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두려움] 두려움이 심어지다

두려움

by 오 영택

# 두려움이 심어지다.

늘 따라다니는 두려움이 있다. 바로 가난에 대한, 그리고 가난에 의한 두려움이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두려움이다. 무엇보다 가난이 좋은 기억을 선물한 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가난은 가질 수 없는 것만 보이는 안경을 쓰는 것과 같다. 이 안경을 쓰면 지긋지긋한 일상들만 보인다. 없는 것들만 보이고 부족한 면들을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이 하나하나 찾아낸다. 또한 가난하면 자주 연락이 온다. 집주인부터 수도, 전기, 가스 등의 공과금에 대한 미납에 대한 고지성 통보 등의 내용들 뿐이다. 전화통화에서 대답은 거의 같은 단어만 반복하게 된다. "네, 네, 네, 죄송합니다." 이런 통화는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다. "네"만 반복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은 곱씹을수록 비참하다. 매번 받는 전화였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전화 벨소리가 무섭게 들릴 때도 있었다. 전화를 피한 적도 많았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공과금이 밀리지 않아 전화가 안 오면 신기해 하기도 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하면서 오히려 걱정하기도 했다. 다음 달에 얼마나 한꺼번에 전화들이 올까 하고.


월세나 공과금이 밀려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매번 “지금 부모님 안 계신다.”고 거짓말 하기도 했다. 전기계량기는 계속 돌아가는 데도, 아무도 없는 척 하기도 했다. 이 기억도 별로였지만 무엇보다 싫었던 것은 돈이 없어 싸우는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싸울 때마다 오가는 욕들과 그릇 깨지는 소리는 정말 듣기 힘들었다. 물건들이 던져질 때마다 장판에는 자국들이 생겨났다. 매일 남겨진 자국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숨이 잦아졌다. 차라리 눈과 귀가 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때마다 가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도 고스란히 남았다. 번갈아 찾아오는 독촉전화에서 경험하는 씁쓸함, 잦은 욕과 싸움은 무서움을 넘어 지겹기까지 했다. 비교할수록 비참해 보이는 상황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은 번갈아가며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애써 가졌던 희망들은 번번이 꺾였다. 그럴 때마다 사는 게 지겨웠다. 이런 지겨움이 지속될까 봐 두려웠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만 해도 지겨울 것 같았다. “지겹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매일을 지겨워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한 겹 한 겹 가난에 대한 두려움은 커졌다. 동시에 가난하기 때문에 싸운다는 믿음도 점점 두터워졌다. 기대보다는 한숨이 익숙했다. 마치, 해가 들지 않는 북향 같았다. 희망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말 그대로 모든 게 지겨웠다. 가난이라는 단어조차 지겨웠고 '가난으로 인한 가난'은 볼수록 짜증이 났다. 이런 생각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다. “돈이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며 단념했던 선택들과 억눌렀던 감정들을 곱씹을수록 악순환은 반복됐다. “돈 없으니까 포기하자”, “돈 없으니까 할 수 없지, 어쩌겠어.”, “돈 없으니까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돈 없어서 이런 거야”라며 자조 섞인 언어들이 맴돌았다. 이런 상황이 영원할 거라고 착각했다. 생각이 궁핍해진 탓이었다. 생각이 궁핍해진 이유는 현재 상황으로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현재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 건 맞지만, 지금이 영원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물론, 돈이 없는 현실은 힘들다.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요소이니 말이다. 때문이다. “돈이 없으니까”라는 언어는 돈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만들었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없으니까”하며 참았던 것처럼, “돈이 없으니까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라고 말하며 불편함을 하는 수 없이 선택한다. 이는 돈을 아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절약을 위한 결정과는 다르다. 현실적인 문제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인 셈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돈이 없으니까”로 시작하는 문장들은 생각을 궁핍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는 점이다. 기억들을 되뇔수록 앞날도 지금처럼 비참할거라 생각하게 된다. 모든 원인을 “돈이 없으니까”라는 한 마디로 끝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은 많이 하지만 지금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돈이 없는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정작 중요한 '지금'이라는 순간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을 붙잡고 있느라 정작 붙잡아야 할 다른 것들을 못 잡는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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