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나의 인생드라마 <나의 아저씨>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주관적인 감상글입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 처음엔 드라마 정리 글을 쓸까 했지만 쉽지 않아 감상평쯤에 가까운 글을 쓴다. <나의 아저씨>는 내게 그런 드라마였다. 나의 비약한 글 솜씨로 차마 표현을 하기 힘들었던 작품. 올해 초(2020년) 겨울에 본 드라마였는데 나는 아무래도 평생 이 드라마를 잊지 못하지 않을까.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며칠간 나는 참으로 괴롭고 서글펐지만, 행복했다. 창작물이 주었던 울림 중 가장 무겁고 둔탁했다. 당시 나는 스스로 메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많이 울면서 내가 감정 충만 인간(...) 임을 실감했다.
가슴이 아프고 또 뜨거웠던 <나의 아저씨>, 이 드라마는 ‘아리다’는 표현이 딱 적합하다. 어렸을 때 21살엔 결혼할 줄 알았는데, 직접 그 나이가 되어보니 내 앞가림 겨우 하는 나이가 스물하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런데 21살의 내가 만난 21살 지안이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불쌍하다.’, ‘가엽다’라는 1차원적 말로 그녀를 표현할 수 없다. 너무나 장하고, 아리고, 그래서 예쁘고 또 아픈 인물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지만 나만 알고 싶은 보물 같은 띵작. 묵히고 묵혔다가 삶의 위태로운 끝자락에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 소주 같은 드라마. 씁쓸하지만 시원한 단맛을 가졌다.
21살 지안의 삶은 너무나도 위태롭고 궁핍했다. 물질적 궁핍만이 아니었다. 세상을 사는 법을 가르쳐준 어른이 없었다. 지안은 유일한 피붙이인 할머니를 보살펴야만 하는 처지였다. 본인이 유일한 경제활동을 하는 봉양자일 때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복지시설이나 요양 비용에 대해 알려준 어른 한 명 없었다. 지안이 무지해서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그 누구도 지안에게 '답답해. 지원받으면 되잖아. 신고하면 되잖아.'라고 하지 못한다. 그녀는 하루 살이보다 벅찬 하루를, 인생을 살았다. 회사일과 식당 일을 마치고 지안은 몰래 가져온 믹스 커피 두 개와 잔반을 살기 위해 최소 양분만 섭취하듯 꾸역꾸역 입안에 집어넣는다. 그것이 유일한 지안의 밥이었다. 과거 지안은 할머니를 폭행하는 사채업자를 막기 위해, 사채업자를 칼로 찔렀다. 당시 지안은 청소년이었고 상황이 참작되어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아무도 지안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그 사채업자의 아들은 아직까지 지안을 괴롭히고, 지안은 감당해야 할 업보인 것 마냥 빚을 갚기 위해 종일 일하고 광일(사채업자의 아들)의 폭행에 대항하지 않는다. 어른 같지도 않은 어른 때문에 지안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었고, 무늬만 어른인 채 두 눈가에 검은 그늘이 생겨도 감정 없이 버텨야 했다.
그런 지안에게 진짜 어른이 나타났다. ‘동훈’ 겉으로 보기엔 찌질한 상사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이지만 자신보다 타인을, 가족을 먼저 생각한다. 동훈은 지안에게 첨언하지 않는다.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지안을 대한다. 지안은 동훈에게 자신에게 네 번 넘어 잘해준 사람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일생에 지안을 도와줬던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딱 네 번, 그 뒤로 다들 도망갔다. '선량해 보이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나의 불행함을 이용하려는 인간들' (인용) 살면서 칭찬 한 번 받아본 적 없던 지안에게 기특하다(할머니 챙겨주는 지안을 보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을 알려준다. 그리고 말해준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나라도 내 가족한테 그런 일이 생기면 죽였을 거야. 지안은 살인을 했다. 명백히 지안은 사람을 죽였지만, 우리 모두 지안이었다면 살인자가 되길 자처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안은 살인자가 아니지만 평생 자신의 마음속에 낙인을 찍었을지 모른다. 동훈은 그 잘못된 낙인을 벗겨주고, 지안은 비로소 어른이 되어간다.
이 드라마에서 연기가 모난 배우들은 한 명도 없다. 모든 인물이 세상에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처럼 입체적인 서사를 자랑한다. 그중 이지안, 연기자 이지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지은은 이지안을 완벽히 소화하는 것을 넘어 이지안이 되었다. 초점 없는 눈빛과 어디서나 담담한 톤과 대사, 그러나 때론 뭉친 서러움이 터져 눈물 흘릴 때 유일하게 어린 21살의 어린 아이가 되는 그 섬세함까지...한국에 이토록 완벽한 20대 배우가 있었는가. 배우 이지은은 지금까지 굳건한 필모를 쌓아왔고, 나는 이지은의 연기를 좋아했다. 네모난 프레임 안에서는 이지은은 배역에 대한 완벽한 소화력을 자랑한다. <프로듀사>의 겉바속촉 신디부터 언제나 나의 아픈 손가락 <달의 연인> 해수도.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은 이지은의 인생 연기라고 단언한다. 국민가수가 아이유인 이지은이 왜 연기를 하고, 연기자인지 보여준 작품. 이지안은 다른 어떤 배우도 흉내 내지 못할 것 같아.
https://www.youtube.com/watch?v=cWM6d66QDwM
죽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죽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해왔다. 생전 경험하는 죽음은 모두 간접적이고 모방적인 것이다. 나 역시 알지 못해 두려웠고 낯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난생처음 간 장례식장은 이질적이었다. 분명 으레 생각해왔던 적막한 장례식과 달리 시끌벅적하고 웃으며 떠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에서 마음 한 공간이 비틀거렸을 뿐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그러나 죽음은 단순히 엄숙하고, 슬픈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고, 그의 마지막과 인생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시끌벅적한 장례식장이 왜 복인지 <나의 아저씨>는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위로를 말한다.
수많은 명장면 중 내가 뽑는 <나의 아저씨>의 명장면. 21살 지안에게 유일한 할머니가 죽었다. 평생 지안과 단둘이 외롭게 살아온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사람이 많을 리 없었다. 이에 동훈의 형 상훈은 자신의 동호회 사람들을 장례식에 불러 장례식장을 시끌벅적하게 만든다. 그리고 본인이 여행 가기 위해 뭉쳐놓았던 돈으로 화환을 보내 할머니의 마지막을 추모한다. 상훈은 지안과 그다지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보잘것없던 자신의 오십 인생에서 지안을 도왔던 오늘이 평생 기억에 남을 거라며 뿌듯해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지안은 갚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동호회 사람들은 웃으며 "뭘 갚아요. 세상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요즘 세상을 보면 관계에서 서로를 재가며 만난다. 인류애를 잃는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사람'에 의해서 감사하고, 슬프고, 배우고, 나아가고, 살아간다. 누군가 나의 인류애를 잃게 만들었다면 넘쳐 오르는 애정을 만들며 세상을 정화시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렇게 사람은 사람에 의해 살아간다.
<나의 아저씨>는 단순히 우울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참 따뜻한 드라마였다. 비록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지만, 그 눈물은 내 삶에 위로로 닿았다. 지치고 힘들 때 꺼내보는 낡은 사진첩처럼 앞으로 내 인생을 지탱해 줄 드라마라고 확신한다. 아직은 정주행할 용기는 없지만, 그 용기가 생기면 나는 또 지안을, 동훈을, 후계동 사람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