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 윤리적 주체성
불이 난 후 우리 가족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옷, 음식, 집을 하루아침에 모두 잃었다. 4학년, 3학년, 1학년 어린이에게 아무것도 없음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와 동시에 가족 안에서 각자의 몫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화재 후 몇 년간 부모님이 새벽 장사로 밤에 나가시고 아침에 돌아오셨다. 가장 맏이인 나는 동생들의 등교 준비와 식사를 챙겼고 둘째는 이제 막 1학년이었던 막내의 투정을 다 받아주었다. 학교 가는 길은 우리 삼 남매에게 가장 힘든 길이었다. 절정은 대문을 나서고 좁은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막내는 실내화 가방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형이 주워다 주면 더 멀리 던졌다. 다시 주워다 주면 이번엔 뒤로 던졌다. 골목을 나와 큰길로 들어서면 찻길로 던졌다. 형은 학교 가는 내내 동생이 던진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하염없이 주워다 줬다. 둘째는 화 한번 내지 않았다. 나는 창피했다. 매일 심통을 부리며 가방을 길바닥에 던져대는 막내와 그 걸 주워다 주며 화 대신 절절매는 둘째 동생이 창피했다. 동생들과 모르는 사람처럼 걷고 싶었다. 그래서 한참을 멀리 떨어져 앞서 걸었다. 내가 점점 멀어지면 가방을 줍던 동생이 다급히 불렀다.
"누나! 같이 가"
"야! 너 정말 왜 그래?"
"찻길로 던지면 어떻게! 위험해!"
"누나! 누나!..."
나는 힐끗 뒤돌아보고 더 빨리 걸었다. 인생 12년 차에 레비나스의 연민과 자유 사이에 고통이 지금도 느껴진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막내의 신발주머니와 가방을 들어줄 수 있을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