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하늘이 당연히 파란 줄로만 알았다. 파란(푸른)과 하늘이란 단어는 마치 친한 친구마냥 붙어 다니곤 했으니까.. 손바닥 마주치며 하던 쎄쎄쎄의 노래 가사도 ‘푸른 하늘 은하수~’가 아니던가. 미세먼지에 황사까지 더해진 요즘 하늘을 보면 가사를 좀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회색 하늘이라든가, 잿빛 하늘로다가. 물론 동심을 파괴하려는 건 아니고(긁적긁적).
오늘 오전부터 반가운 봄비가 내리더니 비가 개인 오후의 날씨는 그림처럼 화창했다. 가로수 가지 위로 돋아난 연초록의 어린 생명력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자주 화가 나있거나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던 미세먼지 앱의 이모티콘도 하트모양 눈웃음으로 ‘좋음’ 수치를 가리켰다. 하늘도 오랜만에 푸른빛을 되찾았다.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을 본 적이 있다. 스무 살 봄이었다. 대학생 새내기가 된 나는 과동기들과 여러 동아리를 기웃거렸다. 딱히 들고 싶은 동아리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보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활동을 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러다 동기를 따라 뜬금없이 야구부에 들게 되었다. 동기는 야구 심판이 꿈인 보이시한 스타일의 여자아이였다. 털털한 그녀와 나는 죽이 잘 맞아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어느 날은 그녀가 야구부에 들었다면서 여자멤버가 본인 하나라 어색하다고 했다.
은근슬쩍 가입을 권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래’ 하고 응하게 됐다. 야구의 ㅇ자도 모르는 내가 야구부라니. 운동하는 멋진 남자 선배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한몫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방심은 금물이고 환상은 위험하다는 것을. 야구부 동아리실에 들어선 순간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맞아준 건 책상과 컴퓨터 한 대가 전부인 휑한 동아리실과 복학생 선배였다. 프로야구부가 아닌 이상 야구부 자체가 인기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신입생 유치를 잘 못한 것인지는 몰라도, 또래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고학번 선배들과 복학생들만 우글거리는 분위기였다. 영화 ‘클래식’의 조인성 같은 선배는 현실에 없었다. 물론 나도 손예진 같은 후배는 아니었기에 쌤쌤으로 치기로 했지만 적잖이 실망하긴 했다.
그래도 나름 주말마다 열리는 친선대회에도 참가하고 동아리 방도 열심히 들락거렸다. 야구를 사랑하는 선배들의 순수한 열정이 좋았다. 동아리 로맨스에 실패하면서 동아리 활동의 열정도 오래가진 못했어도, 하나 얻게 된 것이 있다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야구장 가는 즐거움이었다.
관중들의 함성 소리, 막대풍선을 함께 두드리며 부르는 응원가, 타격소리, 야구장 위로 날아오르는 야구공을 보며 외치는 홈런의 환호. 유대감과 묘한 흥분이 뒤섞인 야구장 특유의 분위기는 사람을 설레게 했다. 친구가 비밀 한 가지를 알려 주었다. 야구장 위로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 파랗다는 것.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파란 물감을 야구장 위에만 더 짜놓은 듯 파랗고 선명한 하늘이었다. 야구장이 하늘에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일까.
아마 조각난 하늘의 색이 더 짙어 보이는 시각적 착시 때문이었던 것 같지만, 당시에는 그 짙푸른 하늘이 야구장에서 먹는 치맥보다 나를 더 설레게 했다. 많은 것이 처음이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감탄이 흘러넘치던 스무살 봄,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야구장의 파란 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