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쉬운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존재이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지혜는 분별하는 능력을 말하는 데, 분별하기 위해서는 반응만 해서는 안 된다. 수동적으로 느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상황을 읽으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현상도 중요하지만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하는 존재이다. 생각에는 무의식적인 생각과 의식적인 생각이 있는데, 쉬운 생각은 대개 무의식적인 생각에 속한다. 무의식적인 생각은 보고 들은 대로 반응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하게 되고 비교할수록 비참함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식적인 생각은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되짚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 생각할수록 화나네" 라는 말에 대해 살펴보자. 화나는 상황이 지나간 후, 다시금 떠올릴 때 나오는 말일 것이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반응에 속한다. 감정을 느끼고 반응한 것에 의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한 번 더 물어볼 필요가 있다. "왜 생각할수록 화가 날까?",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화를 내는 이유는 뭐지?" 등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상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다. 반응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라는 의미가 아니다. 감정을 표출하되 무엇에 화를 내야 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그와 동시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기억은 안 나지만 감정만 남아 있는 경우를 지양하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감정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 중 하나이다. 또한 감정은 하나의 신호와도 같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단서인 셈이다. 그렇기에 감정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표출만 하는 것은 썩 지혜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자,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들어나는지, 그리고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 지혜로운 모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 반응을 유보하는 것, 이것이 지혜로움이 아닐까. 감정만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사람들은 이분법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특징이 있다. 구분짓고 나면 생각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감성적인 사람과 이성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진보와 보수, 과학과 신앙 등이 대표적인 구분 방법이다. 이 정도면, 여러 기준으로 구분 짓기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혈액형, 인종, 성별, 지역, 학교, 지위, 부 등 여러 기준들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곤 한다. 이렇게 구분지어 나누면 규모와 특성을 파악하기에 용이해진다. 원하는 정보나 사람을 찾기 한결 수월해진다. 반면, 구분 짓기에는 항상 나누는 것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구분 짓는 기준들은 반대로 묶는 역할도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공통점을 찾아 동질감을 형성하기도 하는 게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동질감을 느끼면 친숙함에 약간의 경계심을 풀기 때문이다. 선거철만 되면 '00 출신, 'ㅁㅁ(지역)의 아들 딸', '친0(대통령)'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국회의원 후보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 그렇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나누면 나눌수록 원하는 집단이나 사람을 찾기에는 한결 수월해진다. 무엇보다 생각하기 편해진다. 이분법으로 구분하면 하나를 규정하는 순간 다른 하나는 자동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옳고 그름을 정하는 데 있어 A와 B가 있을 때, A가 옳다면 B는 옳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처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상황과 일들이 벌어진다. 옳음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며 항상 옳음과 옳지 않음으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A가 옳지만 B 역시 옳은 경우도 있다. 혹은 B는 A보다 '덜' 옳을 수 있다. 혹은 A보다 '더' 옳을 수 있다. 좀 더 타당하냐 타당하지 못하냐의 차이인 경우도 많다. 반대로 A와 B 둘 다 나쁜 상황이지만 둘 중 차선을 정해야 하는 경우일 때도 있다.
경험적으로 알듯 세상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에서는 더욱 그렇다. 저마다의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감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매번 이유와 근거에 의해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충동적으로 결정할 때도 있다. 혹은 감정대로 선택하고 싶을 때도 있다. 평소에는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일명 '또라이'라 불리는 의외의 모습도 있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 발표나 공연 등을 통해 앞에 서는 사람이라서 외향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매번 긴장하고 시선을 의식하는 내향적인 면이 있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사람은 한 모습만으로, 어떤 기준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다. 살아 있기에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살아가는 사람은 평가를 바꿔나갈 수 있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살아 있기에 얼마든지 양가적인 모습이 그 안에서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