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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Dec 09. 2022

변화하는 오브제, 그 속의 이름

변화하는 오브제, 변화하는 이름

by 레미




독재자의 위태로운 역할극 속 변화하는 것들에 대하여.




“지금부터 역할극을 시작하는 거야.”




‘어느 독재자’, 말 그대로 가상 세계의 어느 한 독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어느’라는 단어는 빈칸으로 받아들여진다. 누구든 그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모든 세계에 해당되는 이야기로서, 그 빈칸은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있다.

그렇기에 경계의 필요성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누구든지 그의 모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영화 속 독재자 역시 여러 감투를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독재자의 역할극은 그의 모습을 끊임없이 바꾼다.

우리는 이 과정을 따라가며 어느 것 하나 고정되지 않는 혼돈을 마주한다.

독재자의 모습, 그들의 역할, 혁명이 폭력으로 변하는 양상 등은 사람이 사라져도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갈등의 지속을 가리킨다.


영화 속 오브제들의 변화는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를 따라가며 변화의 흐름을 읽어보고자 한다.














1. 의상의 변화


  독재자가 한 순간에 도망자가 되는 시각적 확인은 단연 의상의 변화로 가장 먼저 알 수 있다. 독재 권력의 상징이었던 제복은 혁명 이후 그들이 제거해야 할 가정 첫 번째 오브제가 된다. 제복이, 상징이 아닌 노출의 역할을 하며 독재자의 위치가 변한 것이다. 독재자는 자신과 손자의 제복을 태우도록 명령하고 가난한 이발사의 옷을 빼앗아 달아난다. 머리를 자르고 가발을 쓴다. 그리하여 독재자는 부랑자로 변해 그 공간을 빠져나온다.



  이를 기점으로 그들의 행색은 이전의 상태와 정반대의 모습을 한다. 역할극의 시작으로 검은 칠을 하게 된 손자는 바뀐 상황을 영 불편해한다. 그러나 새로운 옷에 적응할 시간은 없고, 그들은 도망의 길을 걷게 된다.  









2. 역할의 변화


  역할극의 시작은 도망의 시작을 본격화한다. 독재자는 이제 이전의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거리의 악사가 되기를 선택한다. 손자는 여전히 춤을 춘다. 궁전에서의 춤을 기억하며 거지 악사의 피붙이로 춤을 춘다.



  분장으로 시선을 돌린 독재자와 그의 손자는 쿠테타군에 다시 한 번 붙잡히는데, 그때마다 역할을 바꾼다. 자신이 독재자인 것이 탄로 날 수도 있는 순간, 이 아이는 자신의 손자가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독재자는 손자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잠시 동안 다른 이의 손녀가 되라고. 반나절 전, 그에게 손자는 안전한 궁 안에서 자랑스러운 후계자였다. 그러나 이 순간은 다르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세상을 바라봤던 독재자는, 이제 아이를 필사적으로 자신에게서 떨어뜨려 놔야 한다.   









3. 행동의 변화


  영화 속 독재자의 행동 변화를 단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에 따른 심리 변화는 표면적이지 않다. 그러나 눈에 띄는 변화를 꼽으라면 사형 지시를 내리던 손으로 수감자에게 옷을 건네주는 장면일 것이다. 독재자는 도망의 여정 중 자신이 정치범으로 수감시킨 수감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들은 대부분이 신체/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상태이다. 독재자는 그 원인이 본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그들과 동행한다.



  영화의 후반부, 어느 새 독재자는 손자가 아닌 수감자를 업고 있다. 그들의 썩은 발을 직접 닦아주고 심지어 자신의 방패였던 옷을 내주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의 변화는 독재자의 도망이 자신이 존재했던 세상을 자각 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 행동 하나로 그가 이전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중 이라거나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는 여전히 도망 중인 독재자다. 그래서 그는 느껴야 한다. 그가 구성했던 세상의 대가를. 그 현실적인 참혹함을. 그리하여 그의 도망은 지속될 것이다.












  결국 변화가 말하는 것은 어떠한 상태를 정의내리는 것의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아니라 어떠한 상태에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 같은 것이 아닐까. 영화의 결말은 독재자가 사라진다고 해도 붕괴된 사회의 폭력과 혼란은 해결되지 않음을 암시한다. 독재자와 그를 벌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폭력 사회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폭력, 갈등, 충돌, 혐오 따위가 한 사회를 마비시키고 붕괴시키는 문제는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상태를 경계할 수 있는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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