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하늘은 뜨겁게 타올랐다.
"지금 나누어 드린 종이를 가로로 놓고 가운데 줄을 긋습니다."
"그 줄에 생애 주기를 10년 단위로 표시하고 마지막 점은 본인이 죽고 싶은 나이를 적으세요."
"저는 88세 정도로 했습니다."
"혹시 100세 적으신 분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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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마지막 학기, 마지막 과목, 정서중심치료 시간이다.
교수님 한 마디에 다 큰 어른들은 유치원 미술시간처럼 모두 고개를 기억자로 숙이고 뭔가 끄적인다.
나는 죽고 싶은 나이를 90세로 적었다. 죽고 싶다기보다 그 나이에는 나 스스로 움직이고 소소한 사회생활이 가능할 거 같았다. 90세가 넘으면 생리적, 신체적 노화가 급격히 진행될 거 같아 나는 건강한 나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 이후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질한 심정이었다.
"자신의 생애 주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두 가지만 적어 보세요."
"그 강렬했던 사건이 일어난 나이를 적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 무엇, 누가 개입했나, 그 당시 느꼈던 정서를 생각나는 대로 적으세요."
"그리고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적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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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떠오르는 내 생애 가장 큰 정서적 충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집의 화재, 또 하나는 처음 느낀 수치심...
11살에 화재 사건, 초등학교 4학년이 시작되는 겨울 새벽 1시였던가 깊은 밤이었다. 100년이 넘은 목조건물에 누전으로 불이 붙었다. 거실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안방에서 주무시다가 우리가 자는 작은 방으로 달려오셨다. 방문을 열자마자 잠에서 깨지도 않은 우리들을 사방이 30cm 정도 되는 창문 밖으로 던지셨다. 삼 남매는 한겨울 차가운 눈 밭에 나뒹굴었고 잠결에 놀라 쳐다본 관경은 활활 날아오르는 우리 집이었다. 마당은 어느새 환해졌고 붉은 불빛은 나무 타는 냄새와 하늘로 솟았다. 그 불꽃들은 검은 새벽을 다 집어삼켰다. 어둠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환했다. 아니 태양광처럼 눈부셨다. 역설적이게도 불꽃이 하늘로 솟는 그 장면은 아름답고 황홀했다. 새벽의 고요함을 찌르는 사이렌 소리는 강렬한 배경음악이었다. 한참 후에서야 발이 얼어붙고 냉기가 발목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는 걸 느꼈다. 1시간 정도가 지나 그 불꽃놀이는 끝났다. 어둠을 집어삼킨다는 게 이런 거라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춥다. 이리로 와"
구멍가게 아주머니의 따뜻한 담요에 싸여 안전하고 따뜻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 날밤은 어디서 잤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 날 밤 지붕이 뻥 뚫린 집에서 나란히 누워 별을 보며 잠들었다. 불꽃과 별, 내 생애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밤이었다. 이후 우리 가족은 차갑고 춥고 아린 시간을 보냈다. 며칠간 여관방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숟가락 하나 가져 나오지 못하고 우리 가족은 세상 가장 밑바닥의 삶을 시작했다. 노점상과 리어카, 새벽 장사, 밤 장사, 만두장사, 도넛장사... 그 시절 펄펄 끓는 기름 냄비를 들고뛰셨다고 회상하시는 부모님은 기어이 삶을 살아내셨다.
그때의 정서...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부끄러움이나 창피함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밤에 동생들과 지내야 했던 두려움이 장면 안에 있다. 그 당시 유명한 원혜준 유괴 사건으로 뉴스는 떠들썩했다. 하루는 막내가 일 나가시던 부모님에게 울며 매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 나에겐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챙겨야 했던 불편함과 고단함이 있었고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안쓰러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화재 때문일까? 나는 지금 안전전문 강사다. 재난안전, 수상안전, 응급처치, 생존수영... 성인이 되어 그 시절 화재를 떠올린 적이 없지만 무수히 작은 점들이 연결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