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생각] 능력과 인생의 부피를 좌우한다

생각

by 오 영택

# 생각은 능력을 좌우한다

생각은 인생을 좌우하는 씨앗과 같다. 토마토 씨앗을 심으면 토마토가 자라고, 해바라기 씨를 심으면 해바라기가 자라듯이 말이다. 어떤 씨앗을 심는가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생각이라는 씨앗도 마찬가지다. 채소나 과일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지만 생각의 열매들의 산정기준은 다르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가, 귀감이 되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등으로 평가된다.


생각은 대개 말로써 표현되고 태도로 드러난다. 생각이 씨앗인 까닭에 말에는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실제로 사람의 뇌는 말에 98% 영향을 받는데, 이는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결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으로 태도와 말은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태도는 삶을 대하는 자세이고, 말은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종합적인 출력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태도를 통해 자신을 살피고, 습관적으로 하는 말은 다시 무의식에 새겨지는 것이다. 흔히들, "말과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의 태도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태도는 분명 다르다. 전자는 자신을 믿고 도전하는 이미지의 언어라면, 후자는 자신을 불신하고 순응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모든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하지만 “할 수 없다”는 말은 실제로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곤 한다. 할 수 있었던 일마저 정말 할 수 없는 상황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는 언어는 자신을 믿는다는 선언과도 같다. 지금껏 쌓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언어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자신을 북돋아주는 표현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펜싱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 대 9로 지고 있던 2회전이 끝나고 숨을 돌리고 있던 그때 관중석에서 "할 수 있다!"는 큰 응원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상영 선수는 들려온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뇌였다. "할 수 있다,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읊조리는 게 송출됐다. 놀랍게도 “할 수 있다”를 되뇐 후 경기양상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동시타가 허용되는 에페 종목에서 한 점 한 점 따라가더니 끝내 14 대 15로 대역전극을 보여준 것이다. 경기장은 함성으로 가득 찼고 박상영 선수는 대한민국 최초로 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이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은 능력을 좌우한다. 정확히는 능력을 끌어올린다. 모두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때 "할 수 있다"는 말을 받아서 심었기 때문에 역전을 꿈꿀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시간을 긍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할 수 있다”고 되뇌지 않았더라고 연전극을 선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할 수 없다, 역전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되뇌였다면, 대역전극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당연한 결과로 끝난 하나의 경기로 남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감동과 환호를 자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 인생의 부피를 늘리자

"할 수 있다"고 되뇌는 것이 긍정적인 메시지라서 좋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느낌적으로 누구나 안다. 하지만 알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안다고 여기기에 언제든 되뇔 수 있다고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되뇌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무엇이든 꾸준히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히 되뇌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안다고 해서 모두가 그 힘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위기가 훨씬 커 보이고 시야를 가리는 까닭에 알면서도 정작 힘을 경험하지 못한다. 또한 "할 수 있다"는 말이 힘을 발휘하려면 그에 충분한 실력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말만 되뇐다고 없던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되뇐 후, 대역전극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단지 "할 수 있다"만 되뇌이는 것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사람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생명력 있는 말을 쏟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만 있다고 해서 모든 일이 가능해지지 않는다. 말은 그럴싸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른 문제이다. 말한 만큼, 자기를 믿는 선언을 한 만큼, 그리고 자신의 포부를 밝힌만큼 행동해야 한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성장과 숙성의 시간도 필요하다. 이처럼,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폭넓고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집중할 목표를 찾아가는 것, 나에게 심장이 뛰는 일을 찾는 것이 가지치기의 과정에 빗댈 수 있다. 찾았다면 이제는 성장과 성숙을 위한 꾸준한 배움과 익힘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만 인생의 너비를 넓힐 수 있다. 하지만 넓기만 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깊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넓이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확장시켜 부피를 늘려야 한다. 넓이에서 부피로 확장시키는 핵심 요소는 생각에 달려 있다. 너비에 깊이를 더해야 한다. 깊게 생각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생각이 많은 것과는 다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아질수록 부정적인 면들을 더 떠올린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은 또 다른 부정적인 생각을 사근사근하게 불러온다. 그러나 깊은 생각은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별한다. 무의식적으로 들어온 생각에 대해 타당성을 분별한다. 모든 것을 주워 담지 않는다. 정보의 바다와 주변의 수많은 얘기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취하되 나아가기 위한 가지치기를 해나가는 게 깊은 생각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은 생각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척이나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깊이를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첫 걸음은 다름 아닌 '쉬운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동반되어야 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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