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두려움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처한 환경에 집중하느라 폭넓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오직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주변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두려움은 비교를 통해 강화된다. 비교 대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점점 예민해지고 자신을 작게 여기게 된다.
통장 잔고에서부터 외모와 학벌, 집안, 심지어는 부모와 직장까지도 비교한다. 이처럼 비교대상의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하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비교한다. 어학연수, 해외여행 또는 잦은 여행, 최신 휴대폰이나 노트북, 비싼 옷과 매일 마시는 커피, 몸매, 신체 일부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이런 무의식적인 비교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무의식적인 비교는 마법과도 같다. 비교할수록 자신을 부족해 보이게 만드는 마법. 없는 것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교할수록 자신이 점점 초라해지고 작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비교할수록 없어 보이고, 필요한 것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비교는 필연적으로 열등감을 낳는다. 열등감은 도전과 희망을 품지 못하게 만든다. 할 수 없는 이유들의 외침이 그 자리에 머물라고 겁준다. 두려움에 휘둘리게 만드는 것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다른 비교를 해야 한다. 본래 비교는 목적이 분명한 것이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군과 대조군(실험대상)을 두고 각기 다른 조건에서의 결과를 보는 것이 비교이다. 이와 같은 비교를 해야 한다. 자신을 좀먹는 무의식적인 비교가 아니라 삶을 더 나아가기 위한 의도적인 비교를 해야 한다. 또한 집중해야 할 대상을 바꿔야 한다. 상황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이유를 찾기보다 두려움 자체를 바라봐야 한다.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두려워하며 걱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걱정하는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현명하다. 그 이유에는 욕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욕구들이 단지 두려움의 옷을 입고 있음을 깨달으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늘 걱정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저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두려워하는 자신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2020년에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국토종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좋은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유일하게 허락한 여행이었기에 즐겼다. 무엇보다 성취를 알게 해줬고 많은 풍경들을 눈에, 부분부분 친구들과 함께 탔던 순간들을 기억에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늘 돈이 없었기에 여행은 사치라고 여겼던 여행이 귀한 경험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다니면서 즐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기까지 여러 걱정이 있었다. 걱정이 많은 탓에 안장조차 앉지 못할 뻔했다. 생각만으로 즐거운 경험들을 알지 못할 뻔했다. 한 달 넘게 걱정'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많은 걱정이 머릿속을 채웠다. "갑자기 차가 튀어나와 부딪히면 어떡하지?", "넘어지면 어떡하지?", "갑자기 바퀴가 빠지면 어떡하지?", "갑자기 펑크 나면 어떡하지?", "크게 사고 나면 어떡하지?", "자전거 타다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지?" 등 이런저런 걱증을 하면서 걱정의 페달만 실컷 밟았다. 정작 자전거 페달은 못 밟은 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할수록 두려움만 커졌다. 그러던 중 읽었던 《카네기 행복론》의 "평균율 법칙"이 떠올랐다.
'평균율 법칙'으로 우리 고민에 정당성이 있는가를 충분히 평가하여 매사에 자신을 갖는다면, 우리가 하는 고민의 90%는 반드시 해소될 것이다 온갖 두려움과 불행은 대부분 상상에서 생기는 것이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라면, 먼저 우리를 괴롭히는 불안이 어느 정도 근거 있는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_「카네기 행복론」 中
'평균율의 법칙'은 걱정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걱정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 사실만 알아도 첫 걸음 떼기 한결 수월해진다. 이처럼 무언가를 아는 것만으로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와 근거를 얻는다.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갑자기', '만약에'라며 걱정했던 일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걱정했던 모든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펑크가 나서 멈추고 타이어튜브를 교체한 적도 있었다. 이건 자전거를 타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흔한 일이다. 또한 같이 갔던 일행과 부딪히는 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아서 다시 정비하고 라이딩을 이어갈 수 있었다. 4년에 거쳐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까지 못해도 2,300km를 탔다. 그동안 차와 부딪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크게 다친 적도 없고 갑자기 바퀴가 빠진 적도 없다. 오히려 버스나 기차에 싣기 위해 직접 바퀴를 탈거했던 상황만 있었을 뿐이다.
살면서 걱정을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걱정에 걱정을 더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걱정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걱정'만'하는 것은 한 걸음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걱정은 하는데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간낭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머리로만 하는 걱정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우리는 걱정에 걱정을 더할 게 아니라 걱정에 생각을 더해야 한다. 걱정이 일어날 일에 대한 염려라면, 생각은 일어날 일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행동을 정하는 것이다. 걱정은 짐만 더하지만 생각은 힘을 더해준다. 앨버트 하버드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실수를 할까 두려워 하는 것이다.
걱정은 필요하지만 걱정만 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걱정중독에서 벗어나자. 두려움을 느끼는 근거는 존재할지 몰라도 잠식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용기는 이와 다르다.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근거는 없을지라도, 용기를 가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