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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이 May 07. 2023

분홍은 결국, 사랑

침실의 암막커튼 뒤로 번지는 빛의 강도로

그날의 날씨를 알 수가 있다.


암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분홍색의 밝은 커튼은 빛을 백 프로 차단하지는 못한다. 날이 밝아오면 광명의 잔영이 커튼 뒤로 드리운다. 노란빛이 진하면 햇빛이 좋은 맑은 날씨, 빛의 기미조차 없으면 구름이 많은 흐린 날씨일 확률이 높다.


이 분홍색 암막커튼은 언니네가 집들이 선물이라며 설치해 준 것이다. 나는 불투명 창이라 괜찮다며 극구사양했지만, 집에 놀러 온 형부의 손엔 이미 커튼이 들려있었다. 막상 커튼을 설치하고 나니 제법 마음에 들었다. 방이 커튼 덕에 아늑하게 느껴졌고, 낮의 강한 햇살만 아니라면 창밖에서 스미는 한밤의 불빛을 차단하기에는 적당했다. 이 커튼이 없었다면 잠들기에 너무 환한 밤이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커튼의 색깔이 분홍색이라는 것. 방을 핑크색으로 꾸민다는 건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 혹여 공주풍이 된다면 견디기 어려울 테니. (개인적인 취향이니 오해는 마시길!)


지금은 분홍색을 고른 형부의 선택에 감사한다. 분홍색 커튼 덕에 흰색과 회색만 가득했던 낯선 방이 한결 사랑스러워졌다. 밝은 컬러 덕에 암막의 기능이 약해 날씨 예측의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것은 다 나의 예의상 거절을 귓등으로 흘려준 언니와 형부 덕분이다. 그래, 사양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론 그저 감사하게 받을 줄도 알아야 하는 거겠지.



진분홍색 원피스


분홍색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해 마지않던 시절도 있었다. 대부분의 꼬마아가씨들이 그렇듯. 엄마가 사준 진분홍 긴팔 원피스는 7살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었다. 그 증거가 한 장의 사진에 남아있다. 단체로 원복을 입고 있는 유치원생들 사이에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한 여자 아이가 서 있는 사진. 원생들 뒤로 학부모들이 앉아있고 아이의 엄마는 남동생을 안고 있다. 사진을 찍던 날 아침, 아이는 기분이 별로다. 원복을 입으라는 엄마의 말에 반항하고 싶다. 원복은 유치원 로고색인 연두색 바지에 흰색 상의의 목과 소매 부분에 연두색 포인트가 들어간 운동복이다. 아이의 눈엔 전혀 예쁘지가 않다. 아이는 기분이 별로인 관계로 예쁜 옷이 입고 싶다. 방바닥에 앉아 떼를 쓰기 시작하는 그녀. ‘싫어 싫어, 원피스 입고 싶단 말야.’


일과 육아에 지친 엄마는 결국 아이의 말에 항복한다. 원복을 입는 날이라는 알림장을 받았으나 결국 원피스를 입히기로 한다. 그런다고 천지가 개벽하진 않겠지 하고는. 그렇게 ‘내가 제일 잘 나가’ 핑크색 원피스로 뻐기고 있는 나의 부끄러운 사진 한 장이 탄생했다. 얼마나 민폐인가. 사복을 입은 아이가 정말 하나도 없는 상황에 엄마는 또 얼마나 당황했을지. 나는 그때부터 패션의 일가견이 있는- 이 아니라 육아강도 최상의 고집불통이었구나…


어쩌면 나는, 사랑해 줘,라는 말을
분홍색 원피스로 대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내 옆엔 늘 3살 터울의 어린 남동생과 엄마가 있다. 유치원 소풍 단체사진을 보면 나는 중앙에 앉아 엄마를 찾느라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고 사이드에서 엄마가 동생을 품고 서있다. 생일 기념사진엔 케이크를  자르는 내 모습 뒤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남동생의 모습(눈치 좀 챙기시지 주인공은 나야 나)이 보인다. 지금 보면 고 녀석 귀엽네 싶지만 그때는 동생이 조금 미웠던 것 같다. 늘 나보다 동생을 챙기는 엄마가 야속했던 것도 같다.


돌이켜보면 보채는 4살 꼬맹이를 데리고 다니던 엄마도 쉽진 않았겠네. 꼬맹이 역시 누나 따라다니기 힘들었겠네, 싶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늘 동생과 나눠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더 많이 사랑받고 싶었다. 그런데 동생이 없었더라면, 마음 한편으로 가장 의지하는 형제도 없었을 것이고 똑 부러지는 올케도 사랑스러운 조카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학교에서 만나면 모른 척 좀 하면 좋겠는데, ‘누나~’하며 반갑게도 달려오던 동생. 신기하게도 그때의 싫은 감정보다 환하게 웃던 동생의 미소만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엄마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남동생을 통해 나에게 돌아온 것일지 모른다. 사랑은 나누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일지도.


정말이지 사랑은,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일지도.




(C)un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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