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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Feb 07. 2021

<남매의 여름밤> :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더라

가족영화, 동시에 성장영화인 이유



주의: 영화 <남매의 여름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다.


좋은 작품을 뒤늦게 보고 뒷북을 치는 게 요즘 취미다. <남매의 여름밤>을 봤다. 여름밤에 보면 정말 좋았을 걸, 하지만 겨울밤에 봐도 충분히 따뜻한 작품이었다. 나는 유년 시절, 1년간 할머니네 집에서 자랐다. 당시 할머니네 집은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었다. 크지 않은 1층 주택이었지만, 작은 마당과 장독대가 가득한 옥상도 있었다. 고작 12개월 남짓한 기억인데도 나는 가끔 이상하리만큼 역력한 순간들이 있다. 망각하지 않은 기억들은 참 묘하다. 이상한 힘이 있다. 쉽게 사라질 것 같지만 절대 바스러지지 않는다. 유치원 버스가 도착하기 5분 전, 깜빡 못 쓴 일기장이 생각나 마루에 앉아 휘휘 갈겨쓰던 순간, 까끌까끌해서 손으로 자꾸 만지게 되던 할머니네 집 이불, 이유는 도통 기억 안 나지만 혼자 옥상에 올라가선 옥상 계단을 굴렀던 순간도... (왜 그랬지..? 아팠는데.. 아마도 크게 다치진 않았다.) 아. 크리스마스날 즈음 집 앞에 와준 이상한 산타도 기억난다... 각자 집으로 산타 할아버지를 파견한 유치원이라니. 어쩌면 나 꽤 좋은 유치원에 다녔나 보다.


이런 얘기를 왜 하고 있냐면, <남매의 여름밤>이 그 어린 시절의 풋내음을 그대로 담아버린 영화기 때문이다. 그냥 뭐랄까. 저 가족의 다큐멘터리 같았다. 나는 이런 영화를 꽤 좋아한다. 관객의 마음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아도 결국엔 영화 속 세상에 흠뻑 매료되니까. 원래 잔잔함이 제일 오래도록 남는다..





가족영화 그리고 성장영화

감독님이 이 장소 로케이션에 정성을 들였다고 하던데, 참 멋진 집이다.

<남매의 여름밤>은 가족 영화이지만, 동시에 성장영화다. 옥주와 동주는 아빠의 사업 실패로 방학 동안 할아버지 집에서 머무르게 된다. 할아버지, 아빠, 누나 옥주, 동생 동주, 고모까지 함께 살았던 여름밤의 이야기다. 사실 나 같으면 영화 속 할아버지 집 같은 멋진 집에 살게 된다면 행복할 텐데, 옥주는 무척 불안했을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온전한 집이나 내 방은 없고,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봐서 낯설고, 가장 불안할 때의 안정감이 없는 이동은 최악이니까.


옥주에겐 공간적 방도, 마음의 방도 필요하다.

‘집’은 가장 편안해야 하고, 집에서 ‘방’은 온전히 본인일 수 있는 완전한 장소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성취할 수 없었던 옥주는 계속해서 자신의 공간을, ‘방’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문을 잠그고, 모기장으로 영역을 표시한다. 하지만, 옥주는 결코 온전한 자신의 공간을 갖지 못한다. 문을 잠가도 귀여운(옥주 눈에는 안 귀여울) 동생은 열고 들어온다. 고모에겐 먼저 자신의 모기장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옥주가 성장하는 법

흔들려도 괜찮다.

옥주는 사춘기를 겪고 있다. 누나이기에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이 작고 부끄러워 보이는 시절을 맞았다. 옥주는 아직 본인의 얼굴이 얼마나 예쁜지는 모르지만, 본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된다. 잘못을 깨닫고, 옥주가 자전거를 세차게 밟으며 달리던 여름날의 장면은,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세차게 휘날리는 여름 바람 속 옥주의 연단하는 눈매가 인상적이다.



망각하지 않은 기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찮은 자기위로같은 말이라도 평해도 괜찮다. 또 살아가려면 별 수 없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글에는 어쩐지 잘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마음에는 자꾸 쓰고 싶은 글귀다. 지구가 내일 멸망해도 쓸 수 있을 것 같거든. 이 영화를 덮고 나니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어울린다. 옥주는, 이 가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이다. 여름밤을 잊지 않고 추억으로 기억하면서. 앞서 왜 망각하지 않은 기억이 묘한지 이제 알 것만 같다. 망각하지 않은 기억들은 어쩌면 미화된 것이다. 인간의 장기기억저장소는 명확하지 않아서 나의 기억들은 어쩌면 섞였을 테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기억들을 우리의 기억이라고 믿기에, 믿음을 얻은 기억들은 나풀거리는 힘을 가진다. 나풀거림은 커져서 결국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남매의 여름밤>은 참 섬세한 작품이다. 할아버지 집의 모든 곳은 시절이 자아내는 내음이 난다. 우리는 그렇게 나풀거리는 기억들로 세상을 살아간다. 연약하지만, 비로소 가장 강한 존재가 된다. 



*’티빙’에서 감상했습니다.

*이미지: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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