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고등학교를 입학하자마다 자퇴를 결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결정이었다. 자퇴할 당시 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었고 부족한 것들만 보이던 시기였다. 입학등록금 50만원이 없어서 부모님이 "네 자식이니 책임지라"는 말로 싸우는 모습에서 현실을 직시하면서 포기하기를 선택했다. 포기해야 하는 이유들을 마구마구 갖다 붙였다. 안 그래도 월세나 공과금으로 싸우는 것을 보는 일상만으로도 지겨운데, 학교를 다니며 들어갈 돈으로는 오죽할까 싶었다. 지레 걱정하고 자퇴를 결심했다. 물론, 혼자 자퇴할 수 없었기에 부모님께는 이유를 숨긴 채 그냥 자퇴하겠다고 고집부렸다. 돌이켜볼 때마다 자퇴까지 할 필요는 없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당시에는 50만원이라는 돈이 무척 크게 보였는데, 일을 하면서 50만원과 맞바꾼 고등학생만 누릴 수 있는 추억들과 경험들을 맞바꾸기에는 무척 작은 금액이라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곤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 속에서 자퇴한 것에 대해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오곤 했다. 나만 없는 것 같은 졸업장과 '짧은 가방끈'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축시켰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후회했던 사실은 자신을 50만원의 가치가 없다고 여겼던 모습이었다. 중학생 시절 게임만 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학교 다닐 자격이 없다고 쉽게 단정지은 것이다. 스스로 희망 없는 존재로 여겼다. 자퇴를 결정한 사실보다 그 결정까지의 생각은 지금 생각해도 다소 아쉽다.
'쉬운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상황을 비관하고 지레 겁먹고 다른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학교 다녀봤다 뭐 하겠어" 라며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이유조차 말하지 않았다.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물론, 당시 마음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돌이켜 보면, 쉬운 선택을 한 것 같다는 마음이 들만큼 아쉬움이 남아 있다.
이처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쉬운 생각'의 특징이다.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심하지 않는다. 헤쳐나가지 못할 것 같은 근거들만 찾기 바쁠 뿐이다. 그리고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잘 안 되면 어떡하지 걱정만 할 뿐이다. 고민과 걱정이 너무 많은 탓에 앉아서 생각하기에도 벅차다. "어차피 안 될 거라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아주 잠깐, 고작 몇 번 시도할 뿐이다. 그러고나서는 "역시 안 될 줄 알았어" 라며 냉소적인 말을 한다. 그리고 탓한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탓하기는 대표적인 쉬운 생각의 한 예이다. 책임을 전가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책임지기는 싫고, 책임질 대상이 있어야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을 변호하고 싶은 심리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쉬운'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쉽기 때문에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개선은 더디고 반복되는 현상의 굴레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연스러운 감정이 두려움에서 기인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일차원적인 반응에서 멈춘다면 개선의 여지는 희박하다. 식품을 재가공해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듯이, 반응 역시 재가공하여 더욱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 일차원적인 반응은 마치 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모습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안다. 익은 감을 먼저 따는 것이다. 쉬운 생각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 다른 걱정이나 고민만 할 게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의식적으로 틀어야 한다. 어떻게 행동하고 결정할 지, 상황에 따라 어떻게 움직일지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쉬운 생각은 비관이나 냉소적인 태도 외에도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등장한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스톡데일(James Bond Stockdale)은 베트남 전쟁 때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동료들과 포로로 잡혀 있었다. 포로 생활 중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며 대비한 그는 살아남은 반면 대비 없이 그저 상황을 낙관만 한 동료들은 계속 상심을 못 이겨 죽고 말았다."
_짐 콜린스, Good to Great, 2001. 中
긍정만이 능사가 아니다. 비관이나 냉소, 이와 반대 성격인 긍정적인 생각만 하는 것 역시 '쉬운 생각'에 속한다. '긍정'이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 때문에 좋게 여겨질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마냥 긍정하는 것은 지방을 늘리는 것과 같다. 에너지를 보관하고 체온을 유지하는 데는 좋지만 몸을 무겁게 만드는 지방 말이다. 인생은 항상 파란만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긍정회로 돌린다" 자조적인 말을 하는 것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