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제 취향을 곁들인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장마가 드디어 지나가고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어.
태양빛이 얼마나 뜨거운지
꼭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것만 같아.
일상의 작은 움직임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무더위,
아이들은 방학을 하고 어른들은 휴가를 가는
계절이 돌아왔네.
눈부시게 파란 바다의 물결이 손짓하며 부르는 듯,
그리워져.
현실은 방구석이라도,
얼음물에 발 담그고 휴가기분을 한번 내어볼까나.
그럼, 푸른 바다 대신 책의 바다로 한번 빠져보는 건 어때?
세상은 넓고 좋은 책은 많지만
나라면 이런 책
장르별로 4권을 엄선해 봤어. ^^
앵무 <초년의 맛>
그림책은 좋지만 만화책은 못 참지.
이 책은 조금은 어리숙하고 풋풋한 사회초년생들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음식과 함께 잘 버무려냈어. 초년생뿐만 아니라 초년을 지나온 중장년층도 모두 재미있게 공감하며 볼 수 있는,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 한 편이 저릿해지는 그런 힘이 있는 책.
이현세 만화가는 이 책을 이렇게 추천했어.
“<초년의 맛>은 4학년 워크숍 수업에서 작업을 지켜보다 나 자신이 어느새 팬이 되어버렸던 만화다. 볼 때마다 군침이 돌게 하는, 달지도 짜지도 않은 풋풋한 맛, 그 속에 싱그러운 희망과 청춘의 고민이 있었다. 길을 묻는 초년생들에게 서슴없이 이 만화를 추천한다.”
책의 정보를 더 자세히 찾아보다 보니 이 만화는 디지털 콘텐츠로도 볼 수 있더라고.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종이책으로 보는 걸 추천하고 싶어.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맛도 포기할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니까.
프랑수와즈 사강 <마음의 심연>
사강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충격적으로 재미있다”라는 것이었어. 게다가 그녀의 첫 소설인 <슬픔이여 안녕>은 사강이 무려 열아홉에 쓴 책으로 작가의 소설가로서의 재능이 놀라울 정도야.
사강은 생전에 두 번에 걸친 결혼과 이혼을 했고 알코올과 마약, 도박에 중독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저자인 사강과 닮아있다는 인상을 풍겨.
사회의 도덕이나 윤리에는 어긋난 삶을 살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캐릭터들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 집중하게 만들지. 소설을 쓸 때 등장인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강의 소설을 읽으면서 깨닫게 돼.
간단히 줄거리 소개를 하자면, <마음의 심연>은 사랑에는 순수할 정도로 열정적이지만 그 외에는 어수룩한 것 투성인 부유한 집안의 자제인 뤼도빅과 그의 아름다운 장모-존재에 대한 연민이 많은-파니 크롤리의 사랑이야기야. 사위와 장모 간의 사랑이라니 막장드라마 다운 설정 같기도 하지만 사강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소설에 몰입하게 돼.
사실 이 소설은 사강의 미발표 유작으로 결말이 쓰이지 않았는데, 그의 아들인 드니웨스토프가 사강의 사망 이후 발견한 원고를 다듬어 나온 작품이라고 해. 사강이 이 작품을 완성했다면 어떤 결말을 지었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는 재미도 있는 책.
조정현 <동화 넘어 인문학>
이 책은 기존 동화를 재해석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동화와 연관된 주제의 인문학 서적도 함께 소개하고 있는 책이야. 동화책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흥미롭고 인문학 요약서나 입문서로도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해.
챕터 중에 하나인 아라비안나이트의 단편 <하산이야기>를 소개해볼게. 바그다드의 부자인 사아드와 사아지는 돈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정직하지만 가난한 하산이라는 인물에 대해 말하면서 사아드는 그가 운이 없었기 때문에 사아지는 그가 불성실하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두 사람은 내기를 하기로 해. 하산에게 금화를 주고 그가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는지. 하산은 금화를 잃어버릴까 봐 금화를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터번 안에 숨기지만 솔개가 날아와 그 터번을 (금화와 함께) 물고 가버려. 사아드와 사아지는 그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해. 그래서 하산은 그 돈을 자본 삼아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다음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동화와 관련해 저자가 소개한 인문학은 존 롤즈의 <정의론>이야. 롤스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사회 구성의 원리로 2가지 원리를 제시했는데 하나는 ‘기본적 자유의 평등원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정의 원리’야.
조정의 원리란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기본적으로 공평한 기회균등하에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불평등이 가장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야.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휴가의 취지가 치유에 있다면 이보다 그 취지를 잘 실현해 줄 책이 있을까? 헨리밀러는 <싯다르타>가 신약성서보다 더 큰 치유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어. 1946년 괴테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 책은 여타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에 흔히 가질 수 있는 편견 (어렵고 방대한 양)을 깨듯 가독성이 높은 문장들로 술술 읽히는 데다 두께가 얇아 읽는 부담이 없는 책이야.
<싯다르타>는 내게 신약성서보다
더 큰 치유력을 가진 작품이다.
-헨리밀러
싯다르타는 다들 알다시피 부처를 말하는데 헤세는 소설 속에서 이 인물을 주인공 싯다르타와 깨달음을 얻은 부처 이렇게 두 명의 다른 사람으로 나누어 설정함으로써 주인공 싯다르타가 부처와 다른 방식으로 구도의 길을 가는 여정을 보여주지. 구도자의 성전(成典) 같기도 한 그의 책이 시대를 넘어 사랑받을 수 있는 건 그의 언어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물음에서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몰라. 한 작가의 말처럼 개인적인 것은 보편성을 가지며 시대를 관통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