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을 뻔한 애착
정서중심치료 과목 5주 차 수업, 과거에 애착을 느낄만한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는 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집에서 꽤 멀었다. 어머니는 걸어서 아버지는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 주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큰길 건너 나를 내려주시고는 "저기로 올라가면 학교다. 얼른 가!" 하시고는 장사 준비로 바빠 집으로 가셨다. 종로 경찰서 앞 육교를 건너 정독도서관 방향으로 500m 정도 올라가야 하는 길이었다. 학교를 가리키던 아버지의 손가락 방향대로 직진했다. 지금의 헌법재판소를 지나 재동초등학교가 목적지였지만 나는 을지로로 향했다. 아무리 가도 학교는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 어머니와 갔던 중앙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귀가했다.
기억도 희미한 어느 날은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길을 잃어 결국 경찰서에 도착했다. 하루를 거기서 잤다. 길 잃은 아이들이 나 말고 몇 명이 더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미아보호소를 거쳐 고아원으로 가는 운명이었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무서웠다. 밤은 깊어가는데 방안은 대낯처럼 환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방바닥을 쳐다봤다. "영아야!"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아버지 목소리다. 꼭꼭 숨어있던 나를 찾으셨다. 너무 기뻤다. 당장 달려가 안겼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얼굴을 막 비볐다. 까실한 수염도 좋았다. 아버지 목마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날은 그 귀한 바나나를 사주셨다. 내 인생 가장 기쁜 날이었다. 자석처럼 끌어당겨지는 혈연, 내가 기억하는 애착이다.
나는 길치다. 지독하게 길치다.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하달까? 방향 감각이 없다고 할까? 익숙하지 않은 곳의 건물과 길은 다 비슷해 보인다. 지금도 핸드폰 내비게이션 기능을 켜고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확인한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되도록 익숙하고 안전한 길을 찾으려고 한다. 새로운 길, 여행, 사람을 대할 때 내겐 큰 용기가 필요하다.
정서란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뼛속 깊이 새겨진 '나'를 말한다. 정서중심치료는 과거의 나를 데려오고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경험한 일을 체험한다. 나를 깊이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에서 타인의 이해와 존중으로 확대된다. 자신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 믿음, 자기 효능감, 환경 통제력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애타게 기다렸던 아버지의 목소리와 바나나 한 묶음으로 세상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아이가 되었다.
애착이란? 아동이 주 양육자에게 느끼는 "정서적 유대"(emotional bond)(Bowlby, 1969/1982, 1973; Main, 1999) 생존을 위해 주 양육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애착은 위협, 스트레스 상황에서 주 양육자에게 근접하여 안전과 평안을 추구하는 타고난 생리심리사회학적 체계(biopsychosocial system)이다. 애착은 한 사람의 정서에 깊이 유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