머물러준 고마운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
.
.
.
.
.
.
.
정말이지 당신이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의 텔레파시가 당신에게 닿기를.
(나도 다시 하얗게 돌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